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와 스크린 골프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나이를 먹어 간다.
모르는 사이에 머리칼엔 하얀 서리가 내리고, 한때 세상을 다 가질 듯 당당했던 어깨는 세월의 무게만큼 조금씩 내려앉는다.
돌이켜보면 참 치열하게도 살았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출근길에 올랐던 수십 년의 세월,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날들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내게 남은 것은 ‘은퇴’라는 담담한 명함 한 장뿐이었다.
퇴직을 하고 나면 삶의 풍경이 참 많이 바뀐다.
매달 꼬박꼬박 통장을 채우던 특별한 소득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은퇴자는 국가나 기업에서 나오는 얼마간의 연금을 쪼개어 생활을 이어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랜만에 옛 동료들이나 혹은 동네 친구들이 모여도 예전처럼 "오늘 내가 낼게!" 하고 호기롭게 지갑을 열기가 어려워진다.
밥 한 끼를 먹을 때도, 가볍게 당구 한 게임을 치거나 술잔을 기울일 때도 은근히 서로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이 조금 불편해 보이기도 하고 모양새가 안 좋다고 느꼈지만, 이제는 각자 먹은 만큼, 즐긴 만큼 정확하게 나누어 내는 ‘더치페이’가 제법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것이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현명한 노년의 생존 방식임을 모두가 묵묵히 인정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얼마 전, 마음 한구석을 씁쓸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은퇴자 셋이 모여 오랜만에 당구장에 갔다. 오랜만의 승부욕 때문이었을까, 한 시간이 넘고 두 시간이 지나도록 게임은 끝이 날 줄 몰랐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자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울렸고, 모두들 배가 고파 지쳐갔다. 결국 게임을 원만하게 마무리 짓고 다 함께 점심이라도 먹을 겸, 어느 누가 제안했다.
"우리 게임비하고 밥값으로 각자 2만 원씩 내서 정산합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지갑에서 2만 원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남은 한 사람이 문제였다. 그는 두 시간 가까이 함께 당구를 즐겼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낼 생각은커녕 "아휴, 내가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겠네" 하더니 돈 한 푼 내지 않고 쌩하니 자리를 떠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남겨진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 결국 나와 다른 은퇴자 한 명이 그 사람의 몫까지 얹어서 게임비를 치르고 터덜터덜 걸어 나와 점심을 먹었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삼키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음식이 어쩐지 까칠하고 씁쓸했다.
돈 2만 원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수십 년을 슬롯에서 같이 온라인 게임생활을 했던 은퇴자가 개인적으로 여자들 만나고 그럴 때는 돈도 잘 쓴다고
말하면서 게임비와 점심값도 내지 않고 도망가버리니 어안이 벙벙했다
고작 그 작은 돈 앞에서 그 사람이 습관적으로 보여준 초라한 양심과 염치없음이 마음을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참 묘한 것은 세상일이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얽힌다는 점이다. 그렇게 당구비도 내지 않고 황급히 사라졌던 그 친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아들이 결혼한다며 사방에 소문을 내고 다니기 시작했다.
퇴직한 지 오랜 시간이 흐른 은퇴자들에게 자녀의 결혼식은 커다란 숙제이자 걱정거리다. 현직에 있을 때야 찾아오는 하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옷을 벗고 야인(野人)으로 살아간 지 오래되면 결혼식장이 썰렁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 역시 그게 제일 두려웠던 모양이다. 하객이 없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전화를 돌리고, 수차례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내가 총무직을 맡아 운영되고 있는 은퇴자 모임이 있다. 회원 수가 총 17명 정도 되는, 제법 돈독한 모임이다.
그 친구는 그 모임의 단체 대화방(단톡방)에 본인의
아들 결혼 청첩 소식장을 게시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모임방들에도 여기저기 게시해 달라면서 "하객이 너무 없으니 제발 꼭 좀 와서 자리를 채워달라"며 진심 어린 당부를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미안했던지, 혹은 사람들을 유인하고 싶었는지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번에 내 아들 결혼식에 와서 축하해 주거나 축의금 보내주는 사람들에게는, 결혼식 끝나고 나서 내가 꼭 따로 자리를 마련해 밥도 사고 술도 거하게 대접하겠네. 진짜 대접할 테니 꼭 좀 와주게."
드디어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나를 포함한 은퇴자들은 예식장 로비에 서서 가만히 풍경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된 이의 잔치라 그런지 손님은
많았으나 삼십 년을 함께 근무한 동료들은 한산했다. 냉정한 세상인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그래도 평소 당구를 치거나 가끔씩 얼굴을 보던 은퇴자 7명이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
그중 한 친구는 귓속말로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야, 솔직히 올까 말까 고민했는데, 퇴직하고 애들 결혼시킬 때 하객 없으면 얼마나 쓸쓸하고 기가 죽겠냐. 그 마음이 짠해서 일부러 축하해 주러 왔다."
참으로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들이었다. 예식장을 채워준 은퇴자들의 발걸음은 그 어떤 화환보다 값진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한 모양이다. 자녀의 결혼식이라는 큰 산을 넘고 나자, 그 친구의 태도는 싹 달라졌다.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옛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떨어졌다. 결혼식이 끝난 지 수일이 지나고 몇 주가 흘러도, 고맙다는 개인적인 전화 한 통 없었다. 언제 그렇게 애타게 사람을 찾았냐는 듯, 먼저 연락해서 "그때 와줘서 고마웠네, 밥 한 끼 먹세" 하고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다시 한번 차갑게 식어 내렸다. 그 친구는 이제 인생의 큰 숙제인 장인, 장모, 부모님의 애사를 다 치렀고, 자녀들까지 모두 결혼시켜 보냈다. 이제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인생을 꼭 저렇게 앞뒤 다르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보통 우리 나이대에 퇴직 후 축의금을 보내거나 부의를 하면, 비록 사정이 있어 식장에 직접 가지 못하더라도, 혹은 5만 원이나 10만 원이라는 소박한 돈을 내더라도, 행사가 끝난 뒤에 "고맙네, 언제 시간 날 때 만 원짜리 소박한 밥 한 그릇이나 같이 하세" 하고 손을 내미는 것이 도리이자 당연한 인사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서로 쌓아온 신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이제 어느덧 칠십 평생을 살아왔다. 이만큼 살다 보니 참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나게 된다. 말로만 번지르르하게 온갖 인사를 다 하면서 행동은 전혀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고, 앞과 뒤가 너무나 달라서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모임에 나가보면 인간의 이기심은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모임에서는 회장이란 직바카라을 맡았던 이가, 바빠서 모임에 나오지 못하는 회원들에게 받은 회비 수십만 원을 현금으로 갖고 있다가, 모임에 내놓지도 않고 슬그머니 제 돈처럼 써버린 일도 있었다. 나이깨나 먹은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런 추한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깊은 환멸을 느끼곤 한다.
또 나이가 들면서 건강을 위해 술을 끊거나 먹지 않는 친구들이 한두 명씩 늘어난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가질 때도 사람들의 본성이 드러난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신나게 먹고 마신 뒤, 술을 안 마시는 친구가 렌트한 차를 운전해 주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미안해 하기는커녕 커피 한잔을 더 살 줄도
모른다
만약 나였다면 어땠을까. 내가 술을 실컷 먹고, 술 안 마시는 친구가 렌터카를 운전해 주며 고생했다면, 고마운 마음에 커피라도 한 잔씩 다 돌리거나 밥값이라도 조금 더 얹어서 냈을 것이다. "오늘 자네 덕분에 편하게 귀가하네, 고마우이" 하면서 말이다. 돈이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잘 살거나 못 살거나를 떠나서, 이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와 마음의 크기 문제다. 사람들의 마음은 왜 그리도 좁고 야박한 지, 때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문득 화가 날 때도 있다.
'내가 왜 항상 손해를 봐야 하지? 나만 바보처럼 답답하게 살고 있는 건가? 나도 남들처럼 영악하게 눈치나 보며 살아야 하나?'
내가 조금 더 베풀고, 내가 조금 더 지갑을 열고, 내가 조금 더 움직일 때마다 찾아오는 텅 빈 허탈감은 스스로를 '호구'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하지만 가만히 숨을 고르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늘 불공평하고 혼탁한 것만은 아니다. 오랜 세월 다양한 사람들을 겪으며 깨달은 어렴풋한 진실이 하나 있다. 거친 슬롯 바닥에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사업을 했던 친구들보다는, 그래도 든든한 온라인 게임에서 조직의 규율을 배우고, 성실하게 직바카라을 맡아 관리직까지 올랐던 사람들의 삶이 비교적 더 곧고 성실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최소한 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고, 약속을 소중히 여기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 묵직한 바카라임감이 배어 있다. 그런 성실한 이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혼탁한 세상에서 그나마 작은 위안이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타고난 개성과 성격이 다르다.
그것을 내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하거나, 왜 나처럼 행동하지 않느냐고 다그쳐봐야 돌아오는 것은 깊은 갈등과 마음의 상처뿐이다. 칠십 년을 살며 배운 지혜는, 그저 '저 사람은 저런 모양의 그릇이구나' 하고 그러려니 하며 멀리서 바라보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비록 가끔은 손해를 보고 바보가 된 것 같을지라도, '항상 내가 조금 더 쓴다'는 자세로 살아가자고 말이다. 당구비 2만 원을 아끼려 도망치듯 가버린 은퇴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가난한가. 아쉬울 때는 애걸복걸하다가 일이 끝나자마자 모른 척 입을 씻어버린 이의 삶은 또 얼마나 허기진가.
그들에 비하면, 비록 내 주머니는 조금 가벼워질지언정 남에게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내가 훨씬 더 부유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조금 더 내면 그 자리가 평화롭고, 내가 조금 더 움직이면 주변이 편안해진다. 노년에 부려보는 이 작은 호사가 내 인생을 품위 있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세상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고 안갯속처럼 흐릿하다.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감과 인간 마음에 대한 씁쓸함은 앞으로도 문득문득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저물어가는 인생의 석양 앞에서 타인의 야박함을 탓하며 내 마음까지 갉아먹고 싶지는 않다.
나를 알아주는 몇 명의 성실한 동반자들과 함께, 남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려 한다. 오늘도 지갑은 가볍게, 그러나 마음만은 넉넉하게 채운 채, 기꺼이 조금 더 손해 보는 삶의 아름다움을 예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