1960년대, 스탠퍼드 대학의 한 방에서
심리학자 월터 미셸은
네 살 아이들 앞에 마시멜로 한 개를 놓았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먹지 않으면
하나를 더 줄게."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버텼다.
눈을 가리는 아이,
의자를 돌려 앉는 아이,
마시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아이.
견딘 아이들은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유혹에서 시선을 옮기는 법을 알았다.
미셸은 오래 뒤에 이렇게 정리했다.
자기를 지키는 힘은 이를 악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가까이 두고 무엇을 멀리 둘지
미리 정해두는 데서 나온다.
그와 비슷한 때, 다른 방에서는
마셜 로젠버그가 말하고 있었다.
"나는 네가 늦어서 화가 난 게 아니라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불안했던 거야."
상대를 향한 비난 대신
내 안의 느낌과 필요를 말하는 연습
그는 이것을 경계의 언어라 불렀다.
우리는 자라면서 이런 말을 배웠다.
"참는 사람이 어른이다."
"내가 조금만 양보하면 되지."
그래서 거절해야 할 순간에 웃었고,
쉬어야 할 날에 일을 받았고,
아프다는 말 대신 괜찮다고 했다.
그날 우리는 관계를 지켰을지 몰라도
나를 지키지는 못했다.
참음이 쌓이면 미움이 되고,
미움은 어느 날 침묵이나 폭발이 되어
관계마저 무너뜨리곤 한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세상에 벽을 쌓는 일이 아니다.
내 마음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선을 다정하게 말해주는 일이다.
울타리가 있는 정원에서
꽃은 오히려 안심하고 피어난다.
"그건 어려울 것 같아요."
"오늘은 쉬고 싶어요."
"그 말은 조금 아팠어요."
짧고 낮은 이 문장들은
상대를 밀어내려는 말이 아니라
오래 곁에 있고 싶다는 말이다.
처음엔 어색하고 미안할 것이다.
오래 참아온 사람일수록
거절 한마디가 큰 죄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연습하다 보면 알게 된다.
선을 그은 뒤에 떠나가는 사람보다
선을 알아보고 머무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
몸이 보내는 신호도 경계의 일부다.
명치가 답답하고 어깨가 굳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날에는
마음이 이미 선 안으로 누군가 들어왔다고
조용히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작은 시작이다.
오늘 밤에는 이렇게 물어봐도 좋겠다.
나는 오늘 무엇을 참았을까.
그것은 정말 내가 감당할 몫이었을까.
답이 "아니요"라면
내일은 한 줄만 바꿔 말해보자.
"이건 어렵지만, 이건 도와드릴 수 있어요."
나를 지키는 일은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오래 돌볼 수 있다.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를
먼저 쓰라고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나를 지킨다는 것은
세상과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세상 속에 나를 잃지 않고 서 있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나도, 당신도
편안히 숨 쉴 수 있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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