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 규현이!

by자봉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멈추는 법이 없고, 우리네 인생 또한 그 물결을 따라 정신없이 앞만 보며 흘러간다.


어느덧 내 나이도 일흔이 되어 인생의 황혼 녘에 다다르고 보니, 지나온 날들이 마치 한 편의 짧은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가 많다.


문득 집안을 정리하다가 오랜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빛바랜 사진첩 하나를 발견했다.

조심스레 바카라장을 넘기다 보니, 유독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내 손길이 멈추고 말았다.


이제는 사방의 모서리가 닳고 색이 바랜 오랜 사진 한 장이었다.

사진 속에는 아직 세상의 거친 풍파를 알지 못하던, 푸르디푸른 두 청년이 나란히 서 있었다. 검은 티셔츠를 입고 풋풋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청년, 바로 내 고종사촌 동생 염규현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하얀 셔츠를 입고 멋쩍은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젊은 날의 내가 있었다.


사진 속 동생은 수줍은 듯 내 어깨에 슬그머니 손을 올리고 있고, 나는 그런 동생이 대견하다는 듯 든든하게 곁을 지키고 서 있다.

이 사진을 찍었던 날이 언제였던가. 기억의 실타래를 더듬어 올라가 보니, 우리가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20대 중반의 어느 봄날이었다.

서로가 청춘의 초입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으로 가득했던 시절,


나는 유독 나를 잘 따르던 동생 규현이를 데리고 서울 남산공원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그것이 동생과 내가 이 세상에서 함께 호흡하며 남긴 '유일한 한 장의 추억'이 될 줄은, 그 시절의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 기억 속의 규현이는 언제나 나를 우러러보며 따르던 착하고 선한 아우였다.

일가친척이 모이는 날이면 동생은 언제나 내 주변을 맴돌았고, "형, 형" 하며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녀석의 눈망울은 언제나 맑았고, 형인 내가 무엇을 하든 늘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던 든든한 아군이기도 했다.

그날의 남산공원은 참으로 푸르렀다. 서울의 중심에 우뚝 솟은 남산에 올라 내려다본 세상은 넓고도 아득했고, 불어오는 바람은 우리의 청춘만큼이나 신선했다.


돈이 넉넉지 않던 시절이라 거창한 구경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사 먹지는 못했어도, 사촌 형과 함께 서울나들이를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동생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했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멋쩍게 포즈를 취했던 그 순간, 셔터 소리와 함께 우리의 청춘은 이 한 장의 사진 한 장 속에 영원히 박제되었다.

그 후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쁘게 살아갔다.


나 역시 공직에 몸을 담고 수십 년간 앞만 보며 달렸고, 동생 또한 자신의 삶을 일구기 위해 치열한 세월을 보냈다. "언제 한번 부산 내려가면 소주나 한잔하자", "서울 올라오면 형한테 꼭 연락해라" 하며 무심히 던졌던 약속들은 바쁜 일상에 치여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을 줄 알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할 줄만 알았다.


내 고향은 남쪽지방 장흥의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성년이 되고 슬롯생활을 하면서 내 기억의 소중한 한 조각은 늘 동생이 살던 부산 동래구 연산동에 머물러 있었다.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마주했던 연산동의 정겨운 골목길, 그곳에서 동생과 나누었던 소소한 대화들과 따뜻한 정은 내 객지 생활의 커다란 위안이었다. 동생 규현이는 연산동의 그 좁은 골목길처럼 다정하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나무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세월은 무정했고, 하늘은 야속했다.

아직 피워내야 할 꿈이 많고, 누려야 할 날들이 많이 남은 그 젊은 나이에 동생은 서둘러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이 되어버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내 가슴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붙잡을 수도, 대신 아파해 줄 수도 없었던 그 무력함 속에서, 나는 동생의 이름을 몇 번이고 소리쳐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규현이가 떠난 후, 부산 연산동은 내게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아픈 손가락 같은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그곳에 가도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형, 오셨습니까" 하고 뛰어내려 올 동생이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시리게 파고든다. 조금 더 자주 만날 걸,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더 사줄 걸, 형으로서 더 많이 안아줄 걸 하는 뒤늦은 후회만이 가슴에 문신처럼 남는다


다시 눈을 돌려 사진 속의

규현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사진 속에서 녀석은 여전히 이십 대 초반의 싱그러운 청년으로 머물러 있다. 나는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는 세월의 주름이 깊게 파인 시니어가 되었는데, 먼저 떠난 동생은 세월의 때를 전혀 묻히지 않은 채 그날의 남산공원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동생은 내게 가장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선물하기 위해, 이 사진 한 장을 남겨두고 서둘러 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유일한 한 장의 사진이 없었더라면,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서 동생의 얼굴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었을까. 사진을 어루만지는 내 손끝에서 그때 남산공원의 푸른 바람과, 녀석의 따뜻한 체온이 다시금 살아나는 듯하다.


사랑하는 동생 규현아.

비록 너는 먼저 흙으로 돌아가 고인이 되었고, 나는 아직 이 지상에 남아 네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내 마음속에서 너는 단 한순간도 지워진 적이 없다. 네가 살던 부산 연산동의 바람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함께 걸었던 서울 남산공원의 나무들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너와 함께 걷고 있다.

나 역시 언젠가 이 무거운 삶의 짐을 다 벗어던지고 하늘 바다를 건너는 날이 오겠지. 그때 그곳에서 너를 다시 만나면, 이번에는 헤어짐 없이 네 어깨를 꽉 안아주며 말하고 싶구나.

"규현아, 그동안 형 기다리느라 고생 많았다.


우리 오랜만에 남산공원 그때처럼 한번 걸어보자꾸나."

뒤늦게 찾아온 그리움의 크기만큼, 오늘 밤은 서랍 속 단 한 장의 사진이 유난히도 따뜻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네가 있는 그곳은 부디 아픔도 슬픔도 없는 평안한 낙원이기를, 이 못난 형이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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