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길목에서 들려오는 삶

은퇴 후 상사님을 모시고

by자봉

10년도 더 넘는 세월이 흘러, 참으로 오랜만에 옛 상사님을 만나 뵙기로 한 날이다.


20년 전 두 개 부서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인연을 맺었던 분이다.

내 고향은 전라도이지만 상사님은 경상도 출신이었다

경상도와 전라도 뭔가 코드가 맞지 않을것 같지만

다른 온라인 게임에 근무할 때도 경상도 출신분들과 코드가

잘 맞아 가깝게 지냈다


가깝다고 하는 고향 친구나 선배.지인들 다수의

보증 섰다가 그들이 도망가고 잠적해서 그들 대신 돈을 변제해 주고 지금까지 연락도 하지앟고

살아간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고향 지인들에게 사기도 많이 당해 그쪽 사람들을

경계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나 상사였던 그분은 고향이나 지역을 따지지 않고 지방 출신 직원들까지 늘 따뜻하고 공정하게 품어주셨던 거목 같은 분이었다.


업무에 있어서는 사리사욕이나 예산 낭비 없이 곧고 명확했으며, 위험하거나 불투명한 일에는 결코 불의하게 개입하지 않는 곧은 성품을 지니셨다.

젊은 시절 검찰사무직 시험을 거쳐 검찰청에서 수사 업무를 하다가 적성이 맞지 않아 감사직 시험을 치러

감사원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시다가 전직하신 머리가 워낙 명석 하신 분이다


61세에 공직에서 퇴직하신 후에도 공부를 시작해 어렵다는 자격증들을 한 번에 여러 개씩 척척 붙으셨고, 70세가 넘어서도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오랫동안 슬롯 활동을 이어가셨다. 늘 당당하고 지혜롭던 분이셨기에 오랜만의 만남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이 컸다.


오후 1시, 옛 시절을 함께 보낸 동료 과장과 함께 넷이서 점심 식사를 나누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식사 자리에 모여 마주한 국장님의 모습에 반가움도 잠시, 가슴 한구석이 억울하고 참담할 정도로 묵직해져 왔다. 안타깝게도 혈액암 판정을 받고 힘겨운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계셨던 것이다. 얼굴은 부어 계셨고, 혼자 힘으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만큼 기력이 많이 떨어져 계셨다.


늘 다정하고 따뜻했던 동료 과장과 나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가슴이 먹먹해짐을 금할 수 없었다.

식사가 이어지며 오랜 세월 한 울타리에서 함께 일했던 옛 동료들의 소식도 하나둘 전해졌다.

어떤 국장님은 심장 수술을 받으셨고, 또 어떤 분은 위암, 치매, 등 등 저마다 크고 작은 병마와 싸우고 계신다는 안타까움 가득한 이야기들이었다.


세월의 무심함 앞에 한때 열정적으로 일터를 누비던 이들이 하나둘 병들어 가고 있었다.

동료과장은 연배가 더 높으신 70대, 80대 퇴직 선배들을 만나봤자 발전적인 자극이나 희망찬 이야기보다는 그저 지나간 과거의 옛날이야기만 되풀이되어 마음이 지치곤 한다고 씁쓸하게 이야기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세상 소식을 들어야 삶에 반찬 같은 활력이 생기는데,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인연을 개척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은퇴 후 삶을 개척해 보겠다고 무리하게 돈을 투자했다가 힘겨운 상황에 처한 선배나 동료, 후배들의 소식 역시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퇴직 후 제때 나오는 연금이 있고, 내가 건강하여 스스로의 삶을 영위할 여력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인생이다.


더 이상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비우지 못한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의 욕심이란 참으로 끝이 없는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세월의 흐름과 인생의 무상함이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한때 거침없이 세상을 누비던 이들도 결국 세월이라는 길목 앞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음을 배운다.

오늘 모셨던 상사님께서 암투병이라는 큰 산을 잘 넘어서시고, 부디 다시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기도해 보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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