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기

익선동에서 건네는 세월의 안부

by자봉

1995년, 청춘의 뜨거움과 열정이 가슴마다 고동치던 시절에 작은 친목 모임으로 첫발을 디뎠던 우리였다.


저마다 온라인 게임의 일과 가정의 무게를 견디며 앞만 보고 달리던 젊은 날, 우연이자 소중한 인연으로 뭉쳤던 이들이 세월의 이랑을 건너 오늘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 3가 익선동 골목에 다시 모였다.

모임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30대이거나 4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청년들이었다.

거칠 것 없고 두려울 것 없던 그 시절의 주역들이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이마에 새긴 채 60대와 70대의 나이가 되어 마주 앉았다. 세월이란 참으로 무심하고도 정직하여, 치열하게 일터를 누비던 이들은 이제 대부분 은퇴를 맞이해 집에서 소일거리를 찾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고, 몇몇 이들만이 여전히 기간제 일터에서 성실하게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35년 전 옛 온라인 게임의 동료들이 다들 깊은 우정을 쌓고 서로의 우애를 보듬으며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왔건만, 세월의 무상함 앞에 가슴 아픈 빈자리가 문득 스친다.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동년배의 정을 나누던 왕경호 친구는 수년 전 하늘의 부름을 받아 먼저 길을 떠났다.

그곳에서는 아픔 없이 평안할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의 맑은 눈빛이 그리워진다.

또한 바쁘게 살아오느라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정문규, 경명현, 홍영선 김병조님도 대한민국 넓은 하늘 아래 어디선가 저마다의 몫을 다하며 평안히 잘 살고 계실 터이다.

비록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술잔을 기울이지 못해 아쉬움이 진하게 남지만, 그 시절을 함께 품었던 이들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아스라하게 덥혀진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거울을 보면 성성한 백발과 깊어진 주름이 역력하지만, 우리 모임의 분위기 메이커인 신우진 회장을 보면 세월도 비켜가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머리는 빡빡머리가 다 되었어도 여전히 소년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고,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웃음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그가 있어 모임 내내 웃음꽃이 마를 줄 모른다.


힘든 세월 속에서도 남을 먼저 웃게 만드는 그의 다정함에 마음 깊이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가 모인 익선동 골목은 전통과 현대가 기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평일 저녁임에도 좁은 한옥 골목길은 발 디딜 틈 없이 내·외국인들로 북적이며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 맛있는 음식 냄새가 뒤섞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세상의 경기가 호황인지 불황인지 분간조차 하기 어려울 만큼 활기가 넘쳤다.

젊은이들의 찬란한 활기 속에서, 우리 세대가 지나온 격동의 시대와 오늘날의 풍경이 오버랩되며 묘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해서, 항상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각자의 굽이진 길을 걸어간다.

누군가는 조금 빨리 앞서 나갔고, 누군가는 잠시 숨을 고르며 뒤를 따랐지만, 결국 우리는 같은 시대를 통과해 온 동반자들이다.

돌아보면 참 치열하고도 고마운 세월이었다. 비록 흰머리와 주름살이 늘어났어도 옛 온라인 게임 동료들이란 이름표 하나로 이렇게 마주 앉아 소싯적 얘기를 안주 삼아 웃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을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우리 옛 온라인 게임 동료들 모두 앞으로 남은 날들 동안 부디 아프지 말고, 서로의 손을 잡으며 건강하고 평안하게 이 길을 동행하는 것이다. 익선동의 붉은 노을 너머로 깊어가는 가을밤, 오랜 친구들과의 정겨운 온기가 가슴 깊이 스며드는 저녁이다.

(익선동 골목을 거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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