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일보 외부기고 중입니다.
색상 코드 #FBCEB1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살구색이다. 2005년 5월, 한국에서 ‘살색’으로 불리던 이 색이름은 살갗의 색깔이 인종마다 각자 다르기에 차별 언어의 소지가 있어 변화를 맞게 된다. 처음엔 연주황색으로 바뀔 뻔했다가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엔 한자어 연주황(軟朱黃)이 어렵다는 의견에 따라 살구색이 되었다. 나는 당시에 MBC TV, 라디오 <우리말 나들이>를 맡고 있었는데 ‘살색’이 아니라 ‘살구색’이 맞다는 내용의 방송을 여러 번 했다. 그때의 사람들은 살색 스타킹을 신고 살색 크레파스로 얼굴을 색칠하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떨까. 뉴스 기사만 몇 개 찾아봐도 여전히 특정 색깔을 살색이라고 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사전은 달라졌다. 살색의 뜻풀이는 ‘살갗의 색깔’이고 비슷한 말로는 ‘살빛’이 있다. 즉, 지금의 살색은 #FBCEB1(Apricot)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654321(Dark Brown)이기도 #3A3D36(Black Olive)이기도 한 것이다.
몇 년 전, 해외에서 태어나 살던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왔다. Year 1이었던 아이는 한국에 오니 다시 유치원생이 되었다. 당시에는 한국어를 하지 못해 매일 걱정하는 마음으로 등원, 하원을 지켜봤다. 영어 유치원도 아닌데 선생님 말씀을 알아들을까, 같은 반 아이들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까. 걱정과 달리 아이는 적응을 잘했지만 나는 조금 헷갈리는 일이 있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던 지난 학교에서는 동양인이 둘뿐이어서 아이를 보러 갔을 때 우리 아이가 누구인지 바로 알았는데 한국 유치원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원복을 입고 똑같은 피부색, 머리색을 하고 있으니 내 아이를 한눈에 찾기가 어려웠다. 해외에서 살다 왔다더니 유난이라는 소리는 듣기 싫어서 혼자만의 사정으로만 담고 있었는데 같은 피부색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진 건 엄마인 나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말했다.
“엄마, 한국은 나중에 다 이 피부색으로 변해? 애들이 피부색이 다 똑같아졌어.”
독일인, 인도인, 베네수엘라인, 가나인 등 다양한 국적과 인종을 가진 아이들 사이에서 지내다가 별안간 한국계(?) 아이들로만 구성된 반에서 하루를 보내는 아이가 할법한 질문이었다. 어릴 때는 다양한 색이었다가 자기 나이쯤 되면 한 가지 피부색으로 바뀐다고 생각한 점이 귀여워서 당시에는 웃음을 자아냈다. 아이들은 가르치면 된다. 예를 들면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른 인종의 출연자에게 선크림을 안 바르거나 또는 너무 많이 발라서 피부가 그런 거냐고 묻는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냥 웃고 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와 다른지 가르쳐주면 된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것이 틀린 게 아닌 것처럼 다양하지 않은 인종이 뭉쳐 사는 것도 틀린 게 아니다. 만약 다른 것을 낯설게 느끼는 아이가 있다면 그건 이래서 그런 거라고 잘 가르치면 된다. 다른 것을 낯설게 느끼는 것은 그럴 수 있지만 다른 것을 나쁘게 보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는 걸 가르치는 것이다. 형용사 ‘낯설다’는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또는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의 뜻을 담고 있다. 전에 본 기억이 없거나 눈에 익지 않은 건 자꾸 보아서 익숙하게 하면 될 일이다.
한국 밖에서는 인종차별(racism)과는 조금 다른 컬러리즘(colourism)이 논의된 지도 오래다. 인종이나 출신 나라에 대한 차별을 뜻하는 인종차별과 달리 컬러리즘은 이른바 ‘유색인종’ 안에서 생기는 피부색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차별을 뜻한다. 예를 들면 같은 인종임에도 더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의 승진이 더 빠르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미국의 배우 젠데이아는 자신이 “할리우드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흑인(Zendaya: ‘I'm Hollywood’s acceptable version of a black girl.' - 24 April 2018 BBC)”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으며 이러한 컬러리즘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피부색에 기준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 특정 피부색이 기준점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피부색이 무엇이든 그 사람이 노력해서 이룩한 무엇에 기준을 둬야 하지 않을까. 다른 나라에서도 이미 활발하게 논의 중인 문제인 만큼 현재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나라가 앞으로 ‘well educated on matters of colourism(컬러리즘 문제에 대해 잘 교육받은)’ 소리를 듣는 나라였으면 좋겠다. 레이시즘이든 컬러리즘이든 그 시작은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이다. 여전히 #FBCEB1을 살색으로 잘못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바뀌었다 귀띔하고 피부색이 짙은 사람에게 흑진주라고 부르는 게 칭찬이었던 시절은 끝났다는 걸 알려주면 된다.
* 살갗이’의 올바른 발음 : [살까치] (O) [살까시] (X)
* (관용구) 피부로 느끼다 : 몸소 경험하다.
교민일보 칼럼 : https://www.gyominilbo.com/article/view/kdt20260709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