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름은 두려움의 표현이다

ft. <아비투스>를 읽고

by쨈맛캔디

도리스 메르틴의 바카라 <아비투스>를 읽다가, 유독 한 문장 앞에서 눈길이 멈췄다.

“서두름은 두려움의 표현이다.”


"분주한 움직임은 과도한 열정과 내적 압박을 전달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서두름은 두려움의 표현이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간에 비용을 지불하게 될까 겁내는 것이다."
- 도리스 메르틴, <아비투스> p.233


나는 원래 성격이 급한 사람인 줄 알았다. 빨리 움직이고, 남들보다 먼저 결정하고, 일과 일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불안해서 견디지 못하는 사람. 아이들의 학교 일정, 빼놓을 수 없는 운동, 각종 모임과 제때 해야만 하는 연락들까지. 나의 하루는 언제나 빈틈없는 시간표처럼 쪼개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어딘가로 뛰어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을까 봐 매 순간 조바심이 났고, 잰걸음으로 여기저기 움직이며 하루에 부여된 미션들을 소화하느라 동분서주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바카라임감’인 줄 알았다. 삶을 대하는 나의 ‘성실함’이자 밀도 높게 살아가는 이들의 훈장 같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저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내달리던 그 길의 밑바닥에는 열정이 아니라,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었다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성격이 급하고 늘 서두르는 사람들은 대개 게으른 이들이 아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주변을 신경 쓰고 배려하는 사람들이다. 약속 시간보다 무조건 먼저 도착해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상대의 메시지에 답장을 몇 분만 늦게 보내도 죄바카라감을 느끼며, 내 주변 모든 사람의 기대를 동시에 만족시키려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래서 몸은 늘 분주하고 바쁘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음은 단 한 번도 완전히 쉬지 못한다. 브레이크를 밟는 법을 잊어버린 자동차처럼, 멈추는 순간 주저앉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거지?”


그때마다 표면적인 이유는 언제나 ‘해야 할 일이 많아서’였다. 하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들어 가자, 진짜 대답이 고개를 들었다. ‘잘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마음 가장 깊은 곳에는, 잘하지 못했을 때 마주하게 될 타인의 실망과 내 존재의 부정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었다.


기대에 못 미칠까 봐, 누군가에게 실망스러운 사람이 될까 봐, 혹은 타인의 아까운 시간을 빼앗는 무능한 사람이 될까 봐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해대며 몰아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비투스(Habitus)란 개인이 가진 환경이 몸에 배어 나타나는 취향, 습관, 그리고 태도를 뜻한다. 흥미롭게도 이 바카라에서 말하는 상류층, 즉 품격 있는 이들의 아비투스 중 하나는 바로 ‘시간을 소유하는 감각’이다.


시간에 쫓겨 허덕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스스로 주도하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태도. 반면 늘 무언가에 쫓기듯 서두르는 행동은 내가 지금 내적 여유가 없음을, 내면의 주도권을 상실했음을 방증하는 ‘두려움의 신호’가 된다. 도리스 메르틴은 우리가 무심코 행하는 서두름이 실은 내면의 약점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내는 언어임을 꼬집은 것이다.


이 문장을 통과하며 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당장 배워야 할 것은 더 완벽한 ‘시간 관리 기술’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을 다루는 법’인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조금 늦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모든 기대를 100% 충족시키지 못하더라도 내 존재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안심시키고 다독이는 내면의 힘이 필요했다.


진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일정이 하나도 없이 한가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빽빽한 일정 속에서도 서두르지 않는 사람, 조금 삐걱거리고 지연되더라도 자신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고유한 단단함을 아는 사람이다.


오늘도 습관처럼 잰걸음을 옮기려는 나에게 가만히 타이르고 싶다. 조금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고. 서두르지 않아도, 당신은 여전히 빛나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