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란 따로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로소 온몸과 마음으로 깨닫게 되는 삶의 엄숙한 진리가 하나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다. 젊은 날, 우리는 인생이 언제나 늘 같은 방향을 그리며 영원히 이어질 것처럼 착각하고 살았다
가만히 눈을 뜨면 세상이 밝아오는 것이나, 몸을 일으켜 자유롭게 걸어나가는 모든 과정이 날마다 거저 주어지는 자연스러운 풍경인 줄로만 알았다.
돌이켜보면 젊었을 적의 나에게 삶은 늘 당연한 것들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시야가 아무런 방해 없이 맑게 트이는 것도, 귀에서 세월의 잡음 대신 세상의 온갖 투명한 소리들이 스며드는 것도 모두 마땅한 일이었다.
이제는 치아 네개가 약해져 임플란트를 심고 나서야 비로소 음식 하나를 마음 놓고 씹어 삼키는 맛의 귀함을 알게 되었다ㆍ 예전에는 무심하게 식탁에 앉아 식사를 즐기던 일이나 무릎 관절을 이용해 두 발로 땅을 디디며 어디든 자유롭게 걸어 다니던 일 모두가 공기처럼 지극히 당연하게 느꼈다.
굳이 그 소소하고 반복되는 순간마다 감사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시절이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익숙함’이라는 웅덩이 속에 빠져 살았다.
매일 누리는 평범함이 어쩌다 손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수많은 장기와 근육, 피와 땀, 그리고 세상의 온갖 호의가 조화롭게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만들어낸 아슬아슬하고도 정교한 결과라는 점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건강도, 곁에 있는 사람도, 매일 맞이하는 아침도 그저 내 삶의 배경화면처럼 단단히 고정되어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월의 언덕을 하나씩 넘어가며 어느 순간부터인가, 영원할 줄 알았던 그 당연함의 벽에 아주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세월의 무게가 어깨 위에 차곡차곡 쌓이고,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되는 순간, 비로소 깨닫는다.
지금까지 무심코 누려왔던 그 모든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커다란 축복이었고, 감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선물이었는지ᆢ
얼마 전, 큰딸이 아빠의 건강이 염려되었는지 선뜻 큰돈을 들여 대학병원 종합검진을 예약해 주었다. 자식의 깊고 따뜻한 마음 덕분에 구석구석 정밀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췌장 두부에 큰 낭종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의사의 무덤덤한 설명 뒤로 한동안 아득한 정적이 흘렀다. 그날 이후로 내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자 오랜 안식처였던 시원한 맥주 한 잔도, 마주 앉아 즐겁게 나누던 기름진 고기도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엄격한 절제의 삶이 시작되었다.
먹고 싶은 것을 입맛대로 먹고 마시는 그 작은 즐거움마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을,
그것 역시 삶이 나에게 잠시 허락했던 은혜였음을 비로소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식탁 위에서 상추 한 조각, 담백한 찬거리를 집어 들며 생각한다. 내가 누려온 그 모든 소소한 권리들이 얼마나 쉽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는지를.
그런 절제와 삼가의 고요한 삶 속에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걷는 행위'였다. 하루하루 천천히 길을 나설 때마다 느낀다. 생각해보면 걷는다는 것은 그저 신체를 움직이는 단순한 물리적 동작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내 의지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자유의 선언’이며, 타인과의 세상, 그리고 자연을 향해 내 발자국을 겹쳐나가는 ‘연결의 증거’다.
만약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은 과연 어떻게 될까. 스스로 화장실을 가는 일조차 누군가의 손길과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지고, 문밖으로 발을 내딛는 일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히 신체적인 불편함이나 답답함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평생 지켜온 최소한의 '삶의 존엄'이 흔들리는 참사와도 다름없을 것이다.
이제 가만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막막해지고 묵직한 답답함이 밀려온다.
추석 명절이 지나고 바로 어제도, 나와 같은 세월을 걸어온 동갑내기 친척 한 분이 암으로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우울한 부고를 접했다. 평소 편하게 전화를 걸어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옛 추억을 곱씹던 옛 온라인 게임 동료나 학창 시절의 동창들이 하나둘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가릴 수 없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자주 왕래하던 이들이 하나씩 내 삶의 풍경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느낄 때, 나의 존재 역시 세상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이방인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이제 칠순에 다다르고 보니, 이러한 이별과 변화 속에서 더욱 깊은 깨달음이 뼈속 깊이 새겨진다.
아무런 생각 없이, 특별한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단단한 바닥을 내딛던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실은 얼마나 경이롭고 기적 같은 일이었는지ᆢ
이러한 깊은 깨달음은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조금씩, 바꿔 놓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작은 불편함이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에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을 마음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감사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에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고, 내 두 발로 스스로 일어나 땅을 디디며, 아무런 큰 탈 없이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의 결이 한층 풍요로워진다.
로또복권에 당첨되었다거나, 무슨 특별하고 대단한 경사가 생겨서가 아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온전히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나에게 주어진 벅찬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문득 예전에 무심코 접했던 박완서 작가의 글귀 하나가 가슴속을 깊게 스쳐 지나간다.
"하늘을 나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걷고 숨 쉬며 살아가는 이 평범한 일상이 바로 기적이다."
처음 누군가가 카지노톡 메시지로 보내준 이 문장을 접했을 때만 해도, 그저 글솜씨 좋은 작가가 남긴 다정한 수식어나 예쁜 문장 정도로만 느껴졌었다. 그러나 내 몸의 변화를 직접 겪고, 좋아하는 음식을 절제해야 하는 순간을 지나며, 동년배들과의 슬픈 이별이라는 삶의 깊은 마디들을 지나오면서, 그 문장은 이제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엄숙하고도 진솔한 진실이 되었다.
결국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하나씩 잃어가는 안타까운 '상실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날의 분주함과 익숙함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삶의 알맹이를 새롭게 알아가는 '안목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익숙함이라는 눈꺼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몸의 작은 기능 하나하나가, 매일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가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지 알아차리는 눈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월이 나에게 준 가장 귀한 유산이자 '감사의 재발견'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온전히 지탱해 주는 두 다리를 조용히 쓸어내리며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나를 세우고, 나를 세상과 이어주며, 지금까지 충실히 달려와 준 나의 고마운 몸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 쉬는 숨 하나, 발끝에 닿는 흙의 감촉 하나마저도 모두 경이로운 허락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쉬며 땅을 딛는다. 내가 내딛는 이 한 걸음, 이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