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후반전

무의도를 찾아

by자봉

25년 만에 다시 무의도 바다위를 걷는 여행은

즐겁고 경쾌했다.

서울 도심에서 공항철도에 몸을 실으니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매끄럽고 신속하게 흐른다.


예전 같으면 여러 번 차를 갈아타고 선착장에서

여객선을 기다려야 했을 텐데, 이제는 공항철도를 타고 인천국제공항까지 단숨에 이동할 수 있으니 여정의 반 이상이 시작부터 수월하게 풀리는 셈이다.

인천국제공항에 내리니 번화하고 현대적인 공항의 풍경이 펼쳐진다.


안내판을 따라 3층 7번 출구로 나가니 무의도로 향하는 1번 버스가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시곗바늘처럼 정확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30분 단위로 꾸준히 운행된다는 버스는 섬 여행의 진입 장벽을 완전히 허물어놓고 있었다. 대중교통 요금 단 1,500원. 이렇게 적은 비용과 짧은 시간으로 바다 건너 섬마을의 풍광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현대 문명의 편리함을 실감 나게 했다.

버스는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달려 무의대교를 건넜다.

(은퇴이후 찿은 무의도)


배를 타고 연안을 가르며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주던 옛 여객선의 낭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바다 위에 장쾌하게 놓인 연륙교 위를 차로 달리는 기분 역시 색다른 감흥을 주었다.

사방으로 탁 트인 서해 바다와 넓디넓은 갯벌이 창밖으로 장엄하게 펼쳐졌다.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날씨를 걱정하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이웃 같은 섬이 되었다는 사실에 세월의 변화가 깊게 다가왔다.


공항을 출발한 지 불과 30여 분 만에 거짓말처럼 무의도의 품 안에 가볍게 안착할 수 있었다.


무의도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하나개해수욕장' 표지석이 커다랗게 반겨주는 하나개유원지 입구였다. '하나개'라는 이름은 '하나밖에 없는 큰 갯벌'이라는 정겨운 순우리말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 이름에 걸맞게 물이 빠져나간 해변 뒤로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갯벌이 시원한 개방감을 선사하고 있었다.

해변 한편에는 레저용 집라인 타워가 하늘 높이 솟아 있어 현대적인 휴양지의 활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가을 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백사장과 갯벌, 그리고 코끝을 알싸하게 스치는 상쾌한 바닷바람은 일상의 먼지를 단번에 씻어내어 주었다.

해변 입구에 서 있는 '무의도 해상관광탐방로' 관광안내판 앞에 서서 잠시 살펴본다. 사자바위, 소나무의 기개, 만물상, 해식동굴, 부처바위, 햄버거바위 등 자연이 오랫동안 빚어낸 개성 넘치는 바위들의 위치와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옛날 배를 타고 멀찍이서 보아야 했던 바위들을 이제는 탐방로를 따라 바로 눈앞에서 직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바다 위에 정갈하게 설치된 해상 데크길에 발을 디뎠다.


예전에는 물이 들어오면 가로막히고, 물이 빠져도 험준한 바위 지형 때문에 접근조차 하기 힘들었던 해안 절벽을 따라 길고 견고한 목재 데크길이 이어져 있었다. 바다 위를 둥둥 떠서 걷는 듯한 기분으로 길을 거니니 발아래로는 잔잔한 물결이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서해 바다와 만날 수 있었다.

데크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바라본 무의도의 해안 절벽은 억겁의 세월 동안 비바람과 파도에 깎이고 견뎌낸 붉고 황갈색을 띤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장엄하게 둘러서 있다.


그 거친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모진 해풍을 이겨내며 푸름을 유지하는 소나무들의 질긴 생명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겸허한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해상 데크길의 운치를 한껏 누린 후, 이번 여정의 가장 깊은 목적지이자 옛 추억의 중심지인 호룡곡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랑이와 용이 서로 겨루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올 만큼 산세가 당당하고 정기가 넘치는 호룡곡산은 무의도의 으뜸가는 주봉이다.


갈림길에 서 있는 이정표에는 '호룡곡산'과 '하나개해수욕장'이라는 문자가 정갈하게 적혀 있어 오가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가을 낙엽을 밟으며 산길로 들어서자, 25년 전 부서 동료들과 함께 오르던 그날의 장면들이 마치 환등기 영화처럼 물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25년전 그 시절 우리는 모두 혈기 넘치고 꿈 많던 청춘들이었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며 서로 손을 잡아끌어주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내며 천진하게 웃음꽃을 피웠었다.


정상에 도달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세상 근심을 털어내던 동료들의 푸근한 얼굴과 정겨운 목소리가 숲 바람을 타고 귓가에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 시절을 함께했던 동료들도 이제 은퇴한지 10여년이 흘러가니 하나 둘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가고, 나 역시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리고 삶의 무게를 아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사람과 세상은 변했어도, 산이 품은 기운과 숲의 그윽한 향기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서해의 반짝이는 바다와 아득한 갯벌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없이 포근하고 넉넉하게 찾아오는 이들을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올라 시원한 서해 바다와 광활한 갯벌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선글라스를 끼고 바다를 가리키며 포즈를 취해본다. 사진 속 나이 든 나의 모습 너머로, 30년 전 청춘이었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세월 동안 수많은 길을 걸어왔고 수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이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느껴지는 순수한 감동과 지나온 삶에 대한 깊은 애착만큼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산길과 바닷길을 아우르며 거닌 무의도에서의 하루는 나에게 단순히 '지나간 옛날을 그리워하는 회상'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지난 삶을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조용한 위로였으며,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뜻깊은 전환점이었다.

배를 타지 않고도 버스로 30분 만에 닿을 수 있게 된 무의도의 변화처럼, 우리의 삶 역시 수많은 인연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층 깊어지고 편안해진다.


비록 청춘이 가졌던 거침없는 기개와 패기는 세월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흘려보냈을지라도, 오늘 걸었던 따스하고 평탄한 해상 데크길처럼 잔잔하고 넉넉한 삶의 여유를 얻었으니 이 또한 감사하고 가슴 뿌듯한 일이다.


돌아오는 길, 다시 버스와 공항철도에 몸을 실으며 창밖으로 아득해지는 무의도의 산자락과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다 위에 시원하게 그어진 데크길처럼, 내 마음속에도 오랜 추억의 잔상과 오늘의 소중한 감흥을 고스란히 연결해 주는 아름다운 다리 하나가 새로 놓인 듯하다.

오늘 가슴 가득 담아 온 서해의 알싸한 바다 냄새와 웅장한 기암절벽, 그리고 호룡곡산의 오붓한 숲길이 전해준 기운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또 다른 커다란 삶의 활력이 되어줄 것이다.


마음이 가득 차오르고 넉넉해지는, 참으로 고마운 가을날의 여정이었다.

25년전 부서에서 함께 체련대회차 함께왔던 김병섭

강재수 오상균 송삼식 김덕유 황영일. 김훤기 권대광 국장님과 그 당시 팀장들, 동료들이 오늘 이곳 무의도에 오니 그리워진다

함께 호룡곡산에 올라가 단체로 찍었던 25년전

사진은 그대로 이건만 다들 은퇴이후 어떻게 살고

계실련지?

(해안테그길과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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