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독백

by자봉

1. 칠십여 년의 그림자, 장남이라는 무거운 이름

돌아보면 내 삶은 언제나 ‘장남’이자 ‘종손’이라는 거대하고 무거운 굴레 속에 갇혀 있었다.

4남 3녀,

그 많은 형제 중에서도 나는 늘 가문의 기둥이어야 했고, 부모의 기대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첫 번째 존재였다.


아버지의 성격은 변하지 않아

아버지를 성나게 하지 않으려 매사에 전전긍긍했고, 자식으로서 해야 할 도리는

소홀히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 정성과 노력은 아버지가 쳐 놓은 단단한 벽을 넘지 못했다.


내 나이 70세가 다 된 지금까지도, 아버지는 나를 향해 단 한 번도 따뜻한 눈길을 건네지 않으셨다. 이유는 단 하나, 내게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유교주의 사상과 뿌리 깊은 가부장적 관념에 사로잡힌 아버지는 시대를 역행하고 계셨다.

딸만 둘을 낳았다는 이유로 나는 순식간에 가문의 죄인이 되었고, 장남으로서의 모든 권리와 존재 가치를 박탈당했다. 아버지는 내게 모든 것을 감추셨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당신의 재산을 나 몰래 처분하고, 나를 철저히 소외시키며 소위 ‘왕따’를 시키셨다.


칠십 평생을 바쳐 효도해 온 아들을 먼지처럼 여기며 철저히 도외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가끔은 잔인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저분이 정말 내 아버지가 맞을까?’ 하는 의구심. 차라리 남이라면 이토록 서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핏줄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기에 그 차별의 칼날은 더 날카롭게 심장을 찔렀다.


당장이라도 DNA 검사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일 만큼, 아버지의 냉대는 자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거대한 폭력이었다.



2. 어머니의 부재와 엇갈린 기억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도 나는 부모님을 차별하지 않았다. 어머니께 보약을 지어 올릴 때면, 아버지께도 똑같이 정성을 담아 보약을 해 올렸다. 자식으로서 기울지 않는 사랑을 드리려 애썼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싸늘한 외면과 상처뿐이었다.


만약 어머니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아 계셨더라면, 내가 이토록 처절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짙은 안개처럼 마음을 에운다.


어머니는 내 아픔을 알아주던 유일한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내 삶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역설적이게도 서울대병원으로 아버지를 119 민간구급대차로 모셔왔던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까 봐 동동거리며 걱정하던 마음, 인간으로서의 지구력과 힘을 다 쥐어짜 내며 그 먼 서울까지 아버지를 모셔왔던 나의 불철주야. 그것은 장남으로서 해야 할 마지막 도리이자, 자식으로서의 순수한 사랑이었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내 모든 힘을 쏟아부었건만, 그 결과로 내게 돌아온 것은 여전한 차별과 소외였다.


심지어 집안의 강아지조차 나를 무시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내 존재는 그 집안에서 철저히 지워져 있었다. 내가 베푼 정성과 사랑이 도리어 나를 옭아매는 쇠사슬이 되어 돌아왔을 때의 그 허탈함이란, 세상의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다.


‘이게 과연 내가 살아온 인생의 전부란 말인가?’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극정성을 다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상처뿐이니, 이제는 나도 지쳐버렸다.

그럴수록 더 일을 안 하고, 내 삶의 끈을 조금은 헐겁게 놓아버린 채 살아야겠다는 서글픈 다짐을 하게 된다.


애를 쓰면 쓸수록 깊어지는 우물이라면, 이제는 그 두레박을 내려놓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3.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생명

사람의 삶도 다르지 않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우묵배미를 만난다. 실패를 겪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건강을 잃거나 뜻한 일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내게는 아버지로부터 당한 평생의 차별과 외면이 바로 거대한 우묵배미였다. 그 시간은 마치 삶이 웅덩이처럼 푹 꺼진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형제들은 아무런 짐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멈춰 서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홀로 남겨진 듯한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했다.


그러나 인생은 높은 곳에서만 익어 가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 오히려 더 깊어진다.

내가 흘린 수많은 눈물은 나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힘을 길러 주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거절의 상처는 나로 하여금 내 자식들에게는 절대 그런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지혜와 겸손을 선물했다. 고난은 내 삶을 뿌리째 무너뜨리기도 했지만, 이 긴 세월을 견뎌 낸 나에게 더 넓은 마음과 세상을 관조하는 더 깊은 시선을 안겨 주었다.

강물은 높은 산에 머물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사람의 덕도 낮은 마음에 머문다. 비록 아버지는 나를 먼지처럼 여기셨을지라도,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내 삶의 태도는 주위의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을 만들어주었다.


낮은 곳은 비어 있는 곳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눈물과 아픔을 가장 많이 품을 수 있는 곳이다.


4. 비워진 마음에 차오르는 풍경

오늘날 우리는 높은 자리와 빠른 성공을 꿈꾸며 살아간다.

남보다 앞서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하며, 더 높이 올라야 한다는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유교적 관념에 사로잡혀 아들이라는 높은 명분만을 좇던 아버지의 삶도 어쩌면 그 높은 곳만을 바라보던 눈먼 질주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정상에 선 경험보다 힘들게 살아온

지나온 시간인지도 모른다. 삶의 굴곡을 견딘 사람은 쉽게 교만하지 않고, 아픔을 겪은 사람은 쉽게 타인을 외면하지 않는다. 칠십여 평생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우묵배미 같은 삶을 살아온 나는, 이제야 비로소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의 아름다움을 본다.

우묵배미는 결핍의 상징이 아니라 생명의 상징이다.


낮기에 물을 품고, 비어 있기에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 비록 아버지의 재산도, 따뜻한 말 한마디도 내게 고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그 모든 결핍을 넘어 타인을 품을 줄 아는 넉넉한 바다가 되었다. 자식을 차별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지켜내며 다시 일어설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진짜 재산이다.


삶의 우묵배미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인생에서 가장 낮아 보이는 그 시간이 오히려 가장 많은 것을 품는 시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은 비옥한 땅에서 피어나듯, 사람도 우묵배미 같은 시련의 시간을 지나며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진다. 삶은 높은 곳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에서 생명을 키울 때 가장 아름답다.

이제 나는 나를 옭아매던 장남이라는 쇠사슬을 내려놓으려 한다. 아버지를 향한 원망도, 억울함도 이 깊은 우묵배미에 묻어두고, 남은 생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내가 품은 소중한 이들을 위해 낮은 곳의 평화 속에서 살아가리라.


그것이 칠십여 년 서러운 세월 끝에 내가 찾아낸 내 인생의 진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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