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이 흐르는 언덕> 모리스 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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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morgen

<영감이 흐르는 언덕> 모리스 바레스 지음, 박용주, 홍순도 옮김. 2026. 도서출판 등.


모리스 바레스의 <영감이 흐르는 언덕>은 언뜻 종교소설처럼 보인다. 프랑스 로렌 지방 시옹 언덕을 배경으로, 폐허가 된 순례지를 되살리려는 바이야르 형제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실재했던 종교운동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폐허가 되어 가던 순례지를 다시 성지로 되살리려는 바이야르 형제의 열정과 그들이 교회 제도와 세속 권력과 부딪히며 겪는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의 중심은 사건 자체에 있지 않다. 저자 모리스 바레스는 한 언덕에 오랜 세월 축적된 역사와 신앙, 전설과 인간의 기억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움직이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욕망과 신념을 품고 있지만, 결국 모두가 하나의 장소가 지닌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린다. <영감이 흐르는 언덕>은 종교소설인 동시에 장소와 기억, 공동체의 정신을 탐구하는 철학적 소설로 읽힌다.

우리는 보통 사람이 장소를 선택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오히려 어떤 장소가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오래된 성당이나 이름 없는 언덕과 수백 년 동안 순례자들이 걸었던 길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는 시간을 통과한 사람들의 기억과 기도가 겹겹이 쌓여 있다.

바레스가 바라본 언덕도 그렇다.

바레스가 말하는 언덕은 흙으로 이루어진 지형이 아니다. 그곳은 오랫동안 축적된 기억이며, 신앙이며, 역사이며,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발걸음이 남긴 보이지 않는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덕은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처럼 사람들을 부른다.


주인공들은 모두 다른 꿈을 품고 있지만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본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개인의 야망이 아니라 언덕이 품고 있는 오래된 정신이다.

모리스 바레스는 인간을 개인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이 태어난 땅과 그곳의 역사, 조상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간다고 믿었다. <영감이 흐르는 언덕> 역시 이러한 그의 사상이 가장 아름답게 구현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독자는 소설을 읽는 동안 한 장소가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함께 사유하게 된다.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정말 장소는 사람을 바꾸는가.

레오폴 바이야르는 시옹 언덕에서 하나의 소명을 발견한다.

그는 언덕위에 깃든 고요와 인내, 끝없이 이어진 꿈결같은 사유의 풍광을 응시하며 다짐했다. 이곳에서 하나의 사상이 탄생할 것이며 그것은 무장을 갖추고 살아 움직이며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고. 그 순간 장엄한 그림자들이 다가와 신성한 힘처럼 그에게 속삭였다. '이곳에 네게 맡긴 숭고한 소명이 있노라.' 55쪽.

그는 실제로 신용자금을 모아 옛 순례지의 토지와 건물을 사들이며 자신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 대목을 읽다가 오래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에게도 사고 싶었던 집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집이었다. 어느 날 찾아가 보니 옛집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다세대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여러 채로 나뉜 건물을 바라보며, 비록 그곳에서 ‘하나의 사상이 탄생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삶의 한 시절도 함께 사라졌다는 허전함을 느꼈다.

레오폴이 시옹 언덕을 바라보던 마음도 어쩌면 비슷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건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을 되찾고 싶은 것일게다.

레오풀은 '숭고한 소명'을 맡아 시옹 언덕을 사들일 때 얼마나 큰 꿈에 부풀어있었을까. 단순히 명상의 은신처를 세우는 것이 목표가 아닌 더 큰 꿈을 품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꿈을 펼쳤나갔다.

숭고한 소명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형제중의 한 명인 프랑수아는 말한다.

"나의 형인 원장님은(그는 레오폴을 가리켰다) 하느님으로부터 경배의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동생은(그는 키랭을 가리켰다) 규율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또한 우리 테레즈 수녀님 역시 새로운 여성 수도회 창립자이자 영도자로 봉헌되었습니다. [중략] 저는 지혜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습니다." 116-117쪽

안타깝게도 그의 열정은 곧 현실과 충돌한다. 신앙은 이상만으로 유지되지 않았고, 제도는 개인의 열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옹 언덕에는 악령의 소문이 퍼지고, 바이야르 형제들을 둘러싼 비난과 파문이 이어진다.

세 사제와 머리를 풀어헤친 수녀들이 사탄의 춤을 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사탄이 시옹의 성모 마리아상에서 스무 걸음 떨어진 곳에서 마력을 펼치고 있다. ---성전 앞에서 성모가 뱀의 머리를 밞아버리지만 뱀은 다시 몸을 일으킨다. 하지만 신자들이여 안심하라 로마가 곧 말할 것이다" 203쪽.

바레스는 어느 한쪽의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개인의 열정만으로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고, 제도만으로 인간의 영혼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끝내 질서와 자유, 공동체와 개인, 제도와 영감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마치 현재의 이야기같은 느낌이다. 이 소설은 한 세기 전에 쓰였지만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다.


영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바카라을 읽으며 '영감'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영감을 번뜩이는 아이디어쯤으로 여기지만, 바레스에게 영감은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땅에서 천천히 스며 나오는 정신이다. 영감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땅과 기억을 끝내 잊지 않는 사람에게 조용히 찾아오는 힘이다. 인간은 그것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귀 기울여 받아들이는 존재이다.

지은이에게 로렌 지방 시옹 언덕은 가슴 속에 품고있는 존재의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영감이 흐르는 곳이다.

영혼의 무기력을 일깨우는 곳, 신비에 감싸여 고요히 숨 쉬며 태초부터 신앙의 감성이 머물 자리로 운명 지어진 곳들이 있다. [중략] 이곳에 서면 불현듯 자잘한 일상의 제약들에서 벗어나 더 큰 빛으로 피어나고 싶은 갈망이 끓어오른다. 감정은 우리를 부추기고 에너지는 오롯이 펼쳐진다. 기도와 시의 두 날개를 타고 우리는 웅대한 확신을 향해 솟아오른다. 24-25쪽.


이 작품의 언덕은 하나의 상징이 된다. 누구에게는 순례지가 되고, 누구에게는 고향이다. 누구에게는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근원이다. 사람은 결국 자신을 지탱해 주는 언덕 하나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작품을 덮고 나니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 언덕을 찾게 되었다.

평생 여러 지역을 떠돌며 살았지만, 내 마음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유년 시절을 보낸 계룡산 숲이다. 두 팔 벌려 나무를 껴안고 빙글빙글 돌며 놀던 기억, 숲 냄새와 바람 소리까지도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장소일까, 시간일까. 입산금지된 산속의 옛집일까, 그 시절 함께했던 사람들일까. 아마 둘은 끝내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카지노에 <색의 우주>를 연재하면서 나는 "색은 물질이면서 기억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 <영감이 흐르는 언덕>을 읽고 나니 그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은 풍경이면서 기억이다.


우리는 새로운 풍경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바꾸는 것은 아름다운 경치가 아니라, 그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기억이다.

모리스 바레스가 말한 '영감이 흐르는 언덕'은 프랑스 로렌 지방의 시옹 언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평생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한 곳의 풍경. 힘들 때마다 마음이 돌아가는 그 장소.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영감이 흐르는 언덕 하나씩은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의 골목일 수도 있고, 오래 다녔던 학교일 수도 있겠지. 평생 잊지 못하는 한 마을일 수도 있다. 그곳은 힘들 때마다 다시 돌아가게 되는 마음의 풍경이다.


바카라을 덮은 뒤에도 세 명의 바이야르 형제와 그들의 소박한 고집, 희생, 고향을 향한 사랑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세 명의 바이야르 형제들, 그들의 자부심, 희생정신, 고향에 대한 사랑, 연민, 소박한 고집을 잊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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