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의 기적. 그리고 긍정적으로 살기

by자봉

​1. 고무신과 지게의 기억을 넘어

​내 나이 어느덧 회갑을 훌쩍 지나 70 고개다.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거나, 문밖을 나서서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을 마주할 때면 묘한 이질감이 들곤 한다.

옛날 과거 기준대로라면 그저 '장수했다'며 동네잔치라도 벌였을 노년의 나이이건만, 지금은 백세 시대를 말하는 세상이다 보니 다들 당연하게, 또 건강하게 살아간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인생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지, 이 나이가 정말 많은 것인지 혹은 아직도 한참 남은 것인지 정확하게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저 매일 아침 주어지는 하루를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조용한 휴일 오후,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예전 모 공기업체 시절에 입사를 함께했던, 나보다 나이가 몇 해 위인 인생의 선배가 보내온 글이었다.

늘 혜안이 깊고 사려 깊은 그 선배는 내게 조용히 읽어보라며 세계 인구와 관련된 흥미로운 통계 자료를 건넸다. 차를 한 잔 곁에 두고, 화면 속의 숫자들을 하나씩 눈으로 따라 읽어 내려갔다.


​‘전 세계 인구 중 65세 이상 생존자가 단 8%에 불과하고, 대학 졸업자는 7%에 지나지 않는다.’


​그 숫자를 보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82억 명이 넘는다는 지구상의 그 수많은 인구를 단 100명이 사는 작은 마을로 축소해 보았을 때, 65세의 고개를 무사히 넘겨 살아가는 이가 고작 8명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고등 교육을 받고 세상을 읽는 눈을 가진 이는 7명 미만이라는 통계였다.


​잠시 눈을 감고 수십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내 고향 농촌의 작은 시골 마을, 그 시절 우리네 삶은 참으로 척박하고 가난했다.

먹고살기가 너무도 힘들어 너나 할 것 없이 어깨가 부서져라 지게를 져야 했고, 맨발로 흙바닥을 딛거나 닳아 빠진 검정 고무신 한 켤레에 의지해 먼 길을 걸어 다녔다. 배고픔이 일상이었고, 질병은 늘 예고 없이 찾아와 이웃들의 목숨을 앗아가곤 했다.


​그 모진 세월의 풍파를 다 견뎌내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그 숨 가쁜 여정의 중심에서 청춘을 바쳐 일해온 우리 세대. 이제 와 돌아보니, 지금 이렇게 따뜻한 집에서 깨끗한 물을 마시고, 손 안의 휴대전화로 전 세계의 소식을 보며 휴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커다란 기적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지구라는 별에서 가장 극소수에 속하는, 커다란 특권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들인 것이다.


​2. 친구의 말 한마디에서 배운 인생의 품격

​어제는 오랜 학교 동창의 자녀 결혼식이 있어 식장에 다녀왔다. 부천에서 열린 예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 고향 전라도 광주에서부터 먼 길을 마다치 않고 한걸음에 올라와 준 동창들의 얼굴을 보니 눈물겹도록 반가웠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눈가의 주름 속에서도, 학창 시절의 순수했던 미소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날 내 시선을 붙잡았던 이는 평생을 교육자로 살다가 교장 선생님으로 퇴직한 친구였다. 그는 예식장 테이블에 둘러앉은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긍정의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야, 우리가 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친구 자식 경사에 와서 밥 한 끼 먹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참 감사하다, 친구야."


​그 친구가 툭툭 던지는 긍정적인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 듣기에 좋았고,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그 대화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나직이 다짐했다. '그래, 나이가 들수록 성격이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몸의 관절 마디마디가 삐걱거리는 것처럼, 마음의 문도 좁아지기 쉽다. 서운한 일은 더 크게 보이고, 세상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이 늘어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2명의 교장 선생 출신 친구의 밝은 얼굴을 보며 느낀 것은, 노년의 품격은 결국 '긍정의 언어'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주변을 밝히는 따뜻한 말 한마디,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가짐이야말로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성품이 아닐까.


​물론 세상사 모든 인연이 이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간혹 어떤 모임이나 1박 2일 여행을 가서 한방에 묵다 보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씁쓸한 광경을 목격하기도 한다. 나이가 지긋이 들어가는데 밤사이 먼저 잠이 든 친구의 가방을 뒤져 슬그머니 돈을 훔치는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이들도 나이가 들었음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처음 그런 일을 겪거나 들었을 때는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나이를 저렇게 먹도록 어찌 저리 부끄러움을 모를까' 싶어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받은 이 통계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채워지지 못한 마음의 결핍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내 뜻과 같지 않은 타인의 허물에 마음을 빼앗겨 내 소중한 하루를 부정적인 감정으로 낭비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는 나의 길을 가며, 내 주변의 훌륭한 친구들과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에 내 남은 시간을 쓰면 족할 일이다.


​3. 뉴잉글랜드 저널이 말하는 황금기, 그리고 나의 걸음


​선배가 보내준 글의 뒷부분에는 미국의 한 대규모 연구 결과가 적혀 있었다. 저명한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발표된 의사와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가장 생산적이고 정신적 능력이 정점에 달하는 전성기는 다름 아닌 60세에서 80세 사이라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평균 연령이 62세이고, 세계 100대 기업 사장들의 평균 연령이 63세라는 구체적인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 문장을 읽는데 가슴속에서 잔잔한 열정이 다시금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60세가 넘으면 은퇴라는 이름으로 슬롯의 변두리로 밀어내려 하지만, 의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뇌와 감정은 바로 지금, 70대의 나이에 비로소 가장 깊고 성숙한 잠재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돌아보니 퇴직 후의 내 삶도 결코 멈추어 있지 않았다. 이 나이에도 남을 도울 수 있는 행정사와 슬롯복지사 자격을 갖추어 종종 일하고 있고, 매일 푸른 숲길을 걸으며 하루 8천 보, 만 보의 발걸음을 거르지 않는다. 도서관에 앉아 신문과 바카라을 읽고, 마음에 닿는 구절을 정성스레 필사하며, 지나온 삶의 궤적을 자서전과 수필로 엮어가는 이 시간들. 이 모든 활동이 결코 남은 시간을 때우기 위한 소일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지혜가 무르익은 '최고의 전성기'를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였다.


​우리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살아남아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아직 세상 속에서 우리가 나누어야 할 지혜와 온기가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 듦은 쇠퇴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거대한 여행의 진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계를 위한 고단한 질주를 이제 모두 끝마치고, 비로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감사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지금이야말로 내 생애 가장 좋은 시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4. 감사함으로 걷는 남은 여정

​통계 숫자로 가득 찬 화면을 끄고 창밖을 내다본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평화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수십 년 전 지게를 지고 맨발로 고향 땅을 걷던 소년은 어느새 70대의 노신사가 되어 이 축복받은 세상을 조용히 관조하고 있다.


​내가 65세를 넘어 이 자리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여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따뜻한 언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세계 8%의 기적에 속하는 거대한 축복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남은 모든 순간을 불평과 원망 대신 만족과 감사함으로 채우겠다는 다짐이다. 남의 허물에 마음을 다치기보다는 내 건강을 돌보고, 내 곁의 소중한 인연들을 한 번 더 안아주며, 매일매일 주어지는 하루라는 선물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인생이라는 이 여행은 생각보다 훨씬 늦게 시작된다."


​인생 선배가 카톡으로 보내준 그 마지막 문장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나는 오늘 하루도 감사함으로, 그리고 늘 행복하게 살아갈 큰 용기를 얻는다. 오늘도 나는 가벼운 운동화를 꿰어 차고, 나에게 주어진 이 아름다운 황금기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나를 기다리는 그 길 위에, 언제나 긍정의 마인드가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50년전 동창들과 롯데타워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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