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도서관에서 별러오던 <엉클 분미>라는 영화를 빌렸다.
PC에서 DVD를 보는 건 오랜만이라 사서님께 그냥 넣으면 바로 재생될까요? 하니 잘 모르시겠다고 한다.
일단 DVD를 넣고 함께 30분 정도 헤매어 겨우 보는 데 성공했다.
영화는 예상보다 덜 난해했고, 보통은 자연스럽다고 느끼지 않을 상황들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연스럽고 느긋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 태도에 기분 좋은 확장감을 느끼며 집에 돌아와 쉬는데, 야근 후 귀가한 반려인이 물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상을 당했는데 조의금을 얼마나 보내야 될까?"
함께 일한 지 2개월 남짓한 사이에, 조의금을 꼭 보내야 하는 건가.
"조의금?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계속 볼 사람이야?"
"응. 장례식장에 간 사람도 몇 명 있어."
"10만 원 보내면 되지 않을까? 20만 원 보낼 사이는 아닌 것 같고... 5만 원은 못 보낼 거 아냐."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주고, 가습기에 물을 채운 다음 침대에 누웠더니 그가 다시 묻는다. 이번엔 핸드폰을 보여주면서.
"저번에 밥 사준, 일하는 형한테 이거 선물하려는데 괜찮을까?"
"아니.. 무슨 관계비가 자꾸 들어가."
"회사를 다니니까 그렇지."
돈 때문에 늘 불안하다면서 같이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의 조의금을 굳이 보내고,
밥을 사준 형에게도 따로 선물을 하겠다는 그가 슬슬 못미덥다.
"정규직도 아니고 언제까지 볼지 모르는 사람들인데. 서로 너무 좋아하네. 오빠가 주고 싶은 거 사."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입은 캐주얼한 원피스 잠옷보다 더 불편한 무언가가 안에서 꿈틀거린다.
관계를 돈으로 환산한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언제까지 볼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호의를 베풀면 안 되나?
힘들게 일하면서, 가족보다 붙어있는 시간이 훨씬 긴 사람들에게 애착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지 않나?
가족에게도 부족한 자원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들에게 주겠다는 게 답답하고 서운한가?
쉴 새 없이 뒤척이다 시계를 보니 누운 지 2시간이 다 되었다.
진정해.
스스로를 달래기 시작했다.
슬픈 일을 겪는 사람을 돕는 건 바람직한 일이고 밥을 사 준 형에게도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게 결국 스스로에게 주는 거고.
내가 잘못한 거야.
관념은 허상이지만
허상이라 믿는 관념 또한 허상이라면
모든 건 실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되지 않는 그 돈과 선물이
매일을 끝모를 불안 속에 살고 있는 반려인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자존감과 소속감을 지켜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