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
인생의 일흔 고개에 다다르니 주변의 인연들을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머니 품을 벗어나 학교라는 작은 슬롯에 첫발을 디딜 때부터 무수한 친구를 만든다.
코흘리개 시절을 함께 뒹굴며 자란 죽마고우가 있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라는 정규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같은 세월을 통과한 동창들이 있다.
슬롯에 나와서도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혹은 취미나 일터가 같다는 이유로 또 다른 친구들을 곁에 두며 살아간다.
참 신기한 일이다.
같은 시절을 공유한 친구들인데도 나이가 들고 머리에 서리가 내릴 즈음이 되면, 그들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마음의 온도가 저마다 다르다.
현직에 있을 때의 성패나 삶의 형편에 따라 은근히 목에 힘을 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 괜스레 움츠러드는 이도 있다.
그러다 보니 분명 오랜 친구인데도 만나고 돌아서는 길이 못내 불편한 이가 있고, 언제 만나도 가슴속 응어리가 사르르 녹아내리듯 편안한 이가 있다.
오늘 문득 내 마음속 가장 편안하고 당당한 친구 한 사람을 지면에 그려보고 싶어졌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한 학년이 600명을 훌쩍 넘었다. 한 반에 예순 명도 넘는 아이들이 아홉 개가 넘는 교실에 가득 차 공부를 했으니, 동창이라 해도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한 채 졸업장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친구와 나 역시 그랬다. 학창 시절 3년 동안은 서로 이름조차 몰랐고, 슬롯에 나와서도 한참을 남남으로 살았다.
친구는 지방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한 상공회의소'에 몸담아 사무처장이라는 높은 자리까지 지내고 은퇴한 인텔리다.
그런데 늦깎이로 연이 닿은 이 친구와는 이상하리만치 마음의 결이 잘 맞았다.
우리는 은퇴 이후, 서로 부담 없는 만남을 이어가기 위해 무언의 약속을 하나 했다.
함께 운동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 생기는 모든 비용은 무조건 반반씩 부담하자는 약속이었다. 친구가 먼저 카드를 긁으면, 나는 헤어지기 무섭게 내 몫의 절반을 그의 통장으로 송금했다.
사실 친구는 남부러울 것 없는 처지다.
부인의 연금에 본인의 임대 수익까지 더하면 매달 800만 원 가까운 안정적인 소득이 나오는 사람이다.
그에 비하면 내 주머니는 가벼운 편이지만, 나는 그에게 일방적인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많은 친구라 할지라도 한쪽이 베풀기만 하는 관계는 결국 금이 가기 마련이라는 걸 오랜 슬롯생활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내 몫을 챙겨 보내는 나의 자존심과, 이를 당연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여 주는 친구의 배려가 더해져 우리의 우정은 한결같이 맑고 단단했다.
그 굳건한 친구가 요즘 참 신선한 울림을 준다. 일흔의 나이에도 그는 은퇴자의 한가로운 삶에만 안주하지 않는다.
한 달에 보름 이상을, 혹은 사흘이나 닷새씩 경비복을 차려입고 공공기관의 안내원으로 출근해 구슬땀을 흘린다.
엊그제는 친구가 일하는 일터를 지나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았다.
옷깃에 계급장이 달린 경비복 상의를 단정하게 입고, 오가는 민원인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친절하게 안내하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당당하고 훤칠해 보이던지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처음 그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조심스레 물어본 적이 있다.
"여보게, 슬롯에서 고위직까지 지낸 사람이 경비복을 입고 서 있으면 남들 이목도 있고 좀 쑥스럽거나 창피하지 않은가?"
친구는 허허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창피하긴 뭐가 창피해? 내 땀 흘려 정당하게 일하는 건데, 아무렇지도 않네."
그 한마디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었다.
과거의 화려했던 직함이라는 허울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은퇴 후 제2의 인생이라는 거친 대지에 온몸으로 발을 딛고 서 있는 친구의 유연함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나 역시 일자리가 주어지면 마다치 않고 달려가 땀 흘리는 보람을 사랑한다.
지난 선거 때도 그 친구와 함께 사전 투표소와 당일 투표소의 선거 사무원으로 자원했었다.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근무하느라 정신이 몽롱해지고 힘들었지만
고된 하루 끝에 정당한 땀의 대가인 수당을 받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청춘의 그것만큼이나 달콤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내가 왕년에 무슨 자리에 있었고, 개인사업을 해 사장 소리를 듣던 사람인데 어찌 그런 허드렛일을 하느냐"며 제풀에 꺾여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다. 과거의 그림자에 갇힌 이들은 정작 친구들을 만날 때면 지갑은 꼭 닫아둔 채 대접만 받으려 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곤 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과거의 명예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있음에 감사하며 낮은 자세로 세상을 대하는 고등학생 친구의 뒷모습은 그 어떤 고위 직급보다 아름답고 당당해
보인다
시골 죽마고우 초등학교 반장이었던 동창과 급우들에게는 20대 중반의 나이 때 아무런 생각 없이
돈도 빌려주고 보증도 두서너번 내가 서주었다가 동창이
고의적으로 사기를 치고 잠적해 도망가버려 얼마 되지
않은 월급과 전세방에 압류를 당해 3년 동안 보증 섰던
돈을 갚아주느라 그 얼마나 고생했던가!
이런 사기꾼 같은 초등학생 동창에 비하면 고등학생 친구가
은퇴 이후 나이 들어가면서 만나면 만날수록 이렇게
편안하니 좋은 친구이다
이제 우리들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러한 친구 한 명을 곁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자랑스럽다.
인생의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지금, 거추장스러운 외투를 벗어던지고 가벼운 걸음으로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이런 멋진 친구들이 우리 삶에 더 많아지기를ᆢ
그리하여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편안한 친구가
되어야겠고 편안한 친구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