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그에게 기댔다

by은나무


그 감정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짚어보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내가 열다섯이던 추운 겨울이었다.

그때 나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집 근처 주유소까지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려서 갔다.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집도 학교도 둘 다 나를 지치게 하는 곳이었으니까.


주유소엔 나보다 먼저 와있는 오빠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유독 눈에 띄는 오빠가 있었다.

잘생기고 말도 잘 걸어 주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오빠랑 같이 일하는 시간이 좋아서 주유소

가는 길이 그나마 기다려졌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새로 왔어? 귀엽네 몇 살이야?”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솔직히 첫인상은 별로였다.

그냥 그랬다.


주유소 가는 길이 즐거웠던 그 오빠는 이제 그만두었다.


그냥 그랬던 그 사람이랑 그다음 날부터

나는 같은 시간에 근무하게 됐다.


버스에서 내려 주유소가 보일 때쯤이면 그는

이미 와서 일하고 있었고 나를 보면 꼭 반갑게 맞아줬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점점 이상하게 좋았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지쳐있던 나한테

그 시간이 위로가 됐다.


그날 있었던 일을 툭툭 털어놓으면 잘 들어줬고

가볍게 웃어줬다.

그러면 왠지 괜찮아졌다.

나는 그게 의지라는 걸 한동안 몰랐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그냥 든든한 오빠라고만 생각했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그 마음을 받아들였다.

왜였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설레는 감정보다 그 사람 옆에

있을 때 내가 조금 덜 외로웠기 때문인 것 같다.

외로운 사람은 누군가 조금만 잘해줘도

마음이 쉽게 열린다.




그게 때로는 다행이고

때로는 위험하다는 걸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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