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다는 늘 이불에게 졌다.

좋아하는 일을 자꾸 미루던 30대 온라인 게임인의 첫 프리다이빙 여행_1편

by황제펭귄
- 1부 -
조금만 더
<입수 전>

바다에 들어가는 법은 배웠는데, 침대 밖으로 나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따고도 나는 1년 동안 제대로 바다에 나가보지 못했다. 일을 했고, 피곤했고, 조금 더 살이 빠지면 가려고 했고,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떠나려고 했다. 좋아하는 바다는 늘 급한 일들 다음이었다.

그렇다고 원래부터 꿈을 뒤로 미루며 살아온 사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바라던 꿈을 오래 앞자리에 두었고, 결국 그 꿈을 직업으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몇 가지 일을 겪으며 오랫동안 해온 일을 뒤로하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했다. 다행히 내가 바랐던 안정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생활을 잘 지키느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자꾸 마지막 순서로 밀려났다.

그러다 올해, 동생과 처음으로 오키나와 프리다이빙 여행을 떠났다. 어떤 날의 바다는 기대 이하였고 어떤 날의 바다는 두 눈으로 담기에도 벅찼다.
이 글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다음으로 미루던 사람이 바다에서 헤매고, 멈추고, 다시 움직여본 기록이다. 한 번의 여행이 인생을 바꾸지는 않았다. 회사도 그대로고 월요일도 그대로다. 다만 아주 조금. 내가 좋아하는 쪽으로 방향이 생겼다. 그리고 지금도 그쪽을 향해 허우적 발장구를 치는 중이다.


1편 | 바다는 늘 이불에게 졌다.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딴 지 어느새 1년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나는 프리다이빙을 하러 바다에 몇 번이나 들어갔을까. 정답부터 말하자면, 한 번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배우던 때 다짐했던 해외 바다는커녕 동해나 남해 같은 국내 바다에도 가지 못했다. 자격증은 있었고, 바다도 있었다. 안 간 사람은 나였다. 운전면허를 따놓고 차는 한 번도 몰지 않은 장롱면허 보유자처럼, 내 프리다이빙도 그렇게 멈춰 있었다.



image.png작고 소중한 장롱 자격


처음 배울 때만 해도 금방 바다에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난생 처음 보는 수심 5m 이상의 깊은 다이빙풀에서 숨을 참고 내려가는 법을 배웠고, 처음에는 쉽지 않았던 프렌젤 이퀄라이징, 그러니까 귀의 압력을 맞추는 방법도 익혔다. 레벨 2 자격증까지 받았으니 이제 남은 건 진짜 바다에 나가보는 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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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이빙 배우던 때의 나는 자세는 엉망이었어도 금방이라도 바다에 나갈 듯 제법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평일에는 일을 했다. 회의를 하고, 프로젝트를 확인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다음 일을 생각했다. 퇴근한 뒤에도 오늘 했던 말과 내일 해야 할 일이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혹시 놓친 건 없는지, 나는 오늘 썩 괜찮은 팀장이었는지. 그 생각들이 하나씩 꺼질 즈음이면 나도 같이 방전돼 있었다.


좋아하는 목욕용품으로 개운하게 씻고 순면 잠옷으로 갈아입으면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저 나의 침대만 보였다. 내 몸에 맞게 적당히 폭신한 라텍스 매트리스, 더위를 조금 타는 나에게 잘 맞는 서늘한 냉감 패드, 살에 닿으면 무척 부드러운 순면 감촉의 이불까지. 하루 종일 머리에 열을 내며 슬롯생활을 버티고 돌아온 나를 작정하고 유혹하는 것 같은 침대였다.


“그래, 좀 쉬자.”

나에게는 마법 주문보다도 강한 말이었다.


잠깐만 누워 있다가 운동해야지. 조금만 더 누워 있다가 일기도 써야지. 주말에는 시간 있으면 여행 계획도 세워봐야지. 침대에 누운 채 참 부지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잤다.


주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다 대신 이불, 핀 대신 베개, 마스크 대신 수면안대를 챙겼다. 물속 대신 이불 속으로 잠수했다. 가끔 유튜브 알고리즘에 프리다이빙 영상이 뜨면 푸른 바다 아래로 길게 내려가는 사람들을 몇 분씩 넋 놓고 보다가, 화면을 끄고 다시 누웠다. 나는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고 여행지를 고를 때도 바다가 있는 곳에 먼저 눈이 가는 사람인데, 정작 내 바다는 늘 침대 밖에 있었다.


그렇게 나에게 바다는 아주 여러 번 이불에게 졌다. 바다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렸고, 나는 그 점을 아주 성실하게 이용했다.


사실 나는 물을 오래 좋아했다. 어릴 때 수영장에 가면 특유의 수영장 냄새부터 좋았다. 물 밖 대기 장소에서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도, 수영을 끝낸 뒤 마시던 자판기 밀키스 맛도 기억난다. 물에 들어가면 몸이 가벼워졌고 머릿속도 조용해져서 좋았다.


땅에서는 볼 것이 많다. 사람의 표정을 보고,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다음 일정을 확인하고,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살핀다. 그런데 머리 위로 물이 덮이면 바깥소리가 먹먹해진다. 그 순간에는 잠깐이나마 나한테만 신경 써도 된다.


내 숨.

내 귀.

내 몸.

지금 당장 내 눈앞에 있는 것.

그 정도.

나는 그 정도의 조용하고 차분한 감각을 좋아했다.


프리다이빙은 그런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이었다. 좋아하는 물에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자유롭게 들어가볼 수 있었고, 내 몸과 숨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배워놓고 정작 바다에는 가지 않았다. 면허는 있는데 시동만 켜 둔 차, 액셀은 한 번도 밟지 않은 차였다.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연료만 조금씩 타들어 갔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딱히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지치는 날.

해야 할 일은 해냈고, 하루도 무사히 보냈는데 어딘가 조금씩 소진되고 있는 것 같은 날.

사람은 일만 해서 지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너무 오래 미뤄서도 지치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그 1년 동안 바다를 전혀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바닷가, 그러니까 바다 곁에는 가봤다. 내가 가고 싶었던 방식으로 바다 안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작년 연말에는 가족과 베트남 냐짱으로 여행을 갔다. 관광보다는 쉬는 호캉스 여행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바닷가를 걷고, 시원한 야자수 그늘 아래에 앉아 있었다. 저녁이면 짠기가 밴 바닷바람을 맞으며 파도 소리를 듣고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세 지치는 몸을 위해 한국에서는 쉽게 못 부릴 1일 1마사지 사치도 부렸다. 밤에는 다음 날의 체력을 위해 일찍 잠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이었다.


하늘과 구름, 태양과 달, 바다소리 그리고 맥주 한 캔


여행지까지 와서 체력을 보존하는 데 우리 가족은 제법 진심이었다. 이제 미성년자가 한 명도 없는 가족의 여행은 관광보다 요양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숙소에는 여러 개의 수영장이 있었고, 그중에는 바닷물을 끌어온 해수풀도 있었다. 이른 아침, 문 여는 시간에 맞춰 혼자 내려갔더니 예상대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른 아침 조용했던 해수풀


나는 북적이는 시간보다 그런 시간을 좋아한다. 아직 누군가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전, 물이 먼저 깨끗이 깨어 있는 시간. 나는 천천히 물에 몸을 담갔다.


찰랑.

찰랑찰랑.


해수풀 특유의 차가운 물이 발끝에 닿고, 다리를 타고 허리와 어깨까지 시원하게 올라왔다. 얼굴을 물속에 넣자 세상의 소리가 조금 둥글고 뭉글해졌다. 말소리는 멀어지고, 수면을 통과한 햇빛이 물 안에서 흔들렸다.


내가 좋아하는 수중 속 고요함


나는 한참 물속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등을 대고 둥둥 떴다. 초록빛 야자수 사이로 파란 하늘과 하얀색 구름이 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게 진짜 바다라면 어떨까?


각양각색의 산호가 있고, 그 사이로 물고기들이 저마다 자기 일정에 맞춰 바쁘게 돌아다니고, 아래를 보면 더 깊은 푸른색이 이어지는 바다라면. 내가 보고 싶은 바다, 들어가 있고 싶은 바다는 해수풀과는 달랐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수면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는 바다. 나는 해수풀에 둥둥 떠서 그런 바다를 오래 생각했다.


들어가지 못했던 바다지만 산바카라은 충분히 즐겼다.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는 기분은 항상 즐겁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다시 일했다. 일하고 잤다. 일어나서 일하고, 또 잤다.


그사이 자격증을 같이 딴 나의 버디, 동생은 먼저 오키나와 바다에 다녀왔다. 프리다이빙을 하고 돌아온 동생은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 음절씩 힘을 줘 말했다.

“언니, 진-짜 좋았어. 꼭- 가봐야 해.”

동생이 보여준 사진과 영상에는 내가 바라던 푸른 물과 산호가 있었다. 수많은 물고기가 카메라 앞을 지나갔다. 화면 속 동생은 내가 자격증을 딸 때 상상했던 바로 그 바다 안에 있었다.


처음 든 생각은 의외로 안도였다. 그래도 우리 둘 중 하나는 바다에 갔네. 조금 뒤에는 살짝 찔렸다. 나도 가고 싶었는데 여전히 안 갔네. 변한 것은 내 몸뿐이었다. 지난 1년 동안 운동은 줄고 앉아 있는 시간은 늘었고, D라인은 누구보다 착실하게 성장했다.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살이 조금 더 빠지면, 운동을 조금 더 하면, 일이 조금 더 한가해지면. 체력이 돌아오고 여유가 생기면. ‘조금 더’가 참 많았다. 자매품으로 ‘나중에’도 있었다. 나중에 시간 되면, 나중에 상황 봐서.

문제는 그 조건들이 좀처럼 한날한시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당장 세계의 바다를 떠돌고 싶은 건 아니었다. 지금 하는 일도 중요하고 돈도, 미래도 중요했다. 무엇보다 통장에 따박따박 월급이 들어오는 게 좋았다. ‘이게 행복이지, 다른 행복이 있겠어.’ 그렇게 합리화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근로계약서와 4대 보험, 다음 달에도 내년에도 내 자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감각도 좋았다. 나는 어렵게 얻은 이 안정을 꽤 좋아한다.


그런데도 마음이 이상했다. 분명 잘 살려고 이 모든 걸 먼저 하고 있는데, 잘 살려고 만든 생활에서 좋아하는 일은 왜 늘 마지막일까. 바다도, 운동도, 심지어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물론 급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내일 해도 되고 다음 주에 해도 되고, 올해 못 하면 내년에 해도 되는 일. 그렇게 자꾸 밀다 보면 사라질 법도 한데, 좋아하는 일들은 계속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하지 않는다고 없어지지는 않았다.


나의 우선순위에 무엇을 올릴 것인가. 현실이 먼저냐, 꿈이 먼저냐. 그 생각을 하다 보면 조금 더 오래전의 나에게까지 가게 된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안정을 고른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