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준위를 기억하며
세월은 가물거리는 옛 기억의 대부분을 쓸어가 버리지만, 가슴 깊은 곳에 맺힌 진정한 따뜻함은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문득 눈을 감고 44여 년 전의 시간 저편을 되짚어볼 때면, 험준한 산세 아래 매서운 칼바람이 불던 강원도 인제의 풍경과 함께 어김없이 떠오르는 한 분의 얼굴이 있다. 1982년, 제12보병사단 병기근무대 차량정비 현장에서 어버이처럼 부하들을 감싸 안아주셨던 김종대 준위님이다.
1980년대 초의 전방 부대란 이름만으로도 긴장감이 감돌던 시절이었다. 더욱이 인제·원통 일대를 지키는 을지부대는 산악 지형이 험하고 추위가 혹독하기로 유명했다. 그중에서도 병기근무대 차량정비반은 사단의 모든 이동 수단이자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차량들의 성능을 유지하기 위해 밤낮없이 땀 흘리는 곳이었다. 엔진 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기름 냄새와 쇠붙이 냄새가 진동하는 정비창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작은 볼트 하나, 정비 미숙 하나가 자칫 커다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현장의 분위기는 대개 서슬 퍼렇고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얼음장 같던 부대 분위기 속에서도 김종대 준위님이 계신 곳만큼은 늘 온기가 감돌았다.
차량정비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베테랑 준사관이셨던 그분은, 높은 계급과 압도적인 실력에도 불구하고 아랫사람이나 어린 장병들을 대할 때 단 한 번도 위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오직 깊은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자상함으로 현장을 지휘하셨다.
당시 전방의 겨울은 오만가지 추위를 다 끌어 모아놓은 듯 지독했다.
얼어붙은 차량 하부에 들어가 작업을 하노라면 손가락 마디마디가 감각을 잃고, 쇳덩이에 살점이 쩍쩍 붙어 떨어질 만큼 추위가 뼈를 찔렀다. 작업이 길어져 모두가 지치고 손끝이 얼어붙어 부속품조차 제대로 잡지 못할 때면, 김종대 준위님은 어김없이 다정한 걸음으로 다가오셨다.
"손이 많이 얼었지? 서두르지 말고 잠시 불 좀 쬐다 하자. 사람이 먼저지, 차가 먼저겠나."
차가운 정비창 구석에서 장병들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으면, 당신의 손으로 직접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시며 때묻은 장갑 위로 굳은 손을 꼭 감싸어 쥐어주시곤 했다.
상급 부대의 독촉으로 서둘러 정비를 끝내야 하는 촉박한 상황 속에서도, 당신은 결코 아랫사람에게 고함을 치거나 화를 내며 독촉하는 법이 없으셨다. 대신 몸소 연장을 들고 기름때 묻은 차 밑으로 들어가 함께 땀을 흘리시며 차근차근 정비 요령을 가르쳐주셨다.
실수로 부속을 잘못 다루거나 정비에 차질이 생겼을 때도 그분의 자상함은 빛을 발했다. 여타 간부들이라면 불호령이 떨어졌을 상황에서도, 김종대 준위님은 그저 허허 웃으시며 다정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괜찮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같이 찾아보자꾸나."
그 따스한 말 한마디는 낯선 타향이자 엄혹한 군대에서 긴장으로 가득 차 있던 어린 장병들의 마음을 눈 녹듯 녹여주었다. 사람을 다룰 때 위엄이나 호통 대신 '진심과 배려'로 대할 때 비로소 깊은 존경이 나온다는 사실을, 나는 김종대 준위님의 뒷모습을 보며 온몸으로 배웠다.
지나온 내 삶의 궤적 속에서 참으로 수많은 인연을 지나쳐왔다. 하지만 1982년, 그 가파르고 혹독했던 강원도 골짜기에서 만난 김종대 준위님의 자상한 얼굴과 은은한 미소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더욱 선명한 각인으로 남아있다. 그분은 단순한 군대 상급자를 넘어, 젊은 날의 고단함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셨던 인생의 참된 스승이자 어른이셨다.
어느덧 44여 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이 흘렀다. 그 시절 청춘의 피를 흘리며 정비소대를 누비던 젊은이도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아는 나이가 되었으니, 그 당시에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김종대 준위님 역시 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린 노신사가 되어 계실 것이다.
지금도 종종 어디선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거나, 길가에서 은은한 기름 냄새가 풍겨올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옛날 12사단 병기근무대의 정비창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시절, 얼어붙은 사병들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시며 다정한 인사를 건네시던 김종대 준위님의 자상했던 음성을 나지막이 그려본다.
"준위님,
당신이 당직사관할때면 병사들이 편하게 아버지처럼 취침점호와 평소에 따뜻한 애정으로 보살펴 주어
그 시절 따뜻한 온기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었습니다. 부디 어디에 계시든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