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두번째 이야기
보퍼트 가문은 잉글랜드의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이었던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과 그의 오랜 정부이자 세번재 아내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의 자녀들로부터 출발한 가문입니다.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은 사랑했던 첫번째 아내인 랭카스터의 블랜치가 죽은뒤 카스티야의 인판타와 재혼했지만, 재혼한 아내와 개인적 행복을 이루지는 못했었습니다. 결국 그는 아내와는 카스티야에 대한 야망을 공유하는 사이로만 남았으며 개인적 행복은 정부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와 누리게 됩니다.
캐서린 스윈포드는 그녀의 아버지가 애노 출신으로 에드워드 3세의 왕비였던 필리파 왕비가 시집올때 따라왔다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녀의 가문은 필리파 왕비와 연결이 되는 왕비로 어린시절 필리파 왕비의 보호아래 있었습니다. 후에 캐서린은 랭카스터 공작부인인 블랜치의 시녀로 일했었으며, 랭카스터 공작의 기사중 한명이었던 휴 스윈포드와 결혼했었습니다.
랭카스터 공작부인이 죽고 캐서린의 남편이 죽은뒤 캐서린 스윈포드는 랭카스터 공작의 정부가 됩니다. 아마 곤트의 존과 캐서린 스윈포드는 블랜치가 살아있었을때부터 서로 알던 사이고 아마도 둘은 랭카스터 공작부인 블랜치의 살아 생전의 아름다운 시절을 공유했었기에 더 가까이 있었을수 있을 듯합니다.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과 캐서린 스윈포드 사이에서는 네명의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곤트의 존은 캐서린 스윈포드의 아이들을 자신의 아이들로 인정해줬으며 아이들에게 프랑스 영지였던 "보퍼트"지역을 하사해주었습니다. 이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보퍼트라는 성을 쓰게 됩니다. 이때 보퍼트 가문 사람들의 지위는 그리 높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비록 아버지가 랭카스터 공작이었지만 사생아들이었기에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거나 에드워드 3세의 손자로 왕위계승권리를 인정받을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랭카스터 공작은 보퍼트 가문 아이들을 잘 돌봐주었으며 아마도 적당한 귀족으로 살수 있게 해주려했을 것입니다.
랭카스터 공작은 두번째 아내가 죽은뒤 캐서린 스윈포드와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복잡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서였을 듯합니다. 물론 오래도록 함께 생활을 공유했던 이들이 다시 만난것일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당대 잉글랜드에서 매우 큰 스캔들로 잉글랜드 왕실가족 대부분은 이 결혼을 스캔들로 여겼으며 왕실 여성 가족들은. 특히 랭카스터 공작의 동생 부인들은 캐서린 스윈포드를 거부할 정도로 캐서린 스윈포드에 대해서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왕이었던 리처드 2세는 캐서린 스윈포드와 그녀의 아이들에게 호의적이었다고 합니다.
캐서린 스윈포드와 랭카스터 공작 사이에 태어난 네명의 아이들은 부모가 결혼하면서 모두 적자로 인정받았는데 재미난 것은 리처드 2세의 경우 이 결혼을 즉시 인정하고 네명의 자녀들을 모두 적자로 인정했지만, 정작 이 아이들의 이복 형이자 오빠이자 리처드 2세의 정적이었던 헨리 4세는 이복동생들의 적자 권리에 대해서 애매하게 대했으며 특히 왕위계승권은 인정하지 않으려했다고도 합니다.
헨리 4세는 자신의 이복동생들인 보퍼트 가문에 대해서 나쁘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편하게 대한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레이디 마거릿의 할아버지였던 서머셋 백작 존 보퍼트에 대해서는 아마 의심의 눈초리를 어느정도 보냈을듯합니다. 왜냐면 그는 리처드 2세가 총애했던 인물이며 처음에 리처드에게 충성을 맹세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리처드 2세가 존 보퍼트를 서머셋 후작으로 지위를 올려줬었지만, 헨리 4세는 존 보퍼트의 지위를 다시 서머셋 백작으로 강등시킨 부분에서 잘 드러날듯합니다. 또 리처드 2세는 사촌들인 보퍼트 가문 사람들의 적자 지위를 바로 인정해주므로써 왕위계승권리도 인정해줬던 반면, 헨리 4세는 자신의 이복동생들의 적자 지위를 인정하긴 했지만 왕위계승권리에 대해서는 별개라는 반응을 보인 점 역시 헨리 4세가 자신의 이복 동생들을 아주 편안하게 생각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짐작할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헨리 4세는 리처드 2세를 쫓아내고 왕위에 올랐기에 명분에 대해서 민감했으며 자신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중요했었습니다. 이때문에 비록 의심의 눈초리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친척이며 자신의 지지자가 될 이복동생들을 무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보퍼트 가문 사람들이 헨리 4세의 궁정에서 여전히 자리잡을수 있었으며 이후 헨리 5세와 헨리 6세 시절 왕가와 가장 가까운 방계 가문 사람으로 궁정에서 힘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자녀들중 장남인 존 보퍼트는 서머셋 백작으로 리처드 2세와 헨리 4세의 궁정에서 인정받은 신하였습니다. 물론 헨리 4세는 그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헨리 4세의 이복동생들인 보퍼트 가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헨리 4세를 지지했으며 헨리 4세 역시 이런 지지를 보내는 이복동생들에게 이익을 부여해줬습니다.
둘째 아들인 헨리 보퍼트는 성직자가 되었는데 그는 부모가 정식 결혼해서 적자로 인정받음으로 고위 성직자가 될 길이 열렸으며 그 결과 이후 추기경의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헨리 4세와 헨리 5세 헨리 6세 시절 모두 고위 관리로 일을 했습니다. 추기경이 되었기에 후에 "보퍼트 추기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후에 잔 다르크의 심문에도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있습니다.
셋째아이이자 고명딸인 조앤 보퍼트는 아버지 랭카스터 공작의 힘으로 나쁘지 않은 혼처를 찾아서 결혼했었습니다만, 남편이 일찍 사망하고 부모가 정식결혼하면서 더 좋은 혼처를 찾아냅니다. 바로 웨스트모어랜드 백작이 되는 랄프 네빌과 재혼한 것이었는데 랄프 네빌은 잉글랜드 강력한 영주중 한명이었는데 이렇게 왕실과 연결고리가 큰 조앤 보퍼트와 결혼하면서 힘을 더욱더 키울수 있었습니다. 그 역시 헨리 4세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힘을 얻었고 이것은 후에 복잡한 상속문제에서 조앤과 조앤의 자녀들이 힘을 얻을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조앤의 손자인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은 후에 "킹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될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랭카스터 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의 막내아들인 토마스 보퍼트는 후에 엑서터 공작이 되는 인물로 그는 기사로 매우 뛰어난 인물로 헨리 4세와 헨리 5세 시절 군인으로 활약한 인물로 이 활약 덕분에 엑서터 공작 지위를 얻었습니다만 후손없이 사망했습니다.
보퍼트 가문은 랭카스터 가문의 방계 가문으로 랭카스터 가문의 일원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혈연적으로 요크 가문과도 연결 됩니다. 바로 요크 국왕들이었던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의 어머니인 시슬리 네빌을 통해서입니다.
시슬리 네빌은 당대 잉글랜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중 하나였던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과 그의 두번째 아내인 조앤 보퍼트의 딸이었습니다. 시슬리 네빌의 아버지는 강력한 웨스트모어랜드 백작이었고 친오빠는 샐리스버리 여백작과 결혼해서 샐리스버리 백작이 된 리처드 네빌이었으며, 조카는 워릭 백작의 상속녀와 결혼해서 워릭 백작이 된 킹메이커 리처드 네빌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슬리 네빌은 왕가의 일원인 요크 공작 리처드와 결혼해서 요크 공작부인이 되었고 요크 가문 왕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권력자 가문과 왕가의 제일 가까운 친척이었던 시슬리 네빌은 자신의 지위와 혈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오만한 시슬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퍼트 가문은 랭카스터 가문은 물론 요크 가문과도 혈연적으로 연결되는 가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는 아마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자신이나 자신의 후손이 왕위 계승권리를 가지고 잉글랜드의 군주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