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ㆍ조사에서 마주한 옛 동료들

by자봉

​서울에도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더니,

어제오늘 촉촉한 비가 대지를 적신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라 공기는 한결 시원해졌고, 아파트 단지의 수목들도 반가운 듯 더 푸르게 생기를 뿜어낸다.


​주말과 휴일로 이어진 이틀 동안, 은퇴 후에도 가끔씩 찾아오는 결혼식 청첩장과 부고장이 카톡으로 날아들었다.

흔히 나이가 들고 현직에서 멀어지면 경조사 소식이 줄어든다고들 한다. 은퇴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어가니 확실히 체감될 만큼 줄어들긴 했다.

아니면 지금이 한여름 비수기여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눈에 띄게 뜸해진 것은 사실이다.


​어제는 은퇴한 후배의 장모님 상을 치르는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오랜만에 혼자 조문을 다녀왔다.

공직을 떠난 지 오래되어서일까. 현직 시절 그 많던 수천 명의 동료 중 눈에 띄는 얼굴은 겨우 3명뿐이었다.

홀로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 길, 넓은 장례식장에 아는 사람이 없어 못내 쓸쓸한 마음이 밀려왔다.


​오늘은 일요일, 현직 시절 일 년 늦게 들어와 동료나 다름없이 지내던 후배가 장남을 장가보낸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중구 필동의 한 야외 결혼식장이었다.

오늘도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예식장에 들어섰다.

과거에 시끌벅적하게 함께 부대끼던 수천 명의 동료 중 오늘 참석한 이는 대여섯 명에 불과했다. 현직에 있을 때야 여러 부서에서 축하의 발길이 이어졌겠지만, 퇴직 후 10년이 되니 확실히 옛 온라인 게임 동료 하객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쓸쓸함도 잠시, 야외 결혼식장은 이내 다른 온기로 채워졌다.

고향 친지들과 학교 동창들, 그리고 오랜 지인들이 그 빈자리를 든든하게 메워주고 있었다.

덕분에 붐비지 않고 적당한 인원이 모여,

서로 복잡하게 치이지 않으면서도 진심 어린 축복을 건네는 아름다운 결혼식이 되었다.

오히려 과시하지 않는 진정한 축복의 자리 같아 보기 좋았다.


​예식이 끝난 후, 오랜만에 만난 옛 온라인 게임 시절 선후배 대여섯 명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음료와 식사를 곁들이며 그간의 안부와 해묵은 추억담을 나누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라도 경조사라는 핑계가 있어야 가끔씩 옛 동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결혼식 피로연이나 장례식장 같은 자리가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청첩장이나 부고장이 오면 대개 10만 원 안팎의 부의금이나 축의금을 보낸다.

기쁜 일에는 축하를, 슬픈 일에는 위로를 나누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품앗이 문화다.

이제는 경조사가 가끔씩 찾아오니 경제적으로도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아,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은퇴 후 쉬면서 어느덧 칠십 고개를 맞이하고 있다. 이번 주말을 보내며 절실히 실감한 것은, 인생의 후반기일수록 항상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즐겁게 살아야만 몸도 아프지 않고 치매도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도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엊그제 지나간 일도 가끔 기억이 나지 않고,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의 이름조차 자주 가물가물하다며 서로 헛허하게 웃었다.

자연스러운 세월의 훈장일 게다.


​칠십의 나이가 되면 이제 새로운 사업을 벌이거나 거창한 아이템을 찾을 때는 아니다.

그저 그동안 성실하게 벌어놓은 자산을 잘 지켜가면서, 자신을 위해 조금씩 쓰고 베풀며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것이 가장 건강하고 현명한 삶이 아닐까 싶다.


​지하철을 타고 오가며 창밖을 보니 경기가 참 어렵다는 게 피부로 와닿는다.

거리마다 비어 있는 상점과 점포, 사무실 창문에 붙은 '임대 문의' 안내문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이런 불황의 시기에는 함부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가는 더 큰 어려움을 겪고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길을 걸으며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은퇴 후, 내 손으로 직접 청구서를 받아 드는 경제 활동은 줄었을지언정, 부지런히 걷고 또 걸으며 건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테크이자 돈을 버는 길이다. 주말 내내 슬픔을 위로하고 기쁨을 축하하는 자리를 다녀오며,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 깊은 지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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