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물길을 걷는 사색의 여정

by자봉

돌이켜보면 지난해 오월과 유월의 경계는 유난히도 붉고 찬란한 기억으로 점철되어 있다.

내 마음의 서랍 속에서 작년 이맘때의 풍경을 꺼내어 보면 온통 장미꽃의 화려한 향연이 가득하다.


인천 계양구 계양산 계양공원을 거닐며 흐드러지게 피어난 장미의 도도한 자태에 넋을 잃기도 했고, 부천 도당동에 자리한 백만 송이 장미원은 이름 그 자체로 거대한 화산이 대지 위로 붉은 용암을 뿜어내듯 강렬한 불꽃을 피워내던 장관을 선사했었다.


그것도 모자라 과천 서울대공원의 장미원까지 발걸음을 재촉하여 초여름의 싱그러운 햇살 아래서 수만 송이 장미들이 연주하는 대합창을 만끽하곤 했다. 꽃을 찾아 떠나는 길은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메마르고 팍팍한 일상에 촉촉한 감성의 단비를 내리는 나만의 신성한 의식과도 같았다.


그러나 금년에는 무슨 바람이 이리도 분주하게 불어닥쳤는지 마음의 여유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유난히 빠르게 회전하는 시간의 톱니바퀴 속에서, 가까운 이웃집 담벼락에 흐드러진 꽃 한 송이조차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나날이 이어졌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는 규모가 작아, 울타리 가에 그저 계절의 구색만 겨우 맞춘 듯 장미 몇 그루가 외롭게 심어져 있을 뿐이다.

오고 가는 길에 스치듯 바라보는 그 작은 꽃송이들로는 지난해 보았던 그 압도적인 장미의 바다가 주는 감동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마음에 갈증이 일었다.

온 세상을 붉은 순정으로 물들이는 계절의 여왕을 이대로 아무런 기억 없이 보내기에는 못내 아쉬움과 허전함이 크게 남았다.


오늘 오후, 나는 마침내 머릿속을 무겁게 짓누르던 번잡한 생각의 타래들을 과감히 털어내고 집을

나서기로 작정했다.

비록 깊은 산야에서 스스로 피어난 야생화는 아닐지라도, 인간의 지극한 정성과 지방자치단체의 눈부신 노력으로 인공적으로 풍성하게 가꾸어 놓았다는 안양천의 장미 소식이 문득 귓가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목말랐던 유월의 푸른 숨결과 장미의 붉은 향기를 마음껏 들이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와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지하철 양평역에 도착해 자전거를 안전하게 세워두고, 본격적으로 안양천의 물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안양천을 따라 걷다가 도림천역을 거쳐 신도림역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서두를 것 없이, 그저 유유히 흐르는 하천의 물길처럼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며 깊은 상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양평역에서 계단을 올라 안양천 둑길로 올라서자마자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싱그러운 강바람이 뺨을

시원하게 스쳤다.

눈앞에 펼쳐진 수변 풍경은 경탄을 자아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길게 이어진 제방을 따라 붉고 노란 장미들이 끝도 없이 도열하여 지나는 보행자를 반기고 있었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시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서로 조금도 뒤처지지 않으려는 듯, 경쟁적으로 환경 조성에 힘을 쏟는 모양이다. 발걸음이 편안한 황톳길을 정성스럽게 깔아놓는가 하면, 수변을

따라 아름다운 장미원을 조성하고, 보행자들이 다치지 않고 오롯이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부드러운

산바카라로와 데크를 다듬어 놓았다.


이러한 풍경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삼십 년 전의 서울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이 푸르고 맑은 쉼터가 얼마나 기적 같은 변화인지 온몸으로 실감할 것이다.

삼십 년 전만 하더라도 안양천은 지금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인,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거친 공간

이었다.


여름철 집중호우가 내리기라도 하면 둑이 범람할까 주민들이 밤잠을 설치며 가슴을 졸여야

했고, 인근의 수많은 공장과 주택가에서 무분별하게 흘러나오는 오수와 폐수로 인해 시커멓게 죽어

가는 거대한 하수구나 다름없었다.

그 근처를 지나갈 때면 코를 찔러오는 더럽고 역한 냄새 때문에 모두가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멀리하고 싶은 불모의 땅 같았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사람들의 가치관은 변화했다.

각 구청과 자치단체들이 사시사철 쉬지 않고 하천의 바닥을 긁어내고 수질을 개선하며, 둔치마다 거대한 꽃단지를 정성껏 조성하기 시작했다. 냄새나던 고인 물은 어느덧 맑게 흐르는 생명의 물줄기가 되었고, 버려졌던 둑길은 시민들이 사계절 찾아와 힐링을 하고 삶의 피로를 씻어내는 최고의 명소로 거듭났다.

이 얼마나 고맙고도 경이로운 변화인가.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그늘 밑으로, 발바닥에 닿는 폭신한 데크의 촉감을

음미하며 한참을 걸었다.


붉은 장미의 화려한 호위를 받으며 걷다 보니 어느덧 도림천역 인근에 다다랐다.

문득 행정구역의 경계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걸어온 안양천의 한쪽은 영등포구에 속해 있고, 발을 디딘 도림천 주변은 구로구에 속한다. 과거 공직에 몸담았던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지자체의 행정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예전에는 영등포구가 워낙 넓고 전통적인 중심지라 안양천 정비도 영등포구 구역만 유독 잘해놓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 발로 걸어서 경계를 넘

어가 보니 나의 오랜 오해는 여지없이 깨어졌다. 구로구 소재지에 위치한 도림천 변, 그리고 신도림

역으로 이어지는 길목 역시 영등포구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세심하고 깔끔하게 잘 조성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림천 변의 수려한 풍경을 한눈에 바라보며 나는 묘한 감회에 젖어들었다. '

구로구' 혹은 '구로동'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내 세대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잿빛 매연과 거대한 기계 소리가 가득했던 옛 '구로공단'의 흑백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대한민국 수출의 주역이자 한강의 기적을 밑바닥에서부터 일궈낸 어머니 같은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높은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와 탁한 공기,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과 애환이 서려 있던 서글픈 공업 지역이라는 인상이 뇌리에 문신처럼 깊게 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 무겁고 어두웠던 공장 지대의 기억을 머

리에이고 오늘 이곳에 와보니, 맑은 물이 쉴 새 없이 흐르고 푸른 나무와 화사한 꽃들이 가득한 청정

휴식 공간으로 완벽하게 변모해 있는 것이 아닌가. 실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네 글자 외에는 이

경이로운 변화를 설명할 길이 없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벅찬 감동과 감개무량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걷기 운동 애플리

케이션의 만보기 기능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화면 속의 숫자가 어느덧 만 보를 훌륭하게 넘어서

는 순간, 기분 좋은 성취감과 함께 화면 위로 축하의 선을 긋듯 목표 달성을 향해 나아가는 그래픽이

경쾌하게 지나갔다.


산바카라로 주변에는 시민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야외 운동 기구들도 녹슨 곳 하나 없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허리 돌리기 기구에 올라 가볍게 몸을 풀고 있자니, 저만치서 나란히 운동을 하던 한 남성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혼자만의 사색에 잠겨 고독하게 걷던 길에 마주한 뜻밖의 말동무는 산바카라이 주는 또 다른

인생의 묘미였다.



그분은 이곳 대림동이 고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선대 어르신, 즉 그의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여 수십 년 동안 이 일대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뿌리를 내리고 살았다고 했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면

서 잠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살기도 했었지만, 최근에 정년퇴직을 맞이하고 오랜만에

다시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와 보았노라고 감격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주변의 푸른 풍경을 둘러보며 나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어릴 적 기억하던 탁하고 시끄럽던 동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렇게 천지가 개벽하듯 아름답게 변한 고향을 보니 정말 가슴이 벅찹니다. 이래서 다들

서울, 서울 하는 모양입니다.


서울은 역시 서울이네요." 세월의 뒤안길에서 완전히 새 옷을 입은 고향을 바라보는 그의 맑은 눈빛에는 짙은 자부심과 형언할 수 없는 감회가 서려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연배도 비슷하고 서로 통하는 구석이 참 많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정자

그늘에 앉아 서로의 명함을 교환했다.

명함을 자세히 보니 그는 이름만 대면 삼척동자도 알 만한 대기업인 대한항공의 자회사에서 평생을 근무하다가 얼마 전 명예롭게 퇴직한 인텔리였다. 나이는 예순세 살로, 나보다 적은 싹싹한 동생 뻘이었다.

푸른 안양천을 배경으로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길 위의 인연이었지만, 살아온 궤적과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

니 대화는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졌으며 배울 점도 참 많았다.

서로의 지나온 세월을 위로하고 감상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유월의 따스한 햇살마저 우리들의 대화를 축복하는 듯 부드럽게 내리쬐었다.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내가 올해로 나이가 일흔(70세)이 되었다고 넌지시 밝히자, 그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진심으로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그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대체 평소에

건강 관리를 어떻게 하셨기에 이토록 젊은 기백과 활력이 넘치냐고 과찬을 쏟아냈다. 솔직히 고백하

자면 나 역시 비껴갈 수 없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 희끗희끗하게 세어버린 흰머리도 많고, 정수리 부

분의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일종의 부분 가발을 쓰고 다니는 처지다.


나 스스로 내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조금은 겸언쩍은 마음이 들어 가발을 썼노라고 솔직하게 자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손사래를 세차게 치며, 가발 여부를 떠나 전체적인 안색이나 꼿꼿한 허리 자세, 힘찬 걸음걸이가 자기 또래나 혹은 그보다 훨씬 젊은 장년처럼 보인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주었다.

인사치레의 빈말일지도 모르고 다소 과한 칭찬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에게서 "여전히 젊고 건강해

보인다"는 말을 듣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언제나 기분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


내가 매일같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만 보 이상을 꾸준히 걸었던 성실한 노력이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안양천의 맑고 푸른 기운이 나를 젊게 정화해 준 것일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분과의 짧고

도 깊은 만남 덕분에 초여름의 오후가 한층 더 유쾌하고 풍성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마음속에 붉은 장미보다 더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듯, 정겨운 기분으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분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다시 홀로 안양천 둑길을 걸으며 시선을 강 건너편으로 길게 돌려써

다. 강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곳은 양천구 목동 단지다. 저곳을 멍하니 바라보니 또다시 아련한 세

월의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올랐다. 수십 년 전, 나는 저 목동에서 무려 십이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정을 일구고 둥지를 틀고 살았었다. 내 청춘의 치열했던 한 자락과 사랑하는 자식들

의 성장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내 인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제2의 고향 같은 소중한 곳이다.

비록 지금은 강을 건너 마포의 한적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십여 년 전에도 이 안양천을 수없이

걸으며 새벽 기도를 하듯 운동을 하고, 밤바람을 맞으며 하루의 피로를 달랬기에 이곳은 올 때마다

마치 내 집 앞마당처럼 편안하고 친숙한 정감이 샘솟는다. 땅은 사람의 기억을 고스란히 저장하고,

사람은 그 땅에 새겨진 자신의 옛 발자국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존재인가 보다.

안양천 둑길이 가진 가장 큰 축복은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울창한 벚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천연 터

벌에 있다. 지난봄날에는 하얀 꽃비가 눈부시게 내리던 그 길에, 이제는 푸르른 잎사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초록색만 보게 되면

기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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