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인생 후반전 3

스크린 골프

by자봉

즐가을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명하다.

창밖에 펼쳐진 높고 푸른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계속 이런 날씨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탐욕마저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른다.


길었던 여름의 무더위와 삶의 소란을 뒤로하고 찾아온 가을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다.

오랜 온라인 게임생활의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자유라는 이름의 은퇴를 맞이한 지도 어느덧 9년이 지나간다


요즈음 나는 하루하루를 참 부지런하고도 다채롭게 보낸다. 마음 맞는 오랜 친구들과 어울려 스크린 골프장에서 경쾌한 공 소리에 스트레스를 날리기도 하고, 덜컹거리는 열차에 몸을 실어 이름 모를 간이역의 풍경을 구경하러 떠나기도 한다. 때로는 두 바퀴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하루 8천 보에서 1만 보씩 발걸음을 옮기며 안양천이나 경의숲길 또는 안산자락길을 걸으면서

숲과 인생의 숨결을 느끼기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한가롭고 즐거운 노년의 삶이라 부러워할 법도 하다.

그러나 혼자 가만히 걷거나 기차 창밖의 풍경을 응시할 때,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하나의 물음이 묵직하게 떠오르곤 한다.

‘과연 행복(Happiness)이란 무엇인가?’

은퇴 후 여기저기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짚어보면 사람마다 품고 있는 행복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더 많은 돈과 재물을 모으는 것이 행복이라 믿으며 ‘돈, 돈’ 하고, 몸이 아프거나 병석에 누운 이들은 그저 단 하루라도 통증 없이 건강하게 숨 쉬는 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의 수만큼이나 소원의 모양도, 행복에 대한 정의도 저마다 틀리고 달랐다.

문득 널리 알려진 행복의 정의들을 떠올려 본다. 서양에서는 행복을 흔히 ‘Well-being’이나 ‘Contentment’로 표현하곤 한다. 글자 그대로 잘 존재하는 것, 그리고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상태를 뜻한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참 많은 바카라을 읽고 묵상을 해보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행복의 실체는 결코 거창하거나 화려한 무대 위에 있지 않았다.


내가 내려본 행복의 정의는 지극히 소박하고 단단하다.

첫째는 밥 두 끼, 세끼를 굶지 않고 제때 따뜻하게 차려먹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다.


둘째는 고단한 하루를 마친 후 편히 몸을 누이고 쉴 수 있는 나만의 집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젊은 날처럼 매일 출근하는 온라인 게임은 없을지라도, 나이 들어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정승처럼 내 몫의 주머니를 털어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살 수 있는 노후 연금이나 여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로움이 슬그머니 찾아올 때 언제든 전화 걸어 “오늘 스크린 한 판 칠까?”, “기차 타고 바람이나 쐬러 가자”며 선뜻 어울려 줄 친구와 지인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이 몇 가지를 갖추었다면 그것이 바로 온전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이토록 명확한 행복의 조건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인 이상 마음 한구석에 때때로 그늘이 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나에게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이 있다. 주변의 친구들이나 옛 동료들을 만나면 하나둘씩 자식을 장가보내고 시집보냈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결혼식 청첩장을 받고 축하해 주러 갈 때마다 내 심장은 괜스레 쿵쾅거리고 부러움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아이들이 결혼을 해서 과연 다 잘 살고 행복할지 어떨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귀여운 손주를 품에 안아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내 마음은 한없이 약해진다.

모임 자리에 앉아 친구들이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손주 자랑, 손녀 자랑으로 꽃을 피울 때, 나는 슬그머니 입을 다물고 의소침해지곤 한다.


손주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하고 그저 허허 웃어넘겨야 하는 순간마다, 자식의 미혼은 부모로서 마치 숙제를 다 마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으로 가슴에 남는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자식의 결실을 보고 싶어 하는 평범하고 욕심 많은 아버지인 까닭이다.

그러나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본다.

남과의 비교는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소중한 행복을 가려버리는 가장 무서운 안개다.

자식들에게는 자식들만의 인생의 속도와 타임라인이 있는 법이고, 손주가 주는 기쁨이 없다 해서 내 삶 전체가 불행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너무 마음을 조급하게 먹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다.

행복을 찾기 위해 자꾸 멀리 시선을 돌리다 보면 정작 내 손안에 있는 행복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무지개가 아니라,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이곳, 아주 가까운 곳에 숨어 있다. 영어 단어 ‘Present’가 ‘현재’라는 뜻과 동시에 ‘선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듯,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현재야말로 하늘이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오늘도 나는 즐겁게 살기 위해 집을 나선다.

경의선 열차에 몸을 실어도 보고, 재개통된 교외선 기차에 올라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들판과 숲을 바라본다. 흘러가는 구름을 스치며 찾아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나지막이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중얼거려 본다.

스치는 바람, 푸른 숲, 높은 하늘, 그리고 그 풍경 속에서 노래할 수 있는 건강과 여유.

이 순간 창가에 앉아 느끼는 평온함과 감사함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의 진정한 얼굴이다.


멀리서 찾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써 내려가는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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