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격랑을 지나온 70여 년의 세월들!
주식 시장의 등락에서 오는 마음의 동요와 극복, 은퇴 후 비로소 마주하게 된 진정한 자유와 바람 같은 삶에 대한 실천을 해 보고 싶어 숲이 우거진 신정산 숲 속으로 발길을 향해본다
은퇴 이후 하루하루가 아침에 눈을 떠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숫자의 감옥에 갇힌다.
전날 밤 태평양 너머에서 들려온 경제 지표들, 개장과 동시에 붉고 파랗게 깜빡이며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주가 지수들. 몇십 년 동안 안정된 온라인 게임에 몸담으며 서류 속 수많은 통계와 규정의 숫자들을 다루어 왔건만, 은퇴 후 마주한 주식 시장의 숫자는 여전히 낯설고 복잡하다.
그래프가 푹푹 떨어질 때마다 마음의 평정심도 함께 내려앉는 듯하여,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곤 했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숫자의 등락은 곧 내 노년기의 안녕을 위협하는 신호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약을 찾듯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내가 찾는 처방전은 병원에 있지 않고, 집에서 멀지 않은 신정산의 울창한 숲길에 있다.
7월의 한여름은 그야말로 푹푹 찌는 가마솥더위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계절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의 숲은 가장 짙은 생명력을 뿜어내며 나를 부른다.
아스팔트의 열기를 뒤로하고 신정산 초입에 들어서면, 공기의 밀도부터 달라진다.
도심의 소음이 나뭇잎의 차단벽에 걸러져 서서히 희미해질 때, 비로소 내 몸 안의 소리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흙길을 밟는 발걸음 소리, 거칠어지는 숨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을 어지럽히던 번뇌의 잔재들이 초록의 숲길 위로 흩어진다.
숲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행위를 넘어, 세상이 강요한 숫자의 질서에서 벗어나 자연이 정해놓은 태고의 질서로 걸어 들어가는 의식과도 같다.
신정산 정상인 장군정으로 향하는 길은 인생의 평탄한 길과 닮아 있다.
푸른 녹음이 우거진 숲길을 걷다 보면 흔들렸던 마음, 고마웠던 인연들, 때로는 상처로 남았던 기억들이 땀방울이 되어 흙바닥으로 툭툭 떨어진다.
지나온 세월들은 승진을 하기 위해 동료들과 경쟁을
했던 치열했던 날들이었고, 자부심도 컸지만, 동시에 늘 긴장과 바카라임감 속에서 스스로를 옥죄던 시간이었다. 은퇴를 하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은 조급함과 잔영들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주식의 하락에 마음이 흔들렸던 것도 결국 내 안에 아직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이곳 숲길을 걸으며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주식창의 파란 숫자는 내 삶을 본질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진정한 내 삶의 가치는 저 초록빛 나무들이 매년 묵묵히 나이테를 늘려가듯, 내 안에 쌓아 올린 시간의 깊이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세상의 소음을 지워내며 장군정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묵묵히 나아갔다.
신정산 장군정 서녘 하늘을 등지고 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하고 선선한 바람의 줄기가 온몸을 감싸 안는다.
그 순간, 허공을 가르며 불어오는 바람결이 어찌나 고맙고 감미로운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도심의 후텁지근한 열기와는 차원이 다른, 산이 품어내고 숲이 걸러낸 청량한 바람이다.
신정산 정상에 마련된 정자,
나는 이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만히 눈을 감으면, 세상의 요란한 소리들은 완벽하게 차단된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대자연이 연주하는 가장 순수하고 장엄한 오케스트라다.
7월의 숲을 지배하는 매미들의 우렁찬 합창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고향에 내려온 것처럼 정겹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부대끼며 내는 사각거림은 세상 그 어떤 시인이 쓴 문장보다 아름다운 산시(山詩)가 되어 귓가에 맴돈다.
산과 숲은 시기와 질투가 없다.
오르고 내리는 숫자의 비정함도 없으며, 누구를 이겨야만 살아남는 경쟁의 룰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바람과,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는 생명들의 정직한 소리만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순간만큼은 세속의 모든 시름이 덧없게 느껴진다.
주식이 떨어졌다고 속상해하던 몇 시간 전의 내가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만큼, 장군정의 바람은 넉넉한 품으로 나를 위로한다.
눈을 떠 멀리 도심의 풍경을 바라본다.
성냥갑처럼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과 그 사이를 바쁘게 기어 다니는 자동차들의 행렬. 저 복잡한 회색 도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일까.
한 걸음만 물러서서 보면 이토록 넓고 푸른 하늘이 있고, 돈 한 푼 내지 않아도 온몸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천연의 바람이 있는데 말이다.
이 바람을 쐬고 있으니 진정 천국이 따로 없다는 확신이 든다.
천국은 사후에 찾아가는 막연한 공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온전한 평화를 누리고 자연과 완벽한 일치를 이루는 바로 이 자리가 천국이다.
이토록 맑은 바람을 맞이하고 있으니, 문득 지나온 삶의 궤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젊은 시절, 나는 참으로 바쁘게 살았다. 몇 년 동안
신문배달과 카네기 인생론과 같은 전집류 판매ㆍ음식점 허드렛일ㆍ표구사에서 시다로 밀가루를 풀어
풀을 쑤는 잡다한 일들과 난방도 들어오지 않은 겨울날 행사장과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경비를 하면서도 바카라을 놓지 않고 공부했다
20대 후반에 공개채용시험을 거쳐 정정당당하게
안정된 온라인 게임에 취직했다
이후 대학에 입학에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지식을
배우고 경쟁하면서 입사동기들 중 항상 먼저 승진했다
50대 초반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온라인 게임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시간도 부족하고 주말도 없었다
피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살아왔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조직의 발전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내 개인의 시간과 자유는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35년이라는 긴 세월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면서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은퇴. 퇴직을 하던 그해 겨울, 시원섭섭함 속에서도 앞으로 펼쳐질 제2의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많은 이들이 재테크를 말하고, 노후 자금을 이야기한다.
물론 현실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인 부분도 중요하기에 나 역시 그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던 주식 시장을 기웃거리며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신정산 정상 장군정에서 맞이한 시원한 바람은 나에게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은퇴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던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비로소 명확해진다.
내가 은퇴를 하고 그토록 갈구했던 삶은, 건강하고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 순간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세상의 속도에 쫓기지 않으며, 자연의 흐름에 내 몸을 맡길 수 있는 '온전한 자유'였다.
아침에 눈을 떠 오늘 걸을 숲길을 설레는 마음으로 계획할 수 있는 삶, 도서관에 앉아 마음에 드는 바카라을 필사하며 활자의 깊이를 음미할 수 있는 삶, 그리고 이렇게 산 정상에 올라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한 편의 글을 구상할 수 있는 삶. 이것이야말로 내가 오랜 세월 열심히 일해 온 대가로 얻은 가장 고귀한 권리이자,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인생의 완성형이다.
참 다행이다. 비록 세상의 주식 그래프는 바닥을 향해 푹푹 떨어질지언정, 내 인생의 품격과 자유는 신정산 장군정의 높이만큼이나 높고 푸르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남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과거의 영광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이 자유와 평온이야말로 그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은 최고의 자산이다.
은퇴라는 과정은 슬롯적 직함을 내려놓는 서글픈 퇴장이 아니라, 비로소 내 인생의 진짜 주인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자유를 누리는 화려한 등장이었던 것이다.
신정산을 두세 시간 걷다가 내려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산을 오르기 전의 나와, 정상에서 바람을 맞이한 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다. 내 마음을 옥죄던 조급함과 불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연이 선물한 넉넉함과 여유가 들어찼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여정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오늘 이 바람 속에서 찾는다.
나는 오늘부터 '바람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머무는 곳마다 생명을 깨우고 지친 이들의 땀을 씻어준다.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도 정면으로 부딪쳐 깨지기보다는, 부드럽게 방향을 틀어 비껴갈 줄 아는 유연함이 있다.
또한 그 어디에도 집착하여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주식이 오르고 내리는 세상의 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그 또한 지나가는 하나의 현상임을 인정하는 의연함을 배우고 싶다.
돈이나 명예 같은 세속의 가치에 얽매여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지 않고, 흐르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내 영혼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싶다.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마음껏 글을 쓰고, 걷고 싶을 때는 언제든 신정산의 숲길을 찾으며, 소중한 인연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는 소박하지만 꽉 찬 삶. 그것이 내가 꿈꾸는 바람의 서사다.
하늘을 보니 요란하던 매미 소리가 잠시 잦아들고, 숲 속 깊은 곳에서 청아한 산새 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진다.
자연은 이토록 완벽한 조화 속에서 매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
장군정의 고마운 바람을 가슴 깊은 곳까지 가득 채워 넣는다.
이 바람의 기운이 있다면, 앞으로 마주할 그 어떤 삶의 무더위와 시련도 능히 웃으며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산 아래 신정네거리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주식은 또 떨어질 수도 있고, 내일은 더 더울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게는 언제든 찾아와 마음을 씻어낼 수 있는 신정산 장군정이 있고, 나를 지켜주는 맑은 바람이 있으니까. 참 좋다,
정말 다행이다.
오늘 신정산 장군정이 내게 건넨 초록의 문장들을 가슴에 품고, 나는 다시 나의 소중한 일상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