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까르보나라

by은파랑

이름의 뿌리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숯이라는 뜻의 카르보네에서
검게 뿌려진 후추 알갱이가
숯가루를 닮았다는 이야기

아펜니노 산맥
탄광 속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소금에 절인 고기와 달걀만으로
든든한 한 끼를 지었다는 이야기

혹은 그저
같은 이름의 로마 식당이
이 요리를 세상에 알렸다는
소박한 이야기까지

정설은 없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있다.

1944년, 전쟁이 할퀴고 간 자리
연합군이 어느 마을을 되찾은 날

병사들의 배급품 속
가루 달걀과 베이컨이

인근 마을에서 구한
치즈와 후추를 만나
즉석에서 파스타 한 그릇이
완성되었다.

물자가 궁하던 시절
있는 것을 긁어모아
만들어낸 즉흥이

195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까르보나라라는
이름을 얻었다.

관찰레의 기름이
달걀노른자와 치즈에 스며들고
후추가 그 위에 검게 내려앉으면

로마의 오래된 골목마다
냄새가 번져나갔다.

바다를 건너간 이 요리는
낯선 땅에서 크림을 만나
전혀 다른 얼굴로 변했지만

로마의 부엌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전쟁의 궁핍 속에서 태어난
담백하고 고소한 원형을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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