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가냐

by은진

"엄마랑 같이 안 살래?"


수제비 반죽을 떼던 손이 멈췄다. 또 그 말이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엄마가 어느새 식탁 옆에 바짝 다가와 서 있었다. 한동안 내 손만 내려다보더니, 오늘 저녁 반찬 이야기를 하듯 무심하게 던진 말이었다.


"엄마는 딸이 그렇게 좋아?"
"그럼, 딸이 좋지."
"난 엄마랑 살면 힘들 것 같은데. 삼 일 만에 도망갈지 몰라."
기가 차다는 듯 "뭐어?" 하고 말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반죽을 하나 더 떼어, 끓는 국물에 손이 닿지 않게 냄비에 퐁당 넣었다. 가라앉았던 반죽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요즘 엄마는 자꾸 이런 말을 꺼낸다. 처음에는 "그럴까요." 하고 웃으며 넘겼다. 며칠 뒤 언제 그랬냐며 또 물었다. "여기 네 침대도 있잖아." 나는 대답 대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지난번에 먹다 남은 두부와 콩나물국이 냄비째 그대로 있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고, 두부 포장지를 뒤집어 날짜를 확인했다.


"그러니까 같이 살자니까."

이젠 듣다 보면 물린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 싫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길 앞에서, 오늘따라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왤캐 하루가 길은지 몰라."

엄마표 푸념이 들린다. 똑같은 스물네 시간인데, 유독 긴가 보다. 길어진 건 하루만이 아니다. 88사이즈 옷도 빠듯하던 넉넉한 품은 온데간데없이, 헐렁해진 옷자락이 무릎을 깊게 덮는다. 창가에 앉은 작은 몸은 목을 길게 빼고 바깥만 바라보고 있다.


그 허전한 시간을 내가 채워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전에 살 때는 며칠씩 엄마 집에 묵으며 지냈다. 내가 쓸 침대와 옷장을 새로 들여놓았다. 베개와 잠옷, 칫솔과 클렌징오일까지 엄마 집 곳곳에 내 살림이 하나씩 늘어갔다. 그 사이 병원을 알아보고, 밥을 짓고, 철마다 옷을 챙겼다.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온 엄마는 마중 나간 나를 보자마자 얼굴 가득 환한 빛을 띠었다.


"우리 딸이네."


어릴 적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도 내려놓기 전에 하던 그 말을 이제는 엄마가 했다. 그 환한 얼굴이 보고 싶어 나는 자꾸 엄마 집에 갔다.


엄마의 하루는 내가 있으면 달라진다. 고무줄처럼 늘어지던 하루가 금세 줄어들어, 어느새 드라마 볼 시간이 된다. 내가 돌아설 때마다 엄마는 등 뒤에 한마디씩 매단다.


"조금만 더 있다 가."


그리고 끝에는 늘 같이 살자는 말이 붙는다. 해놓고 다음 날이면 잊고, 다시 보면 생각난 듯 그 말을 또 꺼낸다. 잊는 건 엄마인데, 대답은 매번 새로 해야 한다.


다른 자식에게는 하지 않는 말을 왜 유독 나에게만 하는 걸까. 동생들이 바빠서 못 오는 것도, 멀리 살아 자주 못 보는 것도 엄마는 다 괜찮다고 한다. 내 앞에서만 외로움을 숨기지 않는다. 나도 겁 많고 외로움을 잘 타는 딸인데. 어쩌면 엄마 껌딱지가 되고 싶었던 맏이의 소원이, 이제야 이루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딸이 최고라는 엄마의 말을 그대로 믿고 싶었다.


내가 가장 만만한 걸까. 아니면 퇴직해서 시간이 많아 보이는 걸까. 서운함 하나가 마음 한쪽에 똬리를 튼다.



설거지를 마치고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꽉 묶어 신발장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엄마도 주춤주춤 일어섰다. 그 봉투가 내가 간다는 신호라는 걸 엄마는 안다. 그날도 가방을 챙기는 동안 엄마는 신발장 옆까지 따라 나와 힘겹게 벽에 한 손을 짚고 섰다.


"벌써 가냐."
"벌써는, 엄마. 저녁도 다 드셨잖아."


운동화 끈을 묶으려고 허리를 숙였다. 머리 위로 엄마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그냥 자고 가. 아니, 그러지 말고 아예 여기서 살어."


나는 끈을 한 번 더 꽉 조였다. 이미 단단히 묶인 끈이었다. 고개를 들면 엄마의 눈을 마주쳐야 할 것 같아 자꾸만 신발 끈만 만지작거렸다.


퇴직하고 나서 휴대폰 캘린더에는 업무 대신 내 일이 하나씩 채워졌다. 화요일에는 어반스케치가 있고, 수요일에는 대학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금요일에는 글쓰기 수업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날에도 분리수거를 하고 화분을 돌봐야 한다. 이제는 그 사소한 일들 덕분에 하루가 기다려진다. 엄마와 살게 되면 가장 먼저 이런 것부터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 눈을 똑바로 보고 "싫어"라고 말할 용기는 없다.

나는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었다.


"엄마, 이젠 내가 자주 올게."

그 말을 하고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엄마는 더는 묻지 않았다. 알아들은 건지, 벌써 잊은 건지 알 수 없다.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문틈으로 반쯤 몸을 내민 엄마의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1층으로 내려와서야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뒤돌아보면 다시 올라갈 것 같았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