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

세상에 작은 역할은 없다

by쨈맛캔디

오늘 아이를 뮤지컬 캠프에 보냈다. 첫날부터 배역 오디션이 있어 모두의 마음이 내일 발표될 결과를 향해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먼저 움직인 것은 배역이 아니라 캠프에서 보내온 공지문 한 장이었다. 그 안에는 혹시 작은 역할을 맡게 될 아이와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린 따뜻한 문장이 담겨 있었다.


We ask that you please help us remind your child that no role is too small, and we need each and every student to help tell our story. Cinderella would have never made it to the ball without the love of her Mice Friends and Dorothy would have never faced any challenges without the Wicked Witch and her Flying Monkeys.

"부디 자녀에게 작은 역할은 없으며, 우리 모두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데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세요. 신데렐라는 생쥐 친구들의 도움 없이 무도회에 갈 수 없었고, 도로시 역시 사악한 마녀와 날아다니는 원숭이들이 없었다면 그 모험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무대 위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은 아마 모든 아이의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신데렐라를 무도회로 보낸 것은 화려한 드레스보다 이름 없는 작은 생쥐들이었고, 도로시의 위대한 모험을 완성한 것도 사악한 마녀와 날아다니는 원숭이들이었다.


그렇다. 무대 위에는 결코 '작은 역할'이 없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살아낼 때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세계가 완성되는 것이다.




문득 얼마 전 민음사TV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다. 박혜진 편집자가 유치원 연극에서 주인공을 맡지 못한 딸에게 해주었다는 이야기였다. 아이가 "오늘도 관객이었어."라며 아쉬워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네가 인어공주 역할을 잘해도 인생에서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관객을 하게 된다. 근데 관객일 때 박수를 크게 쳐야 인생이 재밌다. 그렇게 안 하면 인생의 10분의 9를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부러워하면서 보내게 되는데, 이왕 치는 박수라면 크게 쳐라." - 원문 링크는 여기


참 명쾌하고도 단단한 지혜다.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짧고 드물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으로, 혹은 그 무대를 완성하는 조연으로 살아간다. 그때 다른 사람을 향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삶을 더 풍요롭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진짜 실력인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이든, 관객이든, 작은 생쥐 역할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할 때 하나의 아름다운 극은 완성된다.


내일 아이가 어떤 배역을 받아 들고 나오든, 눈을 마주 보며 말해줄 것이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다른 친구가 주인공이 되었다면 가장 큰 박수를 보내주자고. 그렇게 삶의 무대를 즐기는 법을 아이에게 가르쳐 주겠노라 다짐해본다.




추신.


글을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하려는데 반전이 있었다.

오늘 코치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으셨단다.

"중요한 역할 맡고 싶니?"

아이의 대답.

"아니요! 저는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요. 친구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 좋아요."

……

엄마는 오늘도, 아이에게 한 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