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첫번째 이야기

by엘아라

중세 잉글랜드에는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라는 여성이 몇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들중 제일 유명한 사람이 바로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7세의 어머니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할 사람도 바로 이 가장 유명한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입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유명한 "보퍼트 가문"출신이었습니다. 랭카스터 공작이었던 곤트의 존과 그의 오랜 정부이자 마지막 아내였던 캐서린 스윈포드의 후손들이 바로 이 보퍼트 가문 사람들이었습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삶은 사실 쉽지 않은 삶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서머셋 공작으로 잉글랜드 왕가의 가장 가까운 친척중 하나였지만 그의 삶은 좌절의 연속인 삶이었고 생의 마지막도 불운하게 마쳤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레이디 마거릿은 매우 어린 나이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상속녀였고, 레이디 마거릿의 재산은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는 원인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잉글랜드에서 랭카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갈등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랭카스터 가문의 분가였던 보퍼트 가문의 상속녀였던 레이디 마거릿의 지위 역시 레이디 마거릿의 삶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여러가지 정치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었습니다. 장미전쟁이 시작되면서 남편이 죽었고, 유복자를 낳아야했지만, 이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키울수 조차 없었으며 자신의 가문을 적대시하는 요크 가문 치하에서 살아야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적대적 관계였던 가문의 신하로 살아야했지만 말입니다.


장미전쟁이 요크 가문의 승리로 돌아간것처럼 보였던 시점에서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을 국왕으로 만들려는 위대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것은 레이디 마거릿의 단순한 야망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요크 가문의 국왕들이 즉위하면서 랭카스터 가문의 명분을 내세울수 있는 자신의 아들 존재는 더욱더 위험하게 여겨졌으며 늘 아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레이디 마거릿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것만이 함께 지낼수 있는 길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되었던 것입니다.


랭카스터 가문의 상속권리를 주장할수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과 스스로 대영주였기에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도 가지고 있던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는 아들을 국왕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시도는 한동안 성공하지 못했으며 완전히 실패한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아들인 헨리 튜더는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었으며 국왕의 어머니이자 왕국내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여성이 됩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의 삶을 따라 가면서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가 왜 아들을 국왕으로 만들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볼까합니다.


레이디 마거릿 보퍼트 the King's mother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