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풀어보다
사상 초유의 블랙 먼데이라는 주식 시장의 거대한 폭락장 속에서 연일 붉게 타오르던 지수가 순식간에 깨어지고 몇 천만 원이라는 허탈한 마이너스 손해의 숫자가 눈앞에 범람하여 가슴속이 온통 심란하다
씁쓸한 한숨으로 가득 차 오르던 오늘,
마침 치열했던 선거라는 큰 격전을 치러내고 남은 후유증과 일상의 무거운 압박감에 시달리며 하루의 짧은 휴가를 낸 옛 온라인 게임 후배의 지친 어깨가 눈에 밟혀, 나는 조그만 배낭 속에 잘 삶아진 계란 몇 개와 생수 한 병만을 소박하게 챙겨 넣은 채 그와 함께 공항철도에 몸을 싣고 푸른 산과 끝없는 바다를 가장 빠르게 품어 안을 수 있는 서해의 품으로 향했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하여 다시 시내버스 111번으로 갈아타고 마침내 당도한 을왕리 해수욕장은 마침 밀려든 만조의 바닷물이 백사장의 턱밑인 해변 모래까지 찰랑거리며 가득 차올라 푸른 대양의 생명력을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때마침 이른 더위를 피해 저 멀리 유럽 등 에서 찾아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외국인들이 시원한 바닷물 속에 발을 담근 채 잔잔한 파도를 배경으로 연신 웃음꽃을 피우며 저마다의 추억을 사진 속에 담아내는 활기찬 풍경을 바라본다
오랜만에 옛 온라인 게임 후배와 함께 을왕리의 해안 둘레길과 선녀바위의 거친 바위틈 사이를 다정하게 오가며 가슴속 깊이 맺혀 있던 스트레스의 찌꺼기들을 시원한 바다 바람에 조금씩 날려 보내고, 바다 내음 가득한 칼국수 한 그릇으로 소박하게 점심을 해결한 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손에 쥐고 카페 창가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멍하니 응원하며 바라본다
어느덧 오후 4시를 훌쩍 넘겨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마주한 탁 트인 바다의 해방감과 위로가 너무도 달콤하여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차라리 조금 더 머물며 저녁의 붉은 낙조와 어둠 속에 일렁일 을왕리의 아름다운 야경까지 가슴에 다 담아 가고 싶은 미련이 세차게 밀려왔으나, 역시 내게는 온기가 기다리는 소중한 가정이 있기에 당연히 돌아가야 한다는 바카라임감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 올 실었다,
버스 기사에게 슬쩍 건넨 시내버스 막차 시간에 대한 질문에 밤 10시 반까지는 거뜬히 운행한다는 다정한 대답을 들으며 내가 받은 삶의 무게만큼이나 여전히 퇴직하지 못하고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며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있는 후배가 오늘 나와의 이 짧은 동행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고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공항철도의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 나의 뇌리에는 젊은 시절 문명의 냉난방이 가득한 빌딩 숲 속에서 치열하게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던 중에 위로를 얻고자 무작정 찾았던 이 을왕리의 빛바랜 기억들과,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며 슬롯복지학을 공부하던 만학도 시절에 동기들과 다 함께 MT를 와서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해변 위를 거침없이 달리고 뒹굴며 온몸으로 팀워크를 다지고 서로를 얼싸안았던 20년 전 그 뜨거웠던 청춘의 추억들이 파도처럼 세차게 쏟아져 나왔다
비록 주식은 폭락하고 기분은 언짢은 하루의 시작이었을지라도 나이 일흔이 된 지금까지도 또 다른 일의 굴레에 얽매여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나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며 이제는 그동안 삶의 무게에 치여 차마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자유롭게 펼쳐 보이고, 지나온 70년의 위대한 발자국과 인생을 경건하게 정리하면서 내 영혼이 담긴 바카라을 쓰고 따뜻한 수필을 지으며 남은 생의 여정을 온전히 즐겁고 아름답게 누리리라 다짐해 본다,
저 무겁고 붉은 주식의 낙조를 넘어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황혼의 글방으로 향하는 위대한 위로의 여정이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