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삶은 충분할 수 있는가

영화

by미아




MV5BNTY2MDJlMTMtMTE4MS00OGE2LTliYTMtOTJiZDIwNTVjMDFjXkEyXkFqcGc._V1_.jpg?type=w773Perfect Days, 2023

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

출연: 야쿠쇼 코지, 에모토 토키오, 나카노 아리사, 야마다 아오이, 아소 유미, 이시카와 사유리, 미우라 토모카즈, 다나카 민

각본: 빔 벤더스, 다카사키 타쿠마

촬영: 프란츠 루스티히(Franz Lustig)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23분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


평범한 하루를 사랑하는 것만으로 삶은 충분할 수 있는가






아침이 오면 히라야마는 눈을 뜬다. 이불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은 뒤 집을 나선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차에 오르고, 카세트테이프를 골라 음악을 들으며 도쿄의 거리를 달린다. 공공 화장실에 도착하면 거울과 세면대, 변기와 바닥을 꼼꼼하게 청소한다. 점심에는 신사 근처 나무 아래 앉아 샌드위치를 먹고,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찍는다. 일을 마치면 목욕탕에 들르고, 익숙한 곳에서 저녁을 먹은 뒤 중고서점에서 산 바카라을 읽다가 잠든다. 다음 날에도 비슷한 하루가 시작된다.


사건만 놓고 보면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에는 놀랄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바로 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두 시간 넘게 바라보면서 우리가 평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질문 하나를 천천히 앞으로 가져온다. 삶의 가치는 특별한 사건의 크기로 결정되는가, 아니면 매일 반복되는 시간을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가.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며 살아가는 중년 남성이다. 그는 말수가 적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며, 스마트폰보다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디지털카메라 대신 작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 밤에는 윌리엄 포크너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같은 작가들의 바카라을 읽고, 쉬는 날에는 빨래를 하고 사진을 현상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그를 불행한 사람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히라야마는 아침마다 집 밖에서 빗자루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미소 짓고, 운전하다 하늘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다가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발견한다.


칸영화제 공식 소개 역시 그가 구조화된 일상을 살아가면서 음악과 바카라, 나무와 사진을 좋아하는 인물이며, 예기치 않은 만남을 통해 조금씩 과거가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한다. 히라야마를 슬롯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에 소박한 삶에 만족해야 하는 사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의 삶을 아무런 상처도 없는 ‘힐링 라이프’로 이상화하는 데서 멈추지도 않는다. 영화 후반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그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슬롯적 배경을 가진 사람일 가능성이 드러나면서, 현재의 생활이 단순한 조건이 아니라 어느 정도 스스로 선택하고 구축한 삶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퍼펙트 데이즈〉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영화가 왜 하필 ‘화장실 청소부’의 일상을 중심에 놓았는지도 분명해진다. 작품은 처음부터 일반적인 극영화 기획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도쿄 시부야의 17개 공공 화장실을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새롭게 설계한 실제 프로젝트 ‘THE TOKYO TOILET’를 기록하는 작업에서 시작되었고, 벤더스는 현장을 접한 뒤 단순한 다큐멘터리보다 그 공간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했다. 학술지 《The Gerontologist》의 영화 분석 역시 작품이 원래 이 프로젝트를 기록하는 비허구 작업에서 출발했으며, 벤더스가 건축물에 매료되어 화장실을 관리하는 인물을 중심으로 극영화를 발전시켰다고 설명한다. 벤더스 자신도 일본 인터뷰에서 화장실을 단순히 감추고 싶은 필요 시설이 아니라 문화와 슬롯의 중요한 공간으로 보게 되었으며, 이것을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다큐멘터리보다 서사를 가진 영화가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 출발점은 영화의 노동관과 직접 연결된다. 화장실 청소는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쉽게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사람들은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면서도 누가 그 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는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히라야마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일을 한다. 그런데 벤더스의 카메라는 그의 노동을 단순한 배경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거울을 닦고, 작은 도구로 변기 아래까지 확인하며, 다음 이용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세밀하게 청소하는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야쿠쇼 코지는 실제 촬영을 위해 THE TOKYO TOILET 관계자들에게 이틀 동안 청소 훈련을 받았고, 촬영 현장에서도 지속적으로 실제 작업 방식을 배웠다고 밝혔다. 그는 깨끗하게 관리된 공간을 이용한 사람이 그 상태를 존중하고 싶어지는 ‘시민적 감각’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히라야마의 노동은 영화 속에서 비참함의 기호도, 노동을 신성화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을 정확하고 세심하게 수행한다. 그 태도를 통해 영화는 직업의 슬롯적 위신과 한 사람이 자기 일을 대하는 존엄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벤더스 역시 칸영화제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느낀 ‘service’와 ‘common good’, 즉 서비스와 공동선을 작품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언급했다. 동시에 그는 공공화장실이 단순히 부끄럽게 감춰야 할 필요 시설이 아니라 일상문화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 발언을 영화와 함께 보면 히라야마가 화장실을 청소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수행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이 사용할 공간을 정돈한다. 이용자 대부분은 그의 이름도 모르고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다음 사람을 위해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런 의미에서 〈퍼펙트 데이즈〉의 일상은 철저하게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히라야마는 사람들과 많은 말을 나누지 않지만 그의 노동은 매일 이름 모를 사람들의 하루와 접촉한다.


그러나 영화가 반복되는 삶을 단순하게 이상화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히라야마의 동료 다카시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다. 지각하고, 청소를 대충 하며, 돈이 부족하다고 불평하고, 관심 있는 여성 아야에게 잘 보이기 위해 히라야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두 사람이 경험하는 하루는 완전히 다르다. 이 대비를 ‘성실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이라는 도덕적 구도로만 읽으면 영화가 단순해진다. 더 중요한 차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대하는 방식에 있다. 히라야마는 자신이 하는 일을 현재의 경험으로 받아들이지만 다카시는 지금을 원하는 다른 무언가를 얻기 전까지 견뎌야 하는 시간처럼 여긴다. 히라야마 역시 욕망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음악과 바카라, 사진과 나무를 좋아하고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며 가족과의 관계에서 동요한다. 다만 그는 ‘다른 것이 생기면 그때 삶이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삶이 특별한가 평범한가가 아니라 자신이 지금 살아가는 시간에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그 태도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이미지가 ‘코모레비(木漏れ日)’다.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면서 바닥과 얼굴, 벽 위에서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는 빛을 가리키는 일본어다. 히라야마는 점심시간마다 나무를 올려다보고 작은 필름 카메라로 그 빛을 찍는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원래 작업 제목 역시 Komorebi였다. 벤더스는 촬영 도중 히라야마가 루 리드의 ‘Perfect Day’를 듣는 장면을 찍다가 공동각본가 다카사키 타쿠마와 거의 동시에 지금의 제목이 더 적절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코모레비’가 영화의 이미지와 감각을 압축한다면 ‘Perfect Days’는 그 감각을 삶 전체의 문제로 확장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미아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영화 비평을 써왔습니다. 영화처럼 오래 기억되고, 시처럼 문득 다시 떠오르는 글을 써 보고 싶습니다. 무심한 문장에 사랑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

13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2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작가의 이전글가을 보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