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만小滿

Growing Grain

작은 것이 눈부시게 가득 차오르는 계절, '소만小滿'Growing Grain


입하(立夏)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노크였다면, 소만(小滿)은 대지가 본격적으로 초록의 숨을 몰아쉬는 계절입니다. "작은 것이 가득 차오른다"는 그 이름처럼, 이 무렵의 자연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생명력을 키워가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약한 연두 빛이던 잎사귀들이 어느새 제 손바닥보다 더 커다랗게 자라나 그늘을 만들고 있는 집 앞 감나무. 농가에서는 모내기 준비로 일 년 중 가장 바쁜 발걸음을 옮기는 때, 물을 가득 댄 논 위로 쏟아지는 햇살만큼이나 만물의 성장은 눈부십니다. 소만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진짜 여름의 냄새를 맡는 것 같아요.


입하로부터 시작된 여름절기.소만은 24 절기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절기입니다. 초여름 소만은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성장하여 가득 차오르는 때입니다. 소만 무렵,모내기가 시작되어 일 년 중 제일 바쁜 계절로 접어듭니다. 저희 집 앞에도 어느새 모내기를 한 벼가 보이네요.


이 눈부신 계절을 남다르게 기억하는 이유는 한옥에서 계절의 결을 느끼며 '절기 모임'을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었기 때문이예요. 세 번째 소만을 맞이하고 보니, 문득 첫 시작부터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첫 소만은 동묘 한옥에서 깊고 묵직한 거문고와 맑은 가야금 선율이 한옥에 울려 퍼지고, 미술사학자 최열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옛 선조들의 풍류가 담긴 그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날.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이어갈 풍류의 단단한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소만은 푸르른 감나무 아래 한옥 마당에서 재즈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의 선율. 동양의 공간과 서양의 재즈가 ‘소만’이라는 계절 안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지던 순간, 음악에 화답하듯 새들이 날아와 함께 노래를 불렀고, 까만 피아노 건반 위로 초록색 감나무 잎사귀가 툭, 툭 떨어져 내렸다. 그해 소만의 재즈는 지금도 귓가에 초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풍류의 뒤편에는 고마운 인연들의 땀방울이 있습니다. 좁은 한옥 문을 통해 그 무거운 피아노를 한옥마당으로 옮겨주시느라 고생하신 낙원상가의 사장님. 그 다정한 마음 덕분에 우리는 인왕산 수성동계곡의 물소리 앞에서도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재민이의 피아노 선율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길을 내어준 많은 이들이 없었다면 ‘열두달 풍류’는 이어지지 못했을 거예요.


세 번의 계절을 지나, 다시 소만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우리 열두달 절기 모임도, 우리의 문화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찬찬히, 그리고 가득히 차올랐음을 느낍니다.


만물이 폭풍 성장하는 이 눈부신 초여름, 우리가 이어가는 이 풍류의 깊이도 저 푸른 감나무 잎처럼 매년 더 단단하고 넓게 자라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hanok_episode 열두달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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