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을 버틴 독립 기획자가 '후원'을 배우려는 이유
진심만으로는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워서,
아트너스클 심화교육 참여 신청서를 쓰다가 문득 정리해 본 글입니다.
(기획·운영 / 2023년 ~ 현재)
인왕산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안평대군의 무계정사, 중인들이 시를 짓던 필운대 등 조선의 풍류 문화가 깃든 장소입니다. '모두의 풍류 인왕산'은 이 공간이 지닌 역사와 정취를 오늘의 시민들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기획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장애 아티스트와 비장애 아티스트가 한 무대에 올라 '모두'가 함께 즐기는 풍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4년째 이어오며 한국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누적 2400여 명의 관객과 만났습니다.
저는 기획부터 섭외, 홍보, 현장 운영까지 전 과정을 맡고 있습니다. 종로구나 서울시의 재정 지원 없이 자력으로 운영하다 보니 예산 마련, 장소 협의, 인력 확보까지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장애 아티스트와 함께하는 무대인 만큼 접근성과 안전을 위한 준비에 더 많은 손길과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인왕산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이야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없이 함께 어우러진 무대에 감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활동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확인합니다.
② 열두달에피소드 – 24절기 한옥 프로젝트 (기획·운영 / 2023년 ~ 현재)
'열두달에피소드'는 우리 고유의 시간 감각인 24절기를 바탕으로 한국의 의·식·주 전통을 오늘의 일상 속에서 다시 경험하도록 기획한 문화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절기마다 그 계절의 풍속과 음식, 이야기와 한시, 공연을 엮은 '절기모임'을 열고, 서촌의 골목과 작은 가게들을 함께 걷는 '열두달산바카라', 한옥에서의 느긋한 쉼을 제안하는 '열두달한옥' 등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해 왔습니다. 전통을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함께 모여 즐기는 오늘날의 '풍류'로 풀어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특히 북촌문화센터의 계동한옥, 동묘 한옥 시화당, 효자동 한옥, 부암동 청운별서, 서촌 열두달 한옥 등 서울의 여러 한옥을 무대로 삼아, 공간이 지닌 정취와 절기의 의미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경험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2025년 서울한옥위크에서는 북촌문화센터에서 추석을 맞아 '한가위 풍류 모임'을 열어, 수확을 앞두고 풍년을 기원하던 세시풍속을 내외국인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 섭외와 협업, 프로그램 기획, 참여자 모집까지 현장 운영 전반의 경험을 쌓았고, 한옥과 절기라는 우리 문화 자원이 시민들의 일상과 만날 때 얼마나 큰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두 프로젝트는 '오늘의 풍류'라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해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풍류 인왕산'과 '열두달 절기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가장 크게 부딪힌 벽은 결국 '재원'이었습니다. 좋은 콘텐츠와 진심만으로는 프로젝트를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종로구나 서울시의 재정적 지원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활동을 이어오며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공연 하나, 절기모임 하나를 열 때마다 비용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특히 장애 아티스트와 비장애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무대는 이동 지원, 접근성 확보, 안전 인력 등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예산이 부족할 때마다 함께하는 예술가들에게 충분한 사례와 더 나은 환경을 드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마음 아팠습니다. 4년 동안 2400여 명의 관객이 보내준 공감과 응원이 이 활동의 가치를 증명해 주었지만, 그 가치를 지속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방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공공 지원에만 기대지 않고 기업과 개인의 후원을 이끌어내는 일이 문화예술 활동을 지속시키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업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후원자에게 어떤 가치를 제안해야 하는지, 한 번의 후원을 어떻게 지속적인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트너스클럽 심화교육을 통해 문화예술 후원의 구조와 실제 사례를 배우고, 기업 담당자와 예술가, 행정가 등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과 교류하며 시야를 넓히고 싶습니다. 장애예술과 전통문화, 한옥이라는 공간 자원은 기업의 슬롯공헌 및 ESG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에서 얻은 지식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두 프로젝트를 지속 가능한 모델로 성장시키고, 나아가 저처럼 지원 없이 고군분투하는 현장의 기획자들에게 후원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나누는 매개자가 되고 싶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쌓아온 경험이 있기에, 이번 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곧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육 기간 동안 성실하게 참여하는 것은 물론, '모두의 풍류 인왕산'과 '열두달에피소드'의 실제 사례를 함께 나누며 동료 교육생들과 고민을 주고받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겠습니다.
또한 교육을 마친 뒤에도 아르코와 아트너스클럽이 만들어 가는 문화예술 후원 생태계에 작은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중한 배움의 기회를 주신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그 기회를 현장의 변화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