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얼굴들
차창을 내리자 서늘하면서도 알싸한 가을 공기가 허파 깊숙이 밀려든다.
오랜만에 서울에서 차를 운전해 마을 어귀로 접어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나지막한 능선과 익숙한 산자락은 아무 말 없이 길손을 맞아주는 어머니의 넉넉한 품을 닮아 있다.
시골길 특유의 흙내음과 길가 대나무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그리고 가을 햇살 아래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가는 산빛은 아득했던 기억의 문을 가만히 두드린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얼마 전 정성스레 새로 쌓아 올린 축대와 깔끔하게 포장된 마을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마을의 모습도 조금씩 변해왔지만, 굽이치는 길목 하나하나에는 내가 거쳐온 어린 시절의 발자국이 여전히 묵직하게 새겨져 있다.
정자 곁에 서 있는 빨간 트랙터와 들녘의 풍경은, 이곳이 여전히 삶의 터전이자 세월을 견뎌낸 역사의 현장임을 묵묵히 보여준다.
정자에 가만히 서서 마을 전경을 바라본다.
눈부시게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서너 가구 주택이 자리 잡은 알록달록한 지붕들과 싱그럽게 자란 배추밭, 그리고 고즈넉하게 터를 잡은 집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포근함과 먹먹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고향이란 참으로 이상한 곳이다.
언제 찾아와도 변함없는 온기로 고향은 나를 안아주지만, 동시에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만드는 수많은 추억의 조각들이 살아 숨 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을 길을 걸을수록 옛 시절 나를 예뻐해 주시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따스한 눈빛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간다.
집안의 큰 종손이라며 어디를 가든 귀여워 주시고 예뻐해 주시던 분들이었다
맛있는 주전부리가 생기면 손 닿지 않은 깊숙한 상자에 보관해 두었다가 슬그머니 꺼내어 손에 쥐여주시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주름진 손마디가 오늘따라 유난히 그리워진다.
그러나 고향에 올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단연 어머니이시다.
어린 시절 넉넉지 못한 형편 속에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타향에서 공부하던 중 방학이나 주말을 맞아 고향집으로 내려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들녘에서 논밭 일을 하시다가도 못난 아들을 보려 일손을 놓고 달려오셨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먼발치에서 자식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작업하던 호미를 던져두고 신발조차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맨발로 흙바닥을 달려 나오시던 내 어머니. “우리 큰아들 왔냐!” 하고 반기시며 바카라가방을 들어주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그 절절했던 눈빛. 자식 밥 한 끼 따뜻하게 먹이겠다고 밭에서 갓 따온 채소로 찌개를 끓이시던 그 손길이 고향집 마당 구석구석에 여전히 깃들어 있는 듯하다. 밭자락 한편에 파릇파릇하게 자라난 무와 배추를 바라보고 있으니, 자식들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며 고된 일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 보인다.
(초롱초롱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
그러나 이제는 아무리 목놓아 불러보아도 달려와 주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다.
내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안식처였던 어머니의 부재는, 고향을 찾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허전한 바람구멍을 내곤 한다.
고향은 오랫동안 한 피를 나눈 형제들과 사촌형제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공간이었다.
학창 시절 객지 생활을 하다가 고향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누구보다 반갑게 맞아주던 동생 금채와 병희의 얼굴이 떠오른다.
"형 왔어?" 하며 내 가방을 받아 들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 기뻐하던 동생들. 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믿고 따라주었던 착하고 우직했던 녀석들이었다.
함께 냇가에서 민물고기와 다슬기를 잡고, 들판을 누비며 꿈을 키워가던 그 소중했던 시간들.
하지만 세파를 견디며 살아가는 동안, 그 소중했던 동생들은 너무나 일찍 내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생들의 이름을 고향 하늘 아래서 나지막이 불러본다.
금채야, 병희야. 이제는 가슴속에 묻은 아련한 이름이 되어버린 동생들. 그 애틋했던 우애와 웃음소리는 이제 바람에 실려 산자락 어디엔가 아득히 울려 퍼질 뿐이다.
친형처럼 살갑게 나를 잘 따르던 사촌 동생 성춘이 역시 고향을 떠나 이제는 의정부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집 바로 옆집에 터를 잡고 살았던 작은아버지
내외분이 계셨기에 집안의 온기가 더 있었나 본다
사촌동생이었던 성춘이와 수호는 사촌이라지만
점심이나 저녁때도 내려가면 자주 같이 밥을 먹고
때로는 할아버지 방에서 종종 같이 천자문을 배우면서
잠도 같이 잤다
사촌동생 성춘이도 장남이라 친 형이 없어서 그랬는지 유독 우리 형제들과 잘 어울려 친형제나 똑같았다
사촌 형제자매들이 한때는 마을 어귀를 시끌벅적하게 채웠던 그 시절 웃음소리와 형제들의 온기는 이제 온데간데없고, 고향 마을은 고즈넉한 침묵 속에 차분히 잠겨 있다.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확실히 적어지는 나이가 되어 찾은 고향.
어릴 적 나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품어주셨던 어른들과 정을 나누던 이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셨거나 타향으로 떠나버렸다.
다들 떠나고 없는 텅 빈 고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꾸만 고향 생각이 나고 그리워
지는지 모르겠다ㆍ
그것은 아마도 내가 받은 최초의 사랑과 순수했던 삶의 뿌리가 바로 이곳에 묻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시간은 흘러 사람도 풍경도 변했지만, 눈을 감으면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오시던 어머니의 사랑과 동생들의 따뜻한 체온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따스하게 타오르고 있다.
고향 길을 돌아서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맑고 청명한 가을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푸른 고향의 가을 하늘이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의 깊고 따뜻한 눈동자처럼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운동화를 신고 막대기를 손에 들고 고향땅 선산에
모셔진 조부모님과 조상님 그리고 동생이 잠들어 있는
묘소들을 혼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며 둘러본다
저 멀리에는 우뚝 솟은 제암산이 웅장하게 정기를
펴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울적할 때 가끔씩 찾아온 고향이 너무
좋다
거의 10여 년 폐가처럼 관리되지 않았던 고향집이었지만 다행히도 슬롯공헌 봉사단체 법인인 굿네이버스와 은행연합회의 예산지원을 받아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부엌과 방 세 개를 개ㆍ보수하고 싱크대와 세면시설을 새로 설치하니
남동생도 들어와 살고 있어 집안에 온기가 생겨 좋다
밤이 깊어 밤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에는 객지에서 구경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빛난다.
10대 20대 젊은 시절 고향집 흙마당에 짚으로 만든 멍석을 깔고, 어머님이 밀죽을 만들어 주면 배불리 먹고 모기에 물리면서도 멍석 위에 누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시절.
십자성과 북두칠성을 짚어가며 미래의 꿈을 꾸다가 가만히 잠들어버리면 어머님과 할머님이 방에 들어가
자라고 깨웠던 그 시골 소년이 70세가 다 되어 고향에 찾아오니, 비로소 마음이 포근해지고 가볍고 넉넉하고 편안해진다.
우리 집 옆에는 작은아버지 내외분이 사시다 보니
사촌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 집도 의사를 며느리로 둔
노부부가 새 집을 짓고 단장해 살다 보니 비어있을 때보다 불빛이 밤늦도록 비춰줘 적막한
고향집이 덜 외롭다
그래도 모르는 외지인들이 사는 것보다는 옛 시절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님이 같이 사실 때가 따뜻한
온기가 많았었는데 ᆢ
그래도 다행스럽게 고향집과 작은아버지 집터가
없어지지 않고 다른 노부부가 와서 살아도 집이 존재하니 집은 옛 집들이 아닐지라도 그 집터에
새로운 집이 생겨 노부부가 사시면서 고향집과 마을이 유지되고 있으니 천만다행스럽다 ㆍ
이제는 영영 다시 오지 않을 옛 어린 시절들을
고향을 찾을 때마다 회상할 수 있어 천만다행스럽다
(고향집과 마을)
(웅치에서 본 웅장한 제암산)
(개ㆍ보수한 고향집)
(하늘나라로 떠나버리신 어머님과 남동생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