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원통의 추억들
인제 원통의 바람 속에 새겨진 이름, 전우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군대를 다녀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읊조리던 이 해묵은 한탄은, 1980년대 초 내 청춘의 한 페이지가 고스란히 묻힌 육군 제12사단 을지부대의 준엄한 현실이었다. 첩첩산중 눈을 돌려도 온통 서슬 퍼런 산줄기뿐이던 그곳, 바람마저 칼날 같던 인제 원통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시렸다.
스물두 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청년의
군번 '13069395'라는 숫자는 낯설고 무거웠다. 병기근무대 보급부의 일병으로 매일같이 쏟아지는 군수물자와 씨름하고, 굳은살이 박이도록 훈련을 거듭하던 나날들. 그 고된 행군을 버티게 한 것은 오직 하나, 곁에서 함께 거친 숨을 내쉬던 전우들이었다.
계절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우리는 철모를 깊게 눌러쓰고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산등성이에 올랐다. 매서운 칼바람에 뺨은 얼어붙고 손끝은 감각을 잃어갔지만,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묵묵히 걸었다. 잠시 숨을 돌리며 바위에 걸터앉아 바라본 원통 땅은 황량하면서도 장엄했다.
그 험준한 산바람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어붙은 손을 잡아주었고, 주머니 속에서 가만히 꺼낸 눈물겨운 담배 한 개비를 나누어 피우며 말 없는 위로를 건넸다. "조금만 더 힘내자"는 눈빛 하나면 충분했다.
병영생활은 단조롭고 엄격했지만, 그 안에는 사람 사는 뜨거운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연말 성탄절이 다가오면 삭막하던 내무반도 작은 온기들로 채워졌다. 천장에 알록달록한 은박 종이 장식을 매달고, "멋진 군인이 되자"라는 투박한 글귀 아래 모여 앉았던 그 시절의 성탄절과 연말 밤.
슬롯에 두고 온 가족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밤잠을 설치던 전우들이었지만, 그날만큼은 과자 몇 봉지와 음료수 한 잔을 앞에 두고 소박한 웃음꽃을 피웠다.
분대장 견장을 어깨에 차고 전우들의 앞을 이끌 때면, 내 어깨는 두 배로 무거워졌다. 하지만 내무반 한구석에 서서 든든하게 나를 지켜봐 주던 고참들과, 내 지시를 묵묵히 따라주던 후임들이 있었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고된 훈련이 끝나고 취사장에 모여 식판을 들고 환하게 웃던 시간, 커다란 솥과 취사도구를 나눠 들고 연병장에 서서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찍은 사진 속에는 청춘의 고단함 대신 끈끈한 연대감만이 빛나고 있었다. 때로는 연병장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축구공을 차고, 지휘관들과 한데 어우러져 단체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군인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었다.
성실함 하나로 버텨내던 1980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나는 병기근무대장 박상규 중령님으로부터 뜻깊은 표창장을 받았다.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고 내무생활 및 전투력 발전에 노력한 80년도 모범사병'. 그 한 장의 종이는 단순히 나 개인의 영예가 아니었다. 밤낮으로 내무실을 함께 쓸고 닦으며 격려해 준 전우들, 그리고 보급부의 고된 일과를 함께 짊어지며 땀 흘린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우리 모두의 상장이었다.
4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가끔 가슴이 답답할 때면 인제 원통의 푸른 산줄기와 그곳에서 나누었던 뜨거운 전우애가 떠오른다. 살을 넙치던 추위도, 혹독했던 훈련도 이제는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자락으로 남아 가슴을 가만히 울린다. 지금은 어디서 저마다의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을 나의 전우들. 그 시절 우리가 나누었던 뜨거운 정과 땀방울은, 내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주춧돌이 되어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
그 당시 병기 근무대에 함께 군 생활을 보냈던 전우들이 그립고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