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위어 <프로젝트 헤일메리>

바카라 리뷰

bymorgen

<프로젝트 헤일메리> 앤디 위어 지음, 김동혁 옮김. 2021. (주)알에이치코리아


타우 세티(Tau Ceti)

691쪽의 두꺼운 바카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곰곰 생각하다가 타우 세티(Tau Ceti)를 리뷰의 시작으로 삼는다.

타우 세티는 지구에서 약 12광년 떨어져 있는 실제 항성이다. 태양과 비교적 비슷한 성질을 가진 별이라 오래전부터 외계 생명체나 거주 가능한 행성을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어 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아스트로파지가 퍼진 별들은 어두워지고 있는데, 타우 세티만은 그렇지 않다. 같은 아스트로파지가 있는데 왜 타우 세티만 멀쩡할까? 이것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출발이다.

인류는 타우 세티에 무언가 특별한 원인이 있다고 판단한다. 원인을 알아내면 태양을 아스트로파지로부터 구할 방법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타우 세티에 도착한 지구인 그레이스가 외계생명체 로키를 만난다. 지구인도 “왜 타우 세티만 살아남았지?”라는 의문 때문에 그곳에 왔고, 에리디안 로키 역시 자기 별을 구하기 위해 같은 의문을 따라 그곳에 왔다.

처음에는 지구를 구할 해답이 있을지도 모르는 별이었는데, 그곳에서 전혀 다른 두 생명체가 만난다. 아스트로파지는 두 세계를 위기에 빠뜨렸고, 타우 세티는 두 세계의 존재를 만나게 했다.


아스트로파지, 재앙인 동시에 자원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아스트로파지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그것이 일으킨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소설이다.

이야기의 근원인 아스트로파지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존재, 아스트로파지. 81쪽

"이럴 수가! 아스트로파지는 현존하는 가장 효율적인 로켓 연료에요! ..." 148쪽

아스트로파지는 실제로 존재하는 생물도, 기존 생물학의 정식 용어도 아니다. 앤디 위어가 이 소설을 위해 설정한 가상의 외계 단세포 생명체다. 그리스어 계열의 과학용어처럼 보이도록 만들어낸 이름. 흙을 먹는다는 뜻의 실제 단어 '지오파지(geophagy)'에 빗대어 생각해보자면 별빛을 먹고, 그 에너지를 자기 몸 안에 엄청난 밀도로 저장하는 미생물이다.

태양에너지를 빼앗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멸종을 가져오는 적이다. 그러나 흡수한 막대한 에너지를 자기 안에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거꾸로 그것을 엄청난 에너지 밀도를 가진 연료로 이용한다. 여기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핵심적인 역설 하나가 생긴다. 인류를 멸망시키는 생명체가 인류를 구하러 갈 우주선의 연료가 된다는 것.

앤디 위어는 가능한 부분에서는 실제 물리학과 화학을 상당히 엄격하게 따르지만, 아스트로파지 자체의 핵심 메커니즘은 의도적인 SF적 비약이다. 아스트로파지가 작동하는 양자 수준의 원리는 허구적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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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메리

헤일메리(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 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 버저가 울리는 순간에 득점할 것을 노리고 먼 거리에서 던지는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이기도 하다-옮긴이) 70쪽

('헤일메리'는 미식축구 및 농구 경기 용어이기도 하지만, 가톨릭 등 기독교 일부 종파의 기도문인 성모송을 일컫기도 한다. 여기에서 착안한 말장난이다-옮긴이) 180쪽

SF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헤일메리"는 단순한 우주선 이름이 아니다. 지구와 인류를 살리기 위해 던지는 마지막 공이다. 마지막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거는 행위를 뜻한다.

헤일메리호의 목적은 타우 세티로 가서 왜 그 별만 아스트로파지의 영향을 받지 않는지를 알아내고, 정보를 지구로 보내 인류를 구하는 것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에리디안과의 공존을 염두에 둔 프로젝트가 결코 아니다. 지구인들은 로키를, 에리디안이라는 종족을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타우 세티에서 그레이스와 로키가 만난다. 그레이스는 지구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가능성의 공을, 로키는 에리드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가능성의 공을 던진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한 종의 생존에서 두 종의 연대와 상호구원으로 확장된다. 나를 살리기 위해 떠났다가 타자를 만나고, 결국 서로가 서로의 생존 가능성이 되는 과정이 이 바카라의 중요한 메세지이다. 이야기는 '공존'이 아닌 '상호 구원'의 진행이다.


등장인물

에바 스트라트

아스트로파지 위기가 발견된 뒤 인류 생존 프로젝트 전체를 지휘하는 바카라임자다. 과학자라기보다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레이스가 ‘과학의 인간’이라면 스트라트는 ‘결단의 인간’으로 서로 대조를 이룬다. 국가, 법률, 예산, 윤리적 절차를 평상시처럼 하나씩 거쳐서는 인류 멸종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스트라트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 옳은가?”보다 “이것이 인류를 살릴 수 있는가?”이다. 스트라트를 통해 소설은 상당히 흥미로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인류 전체가 멸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어디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 읽기를 멈추고 잠시 생각에 잠겨 답을 찾아보았지만 나같은 범인은 어떠한 답도 내놓지 못하고 다음 읽기로 넘어갔다.


라일랜드 그레이스

주인공이자 화자. 원래는 중학교 과학 교사이고, 그 이전에는 분자생물학 분야의 연구자였다. 그레이스의 중요한 특징은 천재 과학자라는 데만 있지 않다. 끊임없이 관찰, 가설, 실험, 실패, 수정, 재실험을 반복한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과학은 지식의 집합이라기보다 생각하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레이스는 모르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아가는 인간이다. 그레이스의 기억상실은 단순한 스릴러 장치가 아니다. 자신도 자기 자신을 하나의 미지의 대상처럼 조금씩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독자는 그 과정을 함께 걸어나간다.


로키

로키는 에리드(Erid)라는 행성에서 온 외계 생명체다. 소설에서 로키의 진짜 의미는 ‘외계인’이라는 데 있지 않다.

그레이스와 로키는 서로의 언어도 모르고, 생물학적 구조도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도 전혀 다르다. 둘에게는 공통언어인 과학이 있다. 숫자, 물리법칙, 실험, 관찰을 통해 둘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로키는 과학이 어떻게 언어와 종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존재다.


로키와 그레이스, 정情

그레이스는 인류를 향한 공적 바카라임을 완수한 뒤, 함께한 시간 속에서 생겨난 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구원해야 할 '우리’의 범위는 인간이라는 종의 경계를 넘어선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공동체의 운명을 짊어진 과학자의 공적 바카라임감과, 함께 지낸 시간속에서 축적된 정(情)의 갈등이 충돌한다.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독자는 이미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거나, 예측을 하면서 감상에 젖어 눈물까지 흘리게 된다(이런 면에서는 로맨스 소설같은). 한국사람인 나는 ‘정(情)’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한국에서 "정"은 단순한 우정(friendship)보다 넓기 때문에.

그레이스가 로키를 처음 만났을 때 둘을 이어주는 것은 과학이다. 수학과 물리법칙으로 의사소통하고, 서로의 대기와 생물학을 이해하고, 아스트로파지 문제를 함께 풀어나간다. 이때 둘의 관계는 협력이다.

하지만 함께 먹고, 자고, 일하고, 위험을 넘기고, 농담하고, 서로를 돌보는 시간이 쌓인다. 로키는 에리디안이라는 외계 종족의 한 개체가 아니라 그레이스에게 구체적인 한 존재가 된다. 이해는 같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알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처음에 그레이스는 우리가 곧 인류다, 지구를 살려야 한다, 태양을 살려야 한다, 인류를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우주에 갔다. 우주에 나가보니 ‘우리’가 아닌 또 다른 존재가 있다.

저건... 저건 외계의 우주선이다. 왜계인이,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지능이 있는 외계인이 만든.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우리의 이웃을 만났다. 179쪽

에리디안 로키.

로키에게도 고향이 있고, 동료가 있고, 구해야 할 세계가 있다. 로키의 존재를 안 순간 질문이 바뀐다.

‘인류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서 ‘서로 다른 생명은 서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이것이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단순한 과학소설을 넘어서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를 안봤다. 소문으로는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고하는데, 바로 이 '과학을 넘어선 지점' 때문이 아닐까?


언어와 소통

처음 로키의 언어는 몇 개의 음표에 불과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였던 음표는 단어가 되고 문장이 된다. 마침내 농담과 걱정과 애정을 전달하는 언어가 된다. 낯선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언어를 배우는 일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레이스와 로키도 이 과정을 지나며 서로 이해가 더 깊어졌다.

다행히도 로키는 음악적인 화음을 써서 말한다. 컴퓨터에게 인간의 말을 글로 바꿔놓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음정을 파악해 표에서 해당 음정을 찾도록 하는 건 무척 쉬운 일이다. 이때부터는 내 노트북 화면에 로키가 하는 말의 영어 번역본이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새로운 단어가 나타나면, 나는 데이터베이스에 그 단어를 입력한다. 그때부터는 컴퓨터가 그 단어를 알아듣는다. 295쪽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음악적인 화음)였던 것이 언어가 되고, 언어(컴퓨터로 인식)는 인격(로키)이 되고, 그 인격은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타이포그라피

이 바카라은 외계인의 ‘말’을 음표 기호로 보여주고, 독자가 주인공과 함께 그것을 점차 언어로 인식하게 만드는 방식이 독특하다. 그레이스가 알아듣기 전 로키의 말은 ♩♫ 같은 음표로 표시되고, 이해한 뒤에는 인간이 이해하는 언어로 전환된다. 바카라에서 처음에는 음표였다가 그레이스가 이해하게 된 뒤에는 다른 활자체로 설명한다.

"♬♩♪ ♬ ♬ ♪ ♬♩ ♬ ♪ ♬♩." 로키가 말한다. 컴퓨터가 번역한다. "아스트로파지 나 별에 나쁨. 나쁨. 나쁨." ♬ ♬ ♬♩♪ ♪♬ ♬ ♪ ♬." 로키가 말한다. 컴퓨터가 금방 글자를 표시한다. 296쪽

이러한 방식은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처음은 아니다. 문자가 아닌 기호·음표·그림·페이지 배치 자체를 서사의 일부로 사용한 소설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문자 이외의 것을 바카라의 언어로 삼는다’는 발상 자체는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런스 스턴(Laurence Sterne, 1713-1768)의 <트리스트럼 샌디>(1759–67)에는 유명한 검은 페이지, 빈 페이지, 특이한 선과 페이지 배치가 등장한다. 한국어 번역본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생애와 견해>(김성균 옮김, 2020, 지식을 만드는 지식 출판)

20세기 이후에는 실험소설·구체시(concrete poetry)·그래픽노블 등에서 더욱 활발해진다. 글자의 크기, 방향, 빈 공간, 구두점까지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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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스턴의 1759년 소설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생애와 견해>는 활자체, 구두점, 그래픽 디자인을 핵심적인 서사 도구로 활용했다. 한글번역본 1권 650쪽, 2권 1395쪽의 이야기가 술술 잘 넘어가는 바카라이다.


로키의 독특한 말투

"넌 어디서 옴, 질문?" 로키는 영어의 기본 어순을 배웠다. 296쪽

그는 언제나 질문을 '질문'이라는 단어로 맺었다. 297쪽

“ㅇㅇㅇㅇ, 질문?”라는 문장에서 독특하고 귀여운 말맛을 느낀다. 두꺼운 바카라에서 이것이 독서의 피로를 풀어주는 장치인 것같다. 어려운 천체물리학과 생물학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로키가 짤막하게 엉뚱한 말을 하면 분위기가 확 풀린다. 나는 이러한 언어 변화가 단순한 재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음표→ 단어→ 짧은 문장→ 대화→ 농담→ 감정 표현, 이 순서는 사실상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가 깊어지는 순서와 같다. 처음의 로키는 그레이스에게 ‘해독해야 하는 외계 생명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독자도 로키의 말을 번역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냥 로키가 말하고 있다. 더 뒤로 가면 “---, 질문?” 같은 불완전한 문법 자체가 로키의 말투, 그의 성격처럼 느껴진다. 바카라의 끝무렵에 가면 독자에게 로키는 더이상 외계인이 아니다. 내가 로키와 그레이스의 관계에 '정(情)'이라는 우리말을 붙인 것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밑줄친 문장들

“2더하기 2는 무엇입니까?” 10쪽.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16쪽

주인공이 낯설고 혼란스러운 환경에서 깨어난 후 겪는 초기 기억력과 인지 기능 검사, 혼란과 당혹감을 강조한다. 질문은 혼돈 속에서 통제력과 명확성을 되찾아야 할 필요성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1차, 2차, 3차, 이름을 거듭 묻는 장면은 정체성의 근본적인 측면, 즉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보여준다.


어려운 시기에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외계 생명체로 인한 대재앙 속에서도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지식의 중요성과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승하는 것의 가치를 강조한다.

이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지 못한다면 세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뭐겠는가? 54쪽

교육자와 어른들이 젊은 세대를 양육하고 지도해야 할 근본적인 바카라임을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식을 가르치고 나누는 것에는 가치가 있으며, 문화와 지성의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마음에 새긴다.


이 항성계에 나 말고도 다른 우주선이 있다. --- 저 우주선도 아스트로파지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헤일메리와 똑같다. --- 저건 외계의 우주선이다. 외계인이,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지능이 있는 외계인들이 만든.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우리의 이웃을 만났다. 179쪽

외계 우주선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주인공의 여정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되며, 경이로움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인류의 우주 속 위치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는 중요한 발견의 순간을 보여준다. 지구 너머 생명체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은 로키의 능력에 감탄하며 인간과 에리디안의 여정을 비교한다. 로키가 속한 종족인 에리디안족은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지할 가능성이 높다. 시각 대신 소리에 의존할 수도 있다.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환경을 탐색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독특한 생물학적 적응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들은 수천 년 동안이나 별을 쳐다보면서 저 바깥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했어. 너희들은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그런데도 우주여행을 해냈구나. 너희 에리디언들은 정말 놀라운 민족이 틀림없어. 과학 천재들이야.” 280쪽


레델 박사의 블랙패널 개발은 세계 에너지 위기에 대한 혁신적인 대응바카라을 보여준다. 투옥과 개인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프리카의 에너지 생산 방식을 혁신하고 빈곤을 완화할 수 있는 확장 가능한 솔루션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 일이 전부 끝난 뒤에는 그 정부들이 흑색 패널을 보유하게 될 거에요. 그들이 세계의 산업 에너지 발전소가 될 겁니다.” 322쪽

위기 속에서도 긍정적인 슬롯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력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에너지 혁명에 대한 비전은 당장의 생존을 넘어 더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너와 나 아스트로파지 죽일 방법을 함께 과학. 지구 구함. 에리드 구함. 좋은 계획, 질문?” 368쪽

동족에 대한 의무와 공동 생존에 대한 헌신이라는 더 넓은 주제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종의 생존에 대한 뿌리 깊은 헌신을 반영하고, 서로 다른 존재 간의 협력에 대한 고무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이건 더 이상 자살임무가 아니다. 제대로 패를 내기만하면 나는 세상을 구할 뿐만 아니라 집에 간다. 498쪽

개인적인 생존을 초월하는 거대한 목표, 세상을 구하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의 의지를 드러낸다. 나는 왜 "집에 간다"는 말에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지는 걸까?


“나를 그리워할 것임, 질문? 나는 너를 그리워할 것임. 너는 친구임.” “응, 나도 널 그리워할 거야.”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신다. “너는 내 친구야. 세상에. 넌 내 가장 친한 친구야. 그런데 좀 있으면 우린 영원히 작별하게 돼.” 612쪽

이 가슴 뭉클한 우정의 표현은 이별의 슬픔을 강조한다. 특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함께 겪은 경험을 통해 형성된 유대감을 부각한다.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 동료애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내게 남겨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 영웅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서 모든 인류를 구한다. 둘. 에리드로 가서 외계인 종족을 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굶어 죽는다. 655쪽

그레이스는 개인적인 영광의 유혹과 다른 종족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희생 사이에서 고뇌한다. 이타심과 이기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나라면 어떤 쪽을 선택할까?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주인공 그레이스가 지구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오랜 세월을 보낸 후, 에리드 행성의 돔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에리디안들은 그레이스를 위해 균형 잡힌 식단을 성공적으로 합성해내고, 심지어 그의 근육 조직으로 "미버거"까지 만들어낸다. 이는 그의 파란만장한 여정에서 흥미로운 반전이다. 그레이스의 생활 환경과 에리디안들의 지혜가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치 집단 두뇌처럼 여겨진다.

이 바카라은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연결고리에 대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두껍지만 읽기 편한 바카라

691쪽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과 실제 독서의 체감은 상당히 다르다. 시각적인 여백이 많아 읽기 편하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대화가 많고, 한 문단이 짧다. 장면 전환도 빠르다. 그레이스와 로키가 만난 뒤에는 짧은 문답이 계속되면서 페이지가 아주 빨리 넘어간다. 게다가 그레이스의 사고 과정도 긴 설명문보다는 문제 제기, 추측, 실험, “아니다”, 다시 생각하기, 이런 식으로 잘게 끊어진다. 내용에는 천체물리학·미생물학·상대성이론까지 들어가는데 문장 자체는 독자를 붙잡아두지 않는다.

토마스 만이나 헤세, 특히 제발트 같은 독일어권 작가들을 읽다가 이 바카라을 보면 읽기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전에 읽고 리뷰를 쓴 <아우스터리츠>는 한 문장이 생각을 계속 품으면서 종속절을 데리고 앞으로 나가고, 한 문단 안에서 기억과 묘사와 사유가 겹쳐지니 페이지의 물리적인 밀도 자체가 다르다.

로키의 언어도 읽기 리듬에 한몫한다. 복잡한 과학적 설명이 조금 길어질 즈음이면 로키가 끼어들어 짧게 묻고, 그레이스가 대답하고, 둘이 티격태격한다. 그러면 과학 설명이 다시 두 존재의 대화로 바뀐다. 691쪽이라는 분량과 달리 페이지에는 여백이 많았다. 과학은 무거웠지만 문장은 가벼웠고, 그레이스와 로키의 짧은 대화가 긴 우주여행에 속도를 붙였다.

로키의 말투가 아니어도 글읽기의 재미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구의 반지름을 아는 사람?” 트랭이 손을 들었다. “3,900…”

“트랭!” 애비가 말했다. “답은 트랭이에요.” 트랭이 어리둥절해 얼어붙었다. “뭐라고?” 내가 물었다. 애비가 우쭐하며 말했다. “지구의 반지름을 아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셨잖아요. 트랭이 아니까, 제가 말한 게 정답이죠.” 56-57쪽.

가끔은 이런 구절이 나와야 691쪽 바카라의 무게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 아스트로파지는 우주의 수수께끼이고, 로키는 타자의 수수께끼이다. 기억을 잃은 그레이스는 자기 자신의 수수께끼이고, 나에게는 픽션인가 논픽션인가의 수수께끼이다.


앤디 위어

앤디 위어(Andy Weir, 1972- )는 과학을 이야기의 장치가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만드는 작가다. 20여 년 동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고, 상대성이론과 궤도역학, 우주비행의 역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첫 장편소설 <마션>의 성공으로 전업작가가 된 뒤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발표했다.

그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초인적인 능력보다 관찰하고 계산하고 실험하며 실패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헤쳐나간다. 복잡한 과학을 유머와 빠른 대화 속에 풀어내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 역시 ‘성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떤 연료가 필요할까’라는 과학적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은 <마션>과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이야기하지만, 솔직히 나는 앤디 위어의 소설을 한 번도 읽은 것이 없다. 그의 원작으로 만든 영화를 한 편도 본것이 없다. 여러 매체를 통하여 소문을 듣긴 했다. 70대 중반 나이의 할머니가 무슨 SF소설을 읽겠는가?

가끔 들르는 공주의 북카페 "오래된 질문"에 진열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집어들었다. 구매한 후에 바카라방 의자에 앉아서 100페이지까지 읽었다. 모르는 과학쪽 이야기를 이해해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몰두했으나, 역시 그건 나에게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카라은 술술 읽히고 재미있다. 과학에 집중하기보다는 "인간"과 "존재"에 집중하다보니 꾸준히 바카라장을 넘기게 되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한물 가고 <오디세이아>가 뜨겁게 달궈진 모양이니 다음엔 <오디세이아> 리뷰를 써볼까... 그건 좀 어려운 미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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