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의 언어

byAeon Park

수년 전부터 엄마의 언어를 간단하게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하고 있다.

엄마는 50년대에 충청북도 조치원에서 태어나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는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 쭉 사셨다. 현재 70대이니까 표준어를 쓰는 도시에서 산 시간이 더 많은데도 학창시절의 충청도 말투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해서 어린 나를 많이 헷갈리게 했었다. 개그 소재로 많이 활용되는 충청도 특유의 그랬어유, 저랬시유 따위의 어투를 얘기하는 건 아니다. 약간의 낱말이랄까. 엄마가 쓰는 언어, 오늘은 그걸 여기 기록하려고 한다.


- 그걸 쩜매라고. (묶으라고)

- 기지? (그렇지? 맞지?)

- 다 햐. (다 해.)

- 그라니께. 그라니까. 그라드라구. 그라다보니까 (그러니까. 그러더라고. 그러다보니까)

- 사람덜 (사람들. '들'을 '덜'로 쓰는 일이 잦다)

- 찌드라잖아. (길잖아.)

- 그래내가 (그래서 내가)

- 에레베타 (엘리베이터)

- 점신 (점심)

- 얌잔해. (얌전해. '전'을 '잔'으로 쓰는 일이 잦다)

- 길이기가 길어. (길이가 길어)

- 웃뚜리 (웃도리, 윗도리)

- 덩더깽이 (더껑이, 덩이, 더께)

- 곰새 (금세)

- 삼장 (항상)

- 양 그러더라고. (막 그러더라고)

- 깜막했어. (깜빡했어.)

- 억셔보여. (억세어 보여.)

- 지우 (겨우)


그리고 10년 전엔가, '스무스하다'가 영어인 것을 알고는 나에게 엄청 놀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Smooth하게 항상 쓰다보니 당연히 한국어인 줄 아셨다고.




최근에 11살인 내 딸에게 '할머니가 보내주는 할머니 사진들 다 갖고 있지?'라고 말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다. 아이는 뭣도 모르고 '응 다 저장했어.'라고 대답했는데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바로 화를 냈다. 왜 자기 영정사진을 내 딸에게 준비를 시키냐고. 나한테 하던 짓을 내 아이한테 하지 말라고. 내가 중학생 때 친정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본인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꼭 나에게 준비를 시켰는데 그 세월이 참 모질게 느껴진다. 엄마는 곧 죽을 준비와 영원히 죽지 않을 준비를 동시에 하는데 그걸 아들이 아닌 딸인 나에게 늘 주입시키다보니 나는 늘 혼동을 했고 혼란스러워 했다. 빚이 없던 덕분에 금전적으로는 힘들지 않았을 지는 몰라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가족이라는 안정된 삶이 없는 기분이었다. 늘 '엄마가 갑자기 죽으면, 동생은 아무 것도 모르니까'를 시전했으니까. 근데 이제 50이 다 되어가는 내 나이에도 물려줘야 할 가족만의 레거시는 물려주지 않고 물려주지 않아야 할 것을 11살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자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내가 엄마의 언어를 기록하는 이유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준비하는 게 맞다. 엄마의 말이 그리울 것 같아서 동영상을 찍자고는 못해도 엄마의 낱말 정도는 기록하고 싶었다. 눈으로 저 낱말들을 읽으면 저 말을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바로 들린다. 하지만 11살이 할머니의 죽음을 준비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자기 인생에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두 할아버지, 단 한 번도 친절하거나 다정하지 않았던 친할머니의 사망 이후에 그나마 하나 남은 외할머니 마저 자기에게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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