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이 식는 법칙을 배운 AI: 물리 기반 인공지능(PINN)
뜨거운 커피를 컵에 따랐습니다. 온도계로 재 보니 90도입니다. 30분 뒤에 다시 재니 30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 30분 동안 온도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는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았습니다.
이 빈 구간을 AI에게 맞추어 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에 '데이터만 학습한 AI'와 '물리 법칙을 함께 배운 AI'는 전혀 다르게 답합니다. 오늘은 물리 법칙과 함께 학습하는 '물리 기반 인공지능(PINN, Physics-Informed Neural Networks)'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챗GPT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는 '환각 현상'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공학 시뮬레이션 AI가 엉터리 수치를 내놓는 것은 작동 방식은 다르지만, 데이터가 없는 영역에서 AI가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데이터 기반 AI는 방대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데 매우 뛰어납니다. 하지만 학습한 데이터의 범위를 벗어난 영역을 예측해야 할 때(이를 '외삽'이라고 합니다)는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맑은 날 아스팔트 도로만 학습한 자율주행 AI가 처음 보는 빙판길에서 흔들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마찰이 줄면 같은 속도에서도 훨씬 멀리 미끄러진다는 기본 상식이 학습 데이터 안에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데이터에 없는 상식을 AI에게 따로 알려 줄 수는 없을까요? 연구자들은 그 상식을 물리 법칙으로 넣어 주기로 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신경망 학습에 본격적으로 적용한 연구가 2019년 라이시(Raissi) 등의 논문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PINN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https://faculty.sites.iastate.edu/hliu/files/inline-files/PINN_RPK_2019_1.pdf)
컴퓨터에게 "물리 법칙을 지켜라"라고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 열쇠는 미분방정식입니다.
- 미분: 어느 한순간에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가", 즉 변화율을 나타냅니다.
- 미분방정식: 여러 변화율이 서로 어떤 관계로 얽혀 있는지를 적은 규칙입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 커피가 식는 것, 파이프 속 물이 소용돌이치는 것까지, 자연의 많은 현상이 미분방정식이라는 수학적 언어로 기술됩니다.
커피가 식는 것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커피가 식는 속도(온도의 변화율)는 "현재 커피 온도와 방 안 실온의 차이"에 비례합니다. 뜨거울 때는 빠르게 식고, 실온에 가까워질수록 천천히 식습니다. 이것이 뉴턴의 냉각 법칙이고, 아주 친숙한 미분방정식의 한 예입니다. 비행기 날개 주변의 공기나 파이프 속 물 같은 유체의 움직임은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이라는 훨씬 복잡한 미분방정식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슈퍼컴퓨터와 전통적인 수치해석 방법이 이미 있는데, 왜 굳이 AI에 미분방정식을 넣을까요? 먼저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PINN이 전통적 방법보다 더 빠르거나 더 정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의 문제만 놓고 보면 전통적 방법이 더 빠르고 정밀한 경우가 많습니다.
PINN이 빛나는 곳은 다른 데 있습니다. 센서 데이터가 듬성듬성 비어 있는 경우, 그리고 몇 개의 측정값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량을 거꾸로 추정해야 하는 경우(이를 역문제라고 합니다)입니다. 이런 문제는 전통적 방법으로도 까다롭습니다. 연구자들은 여기서 한 가지 발상을 떠올렸습니다.
"AI의 채점표 안에 자연계의 미분방정식을 감점 항목으로 넣어 두면 어떨까?"
다시 커피로 돌아가 봅시다. 데이터는 처음(90도)과 30분 뒤(30도), 딱 두 개뿐입니다.
데이터만으로 학습한 AI에게 이 두 점을 지나는 곡선은 모두 정답입니다. 90도에서 30도까지 직선으로 쭉 떨 어지든, 중간에 롤러코스터처럼 출렁이든 100점입니다. 중간 구간의 정답지가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PINN은 AI의 채점표(전문 용어로 손실 함수)에 채점관을 한 명 더 붙입니다.
데이터 채점관은 측정값과 예측이 맞는지만 봅니다. "처음 90도, 30분 뒤 30도, 이 두 점을 맞췄는가?"
물리 채점관은 측정값이 없는 빈 구간을 봅니다. 기준은 냉각 법칙입니다. AI가 그린 곡선 위에서 여러 지점을 골라 그 순간의 기울기를 재고, 법칙과 맞는지 확인합니다.
- 초반: 온도가 높을 때는 가파르게 내려가야 합니다. 완만하다면 감점입니다.
- 후반: 실온에 가까워지면 천천히 식어야 합니다. 가파르게 떨어진다면 감점입니다.
- 중간: 온도가 다시 올라가는 구간이 있다면, 열원 없이 커피가 저절로 데워진 셈이니 큰 감점입니다.
AI는 두 채점관의 감점을 합친 점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곡선을 계속 고쳐 나갑니다. 그 결과 측정값이 두 개뿐이어도, 그 사이를 물리 법칙에 맞게 부드럽게 식어 가는 곡선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곡선의 기울기는 어떻게 재나요?
여기서 쓰이는 기술이 자동 미분입니다. 일반적인 AI 학습에서도 내부 다이얼(가중치)을 조정하기 위해 미분을 씁니다. PINN은 여기에 더해, AI가 내놓은 온도 곡선을 시간(t)에 대해 미분해서 "지금 이 순간 얼마나 빠르게 식고 있는가"를 계산합니다. '자동'이란, 사람이 공식을 손으로 풀지 않아도 컴퓨터가 계산 과정을 추적해 기울기를 구해 준다는 뜻입니다. 이 값을 냉각 법칙에 대 보면 채점이 끝납니다. 미분이 물리 법칙과 AI를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물리 채점관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물리 법칙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 규칙이 아니라 감점 항목으로 들어갑니다. 어기면 점수가 깎여 법칙을 지키는 쪽으로 유도되지만, 완전히 막아 주지는 못합니다. 학습이 충분하지 않거나 문제가 아주 복잡하면 오차가 남을 수 있습니다.
법칙 속의 보이지 않는 숫자도 찾아낸다
냉각 법칙에는 커피잔의 재질, 모양, 주변 바람에 따라 달라지는 '식는 속도 계수'가 들어 있습니다. 이 값을 미리 몰라도, PINN은 측정값과 가장 잘 맞는 계수를 학습 과정에서 함께 찾아낼 수 있습니다. 측정 결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량을 거꾸로 추정하는 것, 앞서 말한 역문제입니다.
PINN은 아직 복잡한 난류를 완벽하게 풀어내거나 슈퍼컴퓨터를 대체하는 만능 도구가 아닙니다. 다만 데이터는 적고 물리 법칙은 알려진 문제에서 가능성을 보여 주며 활발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 희소 데이터 보완:
센서를 촘촘히 심기 어려운 파이프라인이나 지하수 흐름에서, 드문드문한 측정점 사이의 공백을 물리
방정식으로 채우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 역문제 활용:
앞서 본 역문제의 원리가 비파괴 검사 같은 분야에 응용되고 있습니다. 표면 온도나 진동만으로 내부 손상
이나 물성치를 추정하려는 시도입니다. 이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빠른 대리 모델:
조건(온도, 형상 등)을 변수로 포함해 학습시킨 경우, 한 번 학습을 마치면 새로운 조건의 결과를 빠르게
추정할 수 있어 설계 최적화에 활용하려는 연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달라질 때마다
재학습이 필요한 경우도 많습니다.
한계도 분명합니다. 복잡하고 규모가 큰 문제에서는 학습 자체가 어렵습니다. 데이터 채점관과 물리 채점관의 감점 비중을 어떻게 맞출지 조절하는 일도 까다롭습니다.
다음에 식어 가는 커피를 볼 일이 있다면 그 곡선 속의 규칙을 떠올려 보세요. 처음에는 빠르게, 실온에 가까울수록 천천히 식는다는 미분방정식 한 줄입니다. AI가 그 한 줄을 배우면 측정값이 두 개뿐인 곡선도 물리적으로 말이 되게 이어 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데이터만 학습한 AI는 본 적 없는 영역에서 약해집니다.
PINN은 미분방정식을 채점표에 넣어, 데이터가 없는 구간에서도 법칙에 어긋나는 답에 감점을 줍니다.
만능은 아니지만, 데이터가 적고 법칙은 알려진 문제에서는 유력한 선택지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분야에는 어떤 법칙이 있나요? 그 법칙을 AI의 채점표에 넣는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