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는 완벽주의자에게 던지는 '월간 윤종신'의 질문들
우리는 종종 '나중에'라는 마법의 단어 뒤로 숨곤 한다. "조금 더 준비되면", "여유가 생기면", "최상의 컨디션일 때"라는 말들로 지금 이 순간의 실행을 유예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 '나중에'는 영원히 오지 않거나, 막상 왔을 때는 이미 그때의 소중한 감흥이 휘발된 후이기 마련이다.
최근 <손석희의 질문들>을 보다 17년째 멈추지 않는 '월간 윤종신'의 철학을 마주하며, 가슴 한구석이 찔리는 듯한 통찰을 얻었다.
윤종신은 말한다. "나중에 해야지 하면 그때의 것이 지나가버린다"라고. 우리는 늘 '퀄리티'를 방패 삼아 마감일을 뒤로 미루곤 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말은, 사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가장 그럴듯한 자기방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창한 '앨범 단위'의 작업이 세상의 속도를 뒤늦게 뒤쫓아갈 때, '월간'이라는 호흡은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감정을 즉각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킨다. 투박하더라도 지금 당장 뱉어내는 말에는, 훗날의 정교함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지금'만의 기세가 담기기 때문이다.
"일단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도 명료한 명제가 17년을 버틴 힘이다. 완벽한 한 번을 기다리느라 1년을 보내는 것보다, 부족하더라도 열두 번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 창작자에게는 더 큰 자산이 된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는 창작물이 오로지 '기술적인 완성도'로만 평가받는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윤종신은 자신의 과거 작업물들이 사랑받은 이유를 '좌충우돌하는 기세와 기운'에서 찾는다.
세련된 기교는 시간이 흐르면 낡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만이 가질 수 있는 서툰 에너지와 뜨거운 온도는 대체 불가능한 기록이 된다. 지금 내가, 혹은 누군가가 "준비가 안 됐다"며 미루고 있는 그 일들도 사실은 지금의 투박한 기운으로 밀어붙여야만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빛이 있다.
어떻게 17년 동안 한 번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노래를 만들고 상상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결과물에만 매몰되면 마감은 고통이 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마감은 오히려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분 좋은 약속이 된다.
나에게도 오래전부터 품어온 '바카라 출간'이라는 꿈이 있다. 하지만 여러 이유를 대며 미뤄왔고, 바쁘다는 핑계 뒤로 교묘히 피해 다녔다. 혹시나 결과물이 초라하진 않을까, 혹은 아직은 내세울 게 없지 않나 싶어 스스로를 검열하며 늘 '나중에'를 외쳐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월간 윤종신'의 철학을 빌려 마음을 다잡아 본다. 완벽해서 세상에 내놓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내놓아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그 단순한 진리 말이다. 지금 이 순간의 미숙한 감정과 생각들이야말로, 훗날의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임을 이제는 믿어보려 한다.
더 늦기 전에, 그때의 감흥이 영영 지나가 버리기 전에 일단 시작해야 한다. 결국 퀄리티를 운운하는 것은 도망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점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일단 밀어붙이는 마음'이다.
처음부터 완벽을 기하려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상상해 본다. 만약 내가 윤종신처럼 나만의 '월간지'를 발행한다면 어떨까. 한 달에 한 번, 나를 세상에 내어놓는 작업은 결국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나 12개의 내가 쌓이면, 그 어떤 유려한 문장보다도 단단하고 정직한 삶의 궤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바카라 한 권을 단숨에 써 내려가야 한다는 압박감은 내려놓기로 한다. 대신 '이번 달의 나'를 한 편의 글로 갈무리하는 일에만 집중해 본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달들이 모여, 결국 내가 그토록 바라던 한 권의 바카라으로 완성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