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부부는 서로 협력자

by자봉

1988년, 설레는 마음으로 가정을 일구었다

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간다

강산이 네 번 변한다는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함께 통과해 이제 노년이라는 고요한 항구에 도착했다.


우리네 인생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엊그제 같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던 단독주택 반 지하 작은 방 2개짜리의 좁은 전셋집에서

은행에서 200만 원을 대출받아 650만 원에 전세방을 구해 신혼생활은 시작되었고

9급 행정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온라인 게임생활에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고단함을 씻어주던 아내의 위로

의 말들 ,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려왔던 치열했던 중년의 나날들... 그 모든 소란이 지나간 뒤, 이제 얼굴에는

주름살과 흰머리만 가득한 70대가 되어간다.

아내는 예부터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성씨를 가졌다.

젊어서는 그 고집 때문에 부부싸움도 많이 하고 서운한 감정도 많았다


이제. 온라인 게임에서 은퇴한 지도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은퇴 이후에도 자원봉사와 단순한 계약직으로 소소한

일들을 5~6년 동안 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70세가 되다 보니 아내는 나이가 들어 호르몬이 변화되었는지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면서,

여전히 나를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여기며 하나하나 간섭하고 바꾸려 든다.

식사 메뉴부터 옷차림, 심지어는 나의 사소한 습관까지 본인의 틀에 맞추려 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때로는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좀 인정해 주면 될까?"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습관은 싑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노년의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것은, 그 답답함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정적만 흐르는 집안에서 누군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나의 안위를 걱정하며 곁에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내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이제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자신의 세월을 읽어내는 거울이 되었다



노년의 부부가 '잘 산다'는 것은 젊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젊었을 때는 성취와 확장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비워냄과 받아들임이 목표다.

그 시작은 바로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 않는 마음이다. 젊은 시절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고치려 들었던가!. 말버릇, 생활습관, 사고방식까지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으며 끊임없이 상대를 설득하고 때로는 강요했다


그러나 40년을 살아보니 깨닫게 되는 진리가 있다. 사람은 결코 타인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흔을 앞둔 나이에 누군가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헛된 몸짓에 가깝다.

'이 사람은 평생 이 모습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이 모습으로 생을 마칠 것이다'라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온다.

이때 필요한 것은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수용이다.


아내가 고집을 피울 때, 혹은 나를 바꾸려 들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다짐은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저럴까?"라고 의문을 품으면 화가 나지만, "아내는 저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마침표를 찍으면 아량이 생긴다.

고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길 줄 아는 여유가 노년 부부의 거실에 평화를 가져다준다.

수용은 포기가 아니라, 상대를 향한 가장 깊은 형태의 사랑이다.



부부라고 해서 모든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강박은 노년의 삶을 질식하게 만든다.

오히려 노년일수록 '따로 또 같이'의 미학이 절실하다.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숨소리만 듣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고역이 될 수 있다.

각자만의 세계가 있을 때, 함께하는 시간이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서로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는 거리, 나는 그것을 '존중의 간격'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서재에서 바카라을 읽거나 글을 쓰고, 아내는 거실에서 자신의 취미를 즐기는 시간. 비록 대화는 없어도 서로의 존재감을 공기처럼 느끼는 그 적당한 거리가 우리를 화평하게 만든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를 찌르게 되고, 너무 멀면 온기를 잃게 된다.


아내가 나를 자신의 일부처럼 통제하려 할 때 느끼는 답답함은 바로 이 거리가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의 사랑은 때로 너무 뜨거워 나를 데게 하지만, 그 온기를 완전히 잃는 것 또한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끔은 혼자만의 산바카라을 즐기고, 가끔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나의 세계를 지키는 것, 그것이 결국 부부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비결이다


노년 부부의 대화는 내용보다 결이 중요한 것 같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았으니 웬만한 이야기는 이미 수만 번도 더 나누었다

이제 와서 대단한 정보나 논리가 오갈 필요는 없다. 다만 대화의 '온도'가 차갑지 않아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점점 우리에게 불친절해진다 젊은이들의 빠른 걸음걸이, 복잡해지는 기계들, 소외되는 슬롯적 분위기 속에서 집은 유일한 온실이어야 한다


밖에서 다친 마음을 집에서까지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도 못 하느냐?"라는 핀잔 대신 "괜찮아, 천천히 해"라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아내가 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간섭을 할 때도, 나는 그 말의 가시보다 그 밑에 깔린 아내의 피로와 불안을 먼저 보려 노력한다.

피곤한 날에는 정답을 알려주는 해결바카라보다 그저 고개를 끄덕여주는 공감이 먼저다.


말 한마디의 온도를 1도만 높여도 집안의 공기가 바뀐다. "당신 오늘 수고했어", "이게 맛있네" 같은 사소한 칭찬과 긍정의 말들이 쌓여 부부의 노후를 따뜻하게 데운다. 우리는 이제 논쟁에서 이기는 법이 아니라, 져주면서도 함께 웃는 법을 배워야 하는 나이다. 온기 있는 말 한마디는 노년의 쓸쓸함을 녹이는 가장 강력한 난로다.


우리는 서로의 늙음을 존중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몸이 예전 같지 않고, 기억은 흐릿해지며, 성격은 더 고집스러워지기도 한다. 이것은 인격의 결함이 아니라 세월이 가져다준 자연스러운 변화다.

그 변화 앞에서 실망하거나 짜증을 내기보다는 "그래도 여기까지 무사히 함께 왔구나" 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마음이 중요하다


늙는다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사계절이 변하듯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단풍이 드는 나무를 탓하지 않듯, 주름진 서로의 얼굴을 안쓰러워하기보다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그 주름 하나하나에는 우리가 함께 헤쳐온 삶의 굴곡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동반자의 쇠약해진 체력을 배려하고, 반복되는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의 마지막 형태인 '예의'이다.


잘 사는 노년 부부는 화려한 이벤트를 꿈꾸지 않는다. 대신 사소한 일상의 배려를 놓치지도 않는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끓여주는 커피 한 잔, 병원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함께 걷는 길, 잠든 배우자의 어깨에 조용히 덮어주는 담요 한 장. 이런 사소한 친절들이 모여 '이 사람과 함께 늙어서 다행이다'라는 확신을 만든다. 거창한 사랑 고백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일상의 성실함이다.


결국 늙어서 부부가 잘 산다는 것은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덜 미워하는 법을 익히는 과정이다. 완벽한 배우자를 기대하기보다 부족한 점을 덮어줄 줄 아는 아량을 키우는 일이다.

인생의 마지막 구간에서 서로에게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의자가 되어주는 존재.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노년의 모습이다.


아내가 나를 본인의 일부로 바꾸려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아내만의 서툰 갈망일지 모른다. 비록 그 방식이 나를 답답하게 할지라도, 그 밑바닥에는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정'과 '사랑'이 있음을 나는 안다.

나 또한 아내의 고집을 탓하기보다 그 고집조차 아내라는 사람의 본질임을 인정하며, 그 곁을 묵묵히 지키려 한다


큰 욕심을 내려놓고 작은 고마움을 자주 떠올리는 삶. 거창한 무언가가 없어도 아내와 나란히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서로에게 짐이 아닌 의자가 되어주고, 말없이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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