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의 시간

아내의 과도한 관심

by자봉

세상의 모든 푸른 것들은 때가 되면 빛을 바라고 아래로 내려앉는다.


봄날의 화사한 꽃잎도, 여름내 세상을 집어삼킬 듯 싱그럽던 초록의 잎사귀도 결국은 바람 한 점에 몸을 싣고 바닥으로 떨어진다.

자연의 섭리라 여기며 덤덤하게 바라보던 그 낙엽의 풍경이, 어느 날 문득 내 삶의 한 자락으로 뚝 떨어져 내릴 때가 있다.

요즘 나의 마음이 꼭 그렇다.

오랫동안 믿고 의지했던 대형 우량주들이 연일 폭락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서 툭, 툭 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난다.

주식의 그래프가 붉은색을 잃고 파란 하향선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은,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내가 평생을 바쳐 쌓아 올린 삶의 안정감마저 흔들리게 만든다.


시장의 흐름이라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물결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눈앞에서 낙엽처럼 바래가는 자산의 숫자를 바라보는 일은 깊은 스트레스요, 말 못 할 정신적 소모다.


젊은 날의 투자란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디딤돌이었지만, 나이가 들어 마주하는 폭락은 마치 내 손에 쥐어진 모래알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무력감을 안겨준다.

그런 마음의 고단함을 안고 돌아온 집은, 안타깝게도 온전한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아내의 잔소리는 내 마음에 얹힌 돌덩이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이건 해라, 저건 하지 마라." 눈만 뜨면 시작되어 잠들 때까지 이어지는 잔소리는 마치 말 안 듣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다루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닮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을 기댈 곳은 평생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뿐이라는데, 그 유일한 동반자의 입에서 위로 대신 끊임없는 지적과 간섭이 흘러나올 때, 남편의 마음은 갈 곳을 잃고 조용히 시들어간다.


주식 시장의 폭락으로 가뜩이나 서글픈 마음에, 집안에서조차 한 인간으로서, 남편으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답답함과 서글픔이 밀려오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인간은 자신이 걸어온 시간의 무늬를 닮아간다고 한다. 아내의 유난히 심한 잔소리를 가만히 짚어보다가, 나는 아내의 삶에 깊게 새겨진 오랜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내는 다문화가정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방문하여 글을 가르치고 삶을 지도하는 일을 1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해왔다.

말이 잘 통하지 않고, 산만하며, 집중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아내는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하고, 타이르고, 때로는 엄하게 통제해야 했을 것이다.

"내가 말했지", "벌써 세 번째 말했는데 또 그러냐", "왜 이렇게 소리가 빠르냐", "옷은 또 왜 그렇게 입었냐."

아내가 내게 던지는 이 수많은 참견과 간섭들은, 사실 나라는 존재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몸에 배어버린 아내만의 '직업병'이었던 셈이다.


직업적 습관이라는 것은 무서워서, 일터가 아닌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전산 스위치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아내의 눈에는 70세를 바라보는, 평생온라인 게임에서 치열하게 일하고 정년퇴직을 한 남편조차도 여전히 손이 많이 가고 보살펴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이해해 보려고 마음을 추스르다가도, 간간이 이어지는 간섭 앞에서는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 또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슬롯에서 제 몫을 다해온 장년의 세월을 지나 이제는 삶의 지혜를 논하는 시니어가 되었는데, 집안에서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검사받아야 하는 어린아이 처지가 되니 말이다.


결국 아내와 부딪치기 싫고, 감정을 낭비하며 얼굴을 붉히는 것이 피곤해 아내가 집에 있을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슬그머니 신발 끈을 매고 집 밖으로 나오게 된다. 갈등을 해결하려 대화를 시도해 보아도 이미 오랜 세월 고착된 아내의 말하기 방식을 바꾸기란 쉽지 않기에, 선택한 고육지바카라인 셈이다.


부부의 부조화는 비단 대화의 방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온라인 게임 생활 동안 몸에 익은 나의 하루는 철저한 규칙성 위에 세워져 있다. 나는 자정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고, 오전 6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을 떠 밖으로 나가 걷고 운동하는 표준형의 삶을 산다. 새벽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발걸음을 옮길 때,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고 어지러운 생각들을 정리하곤 한다.

반면 아내는 밤이 깊어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새벽 2시가 넘도록 침대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켜두고 뒤척이는데, 그 어둠 속을 파고드는 가느다란 핸드폰 불빛과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은 예민한 나의 수면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린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서성이는 밤이 늘어날수록 육체적인 피로는 쌓이고, 아침 9시가 되어서야 부스럭거리며 일어나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면 나와는 정반대인 그 생활 리듬에 숨이 턱 막히고 답답해진다. 밤과 낮이 엇갈리듯, 우리의 삶도 서로 다른 궤도를 돌고 있는 것만 같아 때로는 외롭고 괴롭기까지 하다.


그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내가 찾는 곳은 평생학습관과 골프연습장이다. 집 밖으로 나와 초록빛 초록색 필드가 펼쳐진 연습장에서 하얀 공을 달래어 날려 보낼 때, 혹은 평생학습관의 조용한 바카라상에 앉아 활자들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아내의 잔소리와 주식 폭락의 스트레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진다.


이 거리 두기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내 마음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한 나만의 현명한 생존 방식이다. 홀로 걷는 길 위에서, 그리고 무언가를 새로이 배우는 공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집을 나와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는 삶의 또 다른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현명한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심한 복잡함을 뒤로하고 단순한 삶, 즉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포기하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오랜 세월 풍파를 겪으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삶의 가장 깊은 지혜다.

젊은 날에는 옷장에 옷이 가득해야 든든했고, 스마트폰 속에 친구들의 연락처가 수백 개쯤은 있어야 성공한 삶이라 믿었다.


주식도, 재산도, 경험도 무조건 많이 가지는 것이 풍요로움인 줄 알았다.

그러나 70대를 바라보는 지금 돌이켜보면, 관리해야 할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를 짓누르는 스트레스도 배로 늘어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옷장이 터질 듯해도 정작 손이 가는 옷은 몇 벌 되지 않고, 인맥이 화려해도 정작 마음이 무너질 때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주는 친구는 손에 꼽는다. 결국 인생이란 정말 소중한 것 몇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는 서서히 걷어내는 과정이다.


이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의 편안함을 안다.

젊은 시절에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 보일까 두려웠지만, 이제는 혼자 커피를 마시며 바카라을 읽는 시간, 안양천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여백의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안다.


어차피 인간은 태어날 때도 혼자였고, 갈 때도 손에 쥔 모든 것을 다 놓고 가는 존재가 아니던가. 돈도, 주식의 파란 그래프도,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과 잔소리도 결국 내가 움켜쥐려 할 때만 고통이 되는 법이다.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기보다 아무 약속 없는 오후의 고요함을 즐기고, 말로 방을 가득 채우기보다 묵묵히 들어주는 여백의 미를 배운다.


비록 현실은 주식 폭락으로 속이 상하고, 아내의 지칠 줄 모르는 잔소리로 집 밖을 서성이게 만들지라도, 나는 이 복잡함을 원망하기보다 내 삶을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드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아내의 잔소리는 그저 '늙은 호랑이 선생님의 애정 섞인 직업병'으로 흘려보내고, 엇갈리는 수면 시간은 서로의 여백을 인정하는 기회로 삼으면 그만이다.

불필요한 욕심과 감정의 찌꺼기들을 걷어내고, 오롯이 내게 남은 소중한 시간과 건강, 그리고 배움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이 든 어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자 편안함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가벼워진 마음으로 운동화 끈을 묶으며, 단순해서 아름다운 나만의 삶을 향해 조용히 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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