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높은 아이

불안했던 순간 기억 사진

by어모쌤 손정화

엄마, 아빠의 기억 속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엄마랑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어릴 때 이야기, 또는 엄마 젊으셨을 때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웃집에 소문날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는 아이가 바로 나다!

왜 울었을까?

어린 나를 만나러 가보고 싶다.

분명 이유가 있었겠지?


엄마와 아빠는 내가 불안이 높은 아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을까?

그냥 예민하고 겁이 많다는 정도로 생각하셨겠지?


어린 시절 나는 새로운 장소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나의 기억 속 선명한 기억이 있다.

온 식구가 아빠 친구분들 가족들과 함께 유원지로 피서를 간 날이었다.

그곳에 온 모든 아이들이 도착하자마자 계곡으로 첨벙첨벙 뛰어 들어가 물놀이를 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처음 입어보는 수영복도 낯설었지만 계곡 물도 낯설었던 것 같다.

다른 건 기억이 안 나고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조금씩 물과 친해져 들어가 놀이해 보려고 하던 그때!

"정화야 집에 가자!"

엄마가 부르셔서 그냥 나왔다.

예열이 필요한 아이!

그게 바로 어린 정화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언니는 같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어린 동생이 잘하고 있는지 보러 왔었나 보다.

"엄마, 정화 보러 갔는데 정화가 얼음처럼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었어"

저녁밥을 먹으며 언니가 전한 말을 듣고서야 날 보러 온 것을 알았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얼음처럼 앉아 있었는지는...


처음을 어려워했던 것 같다.

살면서 겪은 모든 처음이 너무 어려웠다.

처음으로 하는 혈액형 검사에 기절을 했다.

눈 떠보니 엄마가 계셨다.

친구들은 모두 집에 가고 없었고, 나는 양호실에 누워 있었다.

1학년 이 사건으로 학년이 바뀔 때마다 나는 선생님들의 요주의 학생이 되어 전달 사항이 되었다.


처음 민방위 훈련을 하던 날!

사이렌 소리에 놀란 나는 그 길로 실내화를 신은 채로 집까지 달려왔다.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횡단보도를 3개나 건너야 하는 길이었다.

친구들은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바카라상 아래로 들어갔다.

창 밖에 언니가 운동장으로 뛰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뛰어 나갔다.

6학년은 운동장으로 대피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었는데 몰랐다.

운동장을 횡단해서 교문을 지나 길로 뛰었다.

길에서 만난 친구 엄마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셔서 물으셨다.

"정화야, 학교 벌써 끝났니?"

"왜 너 혼자만 오니?"


첫 체육시간!

구름사다리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사다리같이 생긴 철 계단을 올라가 맨 꼭대기에서 다리를 벌려 반대편으로 건너가야 하는 기구였다.

처음 접하는 기구도 낯설었지만 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낯설었다.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

키가 작아 다리도 닿지 않았다.

뒤에 따라 올라오는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힘들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날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 었다.


중학생 때에도 기억나는 일이 있다.

주사를 맞는 날이었다.

전 학년 학생들이 주사를 맞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1학년 때 혈액형 검사 했을 때처럼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

시야가 마치 커튼이 쳐지듯이 조금씩 척척 소리를 내며 좁아졌다.

속은 울렁울렁거렸다.

곧 토할 것만 같았다.

주사를 맞고 나온 아이들이 나를 보며 놀랐다.

"정화야, 너 얼굴이 보라색이야!"

다행히 기절하기 바로 직전에 자리에 털썩 앉았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TV를 봤다.

'여명의 눈동자'

제목도 잊지 못한다.

총상을 입은 최재성을 마취도 하지 않은 채 살을 찢고 탄피를 꺼내는 장면이 있었다.

거기까지만 생각이 난다.

눈을 떴을 때에는 온 가족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자라며 조금씩 조심할 수 있었다.

불안이 나를 엄습해 오면 피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일 경우 불안이 더욱 커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순간에는 피할 수 없으니 최대한 기절하지 않기 위해 빨리 앉을 곳을 찾았다.


대학생 때 귀 옆에 뚫린 구멍에 염증이 생겨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는 신기한 환자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의사들을 모두 불러와 내 귀 옆에 생긴 염증을 보여줬다.

귀 옆에 구멍이 뚫린 사람을 보기 쉽지 않아서였을 거다.

이비인후과 진료실 의자에 앉아 간호사가 시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왔다.

숨 쉬기 곤란함과 구역질, 시야의 좁아짐이 느껴진 순간!

"환자분 왜 이래요? 이러면 시술 못해요"

결국 시술비만 내고 시술은 받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속상해하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나도 울적했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에서 근무했을 때였다.

스템플러를 눌렀는데 스템플러 심이 손가락을 찌르며 빗겨 지나갔다.

손에서 바늘에 찔렸을 때처럼 좁쌀알 보다도 작은 피가 보였다.

피와 놀람!

불안한 상황이 아니라고 내가 나를 안심시킬 시간조차 얻지 못했다.

내 얼굴은 또 보라색이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딸이 세상에 나왔던 날!

예정일보다 한 달 일주일이나 일찍 신호를 받았다.

양수가 터져서 24시간 이내에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했다.

산통이 오는 대기실에서 산소줄을 꼈다.

엄마와 가족들은 내가 무사히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무척 걱정했다고 한다.

양수가 터져서 촉진제를 맞고 세상에 나와야 하는 아기는 걱정하지 않았다고...

다행히 나는 엄마였다.

불안하지 않았다. 시야가 좁아지지도, 토할 것 같지도 않았다.

만약 평소처럼 불안 증세가 그대로 나타났다면 아기를 어떻게 낳았을까 지금 생각해도 겁나는 상황이었다.


그보다 먼저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났을까?

남편이 새벽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잠이 들었는데 술 좋아하는 남편이 거나하게 취해 들어왔다.

다음날 남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출근을 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나에게 일어났다.

유치원 전화를 건네받았는데 "네? 어디라고요?"

병원에서 온 전화였고, 남편이 지금 응급실에 와 있다는 전화였다.

놀라 그 길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들어선 순간!

"제가 000 씨 보호자인데요" 이 말을 겨우 뱉고 다시 병원 밖으로 뛰어 나갔다.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지 못해 쓰레기통에 헛구역질을 몇 번 해야만 했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어린이집 근무하던 때 이야기도 있다.

겨울 행사 준비가 급했다.

남편과 딸은 곤히 자고 있었다.

종이컵에 은색 모루를 감아 붙여 은종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글루건을 종이컵에 쏘고 있는데 뜨거운 액체가 떨어졌고 그걸 잡는다고 하다가 엄지 손가락에 글루건심 액체가 묻었다. 떼어내려고 하면서 빠르게 싱크대로 향했다.

일어나 보니 거실에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지도 몰랐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과 딸은 곤히 자고 있었다.


다섯 살반 담임교사였을 때였다.

나무 상자에 주저앉은 여자 아이의 아래에서 피가 보였다.

급하게 병원으로 가면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다행히 원장님이 함께 움직여주셨다.

부모님이 오셨는데

"선생님 괜찮으세요? 선생님 우리 00 괜찮으니까 걱정 마세요!"

내 얼굴이 또 보라색이 되었나 보다 했다.


이때까지는 불안을 다스리지 못했다.

깜짝 놀란 상황!

걱정이 갑자기 훅 들어온 상황!

그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어느 날!

한 의사가 말했다.

"환자분 이거 공황장애예요"


처음 들은 말에 또 한 번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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