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찬가

자전거 예찬

by자봉

청량한 가을 바람 속으로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고 청량하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다 보니 한창 온몸에 따스한 온기가 감돌고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 꿈틀거리는 설렘이 올라왔다.


이런 날은 도저히 집에만 있을 수가 없다.

마음은 벌써 두 바퀴 자전거 위에 올라타 시원한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자전거를 정비하고 오늘 여정을 위한 간식을 챙겼다.


장갑을 챙겨 끼고, 배낭 속에는 시원하고 달콤한 사과 한 개와 삶은 계란 그리고 출출할 때 요기할 단백질 음료 몇 개를 정성스레 넣어 꾸렸다. 소박하지만 이만하면 훌륭한 라이딩의 동반자다.


오늘의 출발지는 공덕역. 페달을 가볍게 밟기 시작하자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더없이 쾌적하다. 한강 변을 따라 행주산성 끝자락을 거쳐 창릉천 코스까지 이어지는 길. 길가에는 푸른색의 나무와 식물들이 나를 반겨준다


간혹, 분홍빛, 흰빛의 코스모스들이 고개를 수줍게 내밀며 반겨주고 있다.


은은하게 피어나는 꽃길을 따라 페달을 밟노라니 지나온 수많은 세월과 기억들이 자전거 바퀴처럼 차르르 소리를 내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돌이켜보면 자전거는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늘 함께해 온 오래된 벗이었다.

아득한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고향을 떠나 광주에서 자취 생활을 하던 때가 떠올라 미소짓게 된다.


혈기 왕성하던 그 시절, 마음 맞는 동창 녀석 셋이서 자전거를 타고 화순과 광주의 경계

너릿재를 힘차게 넘으면서

가로수길을 내달리던

그 자유로움과 열정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주머니는 가난했어도 친구들과 함께 바람을 가르며 내지르던 함성은 청춘의 가장 빛나는 한 장면이었다.

세월이 흘러 온라인 게임인이 되고 서울 목동에 터를 잡았을 때도 자전거는 나의 가장 친근한 휴식처였다.


치열했던 온라인 게임생활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밤늦게 온라인 게임 동료들과 어울려 안양천을 따라 오목교에서 행주산성까지

라이딩을 즐기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시원한 가을 밤바람을 맞으며 한강과 안양천변의 야경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팍팍했던 고단한 온라인 게임 생활 속에서도 한강과 안양천의 야간 자전거 길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작은 안식처이자 청춘의 연장선이었다.

그 청춘의 주역들이 어느덧 세월을 넘어 은퇴라는 인생의 모퉁이를 돌았지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그때 그 시절의 뜨거운 마음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오늘 공덕역에서 출발해 행주산성, 창릉천, 그리고 양화대교와 월드컵공원 주변까지 천천히 둘러보며 다녀온 시간은 무려 5시간. 쉬엄쉬엄 풍경을 즐기며 다녀왔지만, 집에 도착해 자전거를 세우고 나니 다리가 뻐근하고 은근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피로감조차도 내 몸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건강한 증거이자 한 판의 보람찬 운동을 마쳤다는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현직에 있을 때 4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정말 앞만 보고 달려왔다. 치열하게 일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슬롯적 바카라임을 다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냈다.

(창릉천 코스모스 밭에서)



그렇게 땀 흘려 일하며 굳건한 삶의 기반을 다져놓았기에, 이제 은퇴 후 매월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며 경제적·시간적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흘린 지난날의 땀방울이 거짓되지 않았음을,


그리고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음에 마음 깊이 감사가 밀려온다.


은퇴 후의 삶은 자전거를 타는 날도 있고, 친구들과 스크린 골프나 당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는 날도 있다. 하루하루 계절이 바뀌듯 다채롭고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집에 돌아와 땀을 씻어내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한 달 전 잘랐던 머리를 단장하기 위해 종로3가로 향했다. 서민들의 정겨운 온기가 느껴지는 종로3가 거리에는 6,000원이면 기분 좋게 머리를 깎아주는 정겨운 이발소가 있다. 화려하고 비싼 곳이 아니더라도, 이렇듯 가성비 좋고 정이 넘치는 곳에서 머리를 단장하는 소소한 재미야말로 삶의 참맛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체면을 차리거나 허세를 부리는 삶은 싫다.

(창릉천 석교워에서)



나이가 들수록 내실을 기하고, 내 주변과 이웃들에게 작게나마 베풀며 따뜻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저녁에는 가볍게 피자 한 조각으로 소박한 식사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세상은 본인이 열심히 일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면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신이 바라는 삶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매일매일 내 발로 뚜벅뚜벅 걸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마음에 평온을 지키며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오늘처럼 맑고 청량한 날씨 아래서, 지나온 삶에 감사하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기대해 본다.

(행주산성 근처에서 한강을 관망하며)



정직한 노동과 열정으로 채워온 지난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의 여유가 더욱 값지다.

앞으로도 자전거는 나의 영원한 친구이며,힘차게 페달을 밟고, 뚜벅뚜벅 내 길을 함께 걸어가며, 은퇴 후 나에게 주어진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을 마음껏 펼치면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가족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