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정남진 장흥

그리운 고향

by자봉

​우주의 모든 생명은 저마다 돌아갈 북극성을 품고 산다.

밤하늘의 나침반이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를 인도하듯, 칠십 평생을 거쳐 온 내 삶의 궤적 끝에는 언제나 정남(正南)을 가리키는 푸르고 단단한 화살표 하나가 박혀 있었다.

서울 광화문의 번잡한 도로 한복판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일직선의 선을 내리긋는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도심의 빌딩 숲을 지나고, 추풍령의 험준한 산맥을 넘고, 호남의 드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마침내 당도하는 곳.

그곳은 이름 그대로 ‘길게 흥할 땅’, 나의 영원한 자부심이자 영혼의 안식처인 전남 장흥 이다.


​장흥은 단순히 행정구역상의 지명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문학의 숲이자, 불의에 항거한 뜨거운 피의 역사이며, 어머니의 비단 치맛자락처럼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탐진강의 일급수 물줄기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 수많은 길을 걷고, 공직의 무거운 의무를 내려놓은 지금에 이르러서도, 내 고향의 흙내음은 여전히 혈관을 도는 피처럼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고향이 왜 그토록 가슴을 뛰게 만드느냐고?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나는 언제나 장흥의 초입, 나의 뿌리가 태동한 곳이자 새벽안개가 가장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고향 장동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곤 한다.

장동은 장흥의 동쪽 문을 여는 열쇠이자, 문림의향이라는 거대한 서사시의 첫 구절을 장식하는 비밀스러운 정원과도 같은 곳이다.



​장흥의 수많은 비경 중에서도 장동면 장흥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늑한 마을을 만나게 된다.

몇 가구 되지 않는 호젓하고 아담한 마을,

그러나 그 속에 품은 역사의 무게만큼은 천근만근에 달하는 곳, 바로 내가 태어나 자란 장동면 상방이 마을이다.


상​방이마을의 새벽은 유독 푸르고 시리다.

어린 시절,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하던 것은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마을 전체를 신비롭게 감싸 안던 하얀 새벽안개였다.

그 안개는 마치 조상들의 묵향이 지상으로 내려와 부리는 마법 같았다.

이곳 장동면은 우리 경주 이 씨 조상들의 뼈와 살이 묻힌 곳이요, 가문의 영광과 기개가 굳건히 내려앉은 터전이다.

빛바랜 가첩 속의 한자를 한 자 한 자 풀어낼 때마다, 장동의 흙 속에 묻혀 있던 조상들의 숨결이 생생한 목소리가 되어 귓가를 울린다. 나라의 법도를 세우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올곧게 살아가셨던 선조들의 삶은, 장흥 장동 상방이 마을의 푸른 대나무처럼 곧고 푸르렀다.


상​방이마을의 밭이랑, 논둑 하나에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사연들이 깃들어 있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 옥토로 만들었던 조상들의 피땀은 지금도 가을이면 황금빛 들판으로 피어나고, 가뭄 속에서도 마르지 않던 동네 우물물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문의 지혜처럼 맑고 깊었다. 내 나이 일흔이 되어 삶의 가을에 접어들었음에도, 장동면 상방이 마을에서 보낸 유년의 기억은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가구 수는 적어도 정은 차고 넘쳤던 그 작은 마을이, 온 우주보다 더 크고 따뜻한 공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은어가 서식하는 1급수 탐진강)


​ ᆢ 문림의 향기 ᆢ

글자마다 피어나는 묵향의 숲

​“장흥에 가서는 글 자랑을 하지 말라.”


​이 오래된 격언은 장흥 사람들의 뼛 속에 새겨진 문화적 자긍심의 상징이다. 장흥은 발길 닿는 곳마다 문학의 향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고장이다. 전국 최초로 ‘문학관광기행특구’로 지정된 이 땅은, 단순히 소설가 몇 명을 배출한 것에 그치지 않고 산천초목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이자 서사시를 이루고 있다.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이청준의 날카롭고도 깊은 시선,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던 한승원

은사님의 바다를 닮은 푸르고 거친 생명력,

송기숙 작가님의 시대의 아픔을 꿰뚫는 묵직한 필치는 모두 장흥의 흙과 물을 먹고 자란 것들이다.

그들의 소설 속을 흐르는 탐진강의 물소리와 득량만의 파도 소리는 바로 내가 어린 시절 듣고 자란 그 소리였다.

문학이란 결국 인간의 삶을 위로하고 영혼을 치유하는 작업이 아니던가. 장흥의 문학이 유독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과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는 것은, 장흥의 자연이 인간을 품어주는 방식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림의 기질은 나에게도 지울 수 없는 유전자로 각인되었다.

바쁜 온라인 게임 생활 속에서도, 그리고 은퇴 후 행정사로서 타인의 권익을 지키는 치열한 삶 속에서도, 나는 언제나 붓을 들고 글을 쓰는 ‘수필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매일 아침 도서관을 찾아 좋은 문장을 필사하고, 내 삶의 조각들을 모아 수필을 써 내려가는 시간은 장흥의 문학적 토양이 내게 준 가장 큰 축복이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 역시 장동면 상방이 마을의 새벽안갯속에서 붓을 들던 내 조부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장흥의 글은 화려한 수식어에 갇히지 않고, 인간의 뼈와 살,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담아내기에 그토록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내고향 ​장흥을 향해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이 고장이 품은 서슬 퍼런 ‘의리와 ‘기개’ 때문이다. 장흥은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붓을 던지고 칼을 들어 불의에 맞섰던 의병의 고장, 즉 의향이다.


​그 뜨거운 역사의 정점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대전적지인 ‘석대들 전투’다. 1894년 겨울,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던 장흥의 석대들 벌판은 탐관오리의 가혹한 수탈에 맞서고 나라의 자주독립을 외치던 농민군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무기도 보잘것없고 훈련도 받지 못한 평범한 농민들이었지만, 그들의 가슴속에는 장흥 특유의 대쪽 같은 의리와 기개가 붉은 피처럼 끓고 있었다. 일본군의 신식 무기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스러져간 그 수많은 무명의 영웅들이 흘린 피는 장흥의 대지를 적셨고, 그들의 숭고한 넋은 오늘날 장흥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장동면의 산골짜기마다 울려 퍼지던 그날의 함성은 세대를 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의를 중시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장흥 사람들의 기질은 나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공직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시하며 35년의 세월을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 그리고 지금도 행정사로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돕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뚝심은 모두 석대들에 흐르는 그 의로운 피의 유산이다. 장흥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관광지가 아니라, 정의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증명해 낸 위대한 기개의 고장이다.

(고향 친구의 농장과 까폐)


​장흥의 자연은 신이 정성스럽게 빚어놓은 한 폭의 거대한 진경산수화다.

그 그림의 중심에는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천관산이 우뚝 솟아 있다.

가을날의 천관산은 천상의 정원이다.

온갖 기묘한 형상으로 솟아오른 기암괴석들은 마치 보석으로 장식된 천자의 면류관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정상 부근의 수만 평 억새밭은 가을바람이 불 때마다 은빛의 거대한 바다를 이루며 춤을 춘다. 그 바위 위에 서서 남해바다의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의 번뇌는 한 조각 먼지처럼 사라지고 대자연의 장엄함에 숙연해질 뿐이다.


​산이 장흥의 골격을 이룬다면, 탐진강은 장흥의 혈맥이자 젖줄이다. 영암의 궁성산에서 발원하여 장흥의 심장을 관통하는 탐진강은, 지금도 전국에서 손꼽히는 일급수의 맑고 투명함을 유지하고 있다. 은어들이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강물을 거슬러 오르고, 강변의 억새와 버드나무가 물거울에 자신을 비추는 풍경은 장흥 서정의 극치다. 해마다 여름이면 이 탐진강을 무대로 ‘정남진 장흥 물축제’가 열려 전국의 수많은 이들에게 시원한 치유의 공간을 제공한다. 물을 만지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탐진강이 수천 년 동안 이어온 생명의 노래이기도 하다.


​여기에 봄이면 연분홍빛 철쭉으로 온 산을 불태우는 제암산의 다정함이 더해진다. 제암산은 마치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닮았다. 정상의 임금바위를 향해 뻗어 나간 능선마다 가득 피어난 철쭉꽃 길을 걷다 보면, 고향의 산천이 나를 향해 “애썼다, 참 잘 살아왔다”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듯한 깊은 위로를 받게 된다. 산과 강, 그리고 바다가 이토록 조화롭게 어우러진 고장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고향의 자랑거리를 논할 때, 입안 가득 침을 고이게 만드는 풍요로운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장흥의 음식은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

자연이 준 천연의 식재료 그 자체가 가진 깊은 맛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유일의 미식 ‘장흥삼합’이다.


​장흥삼합은 장흥의 산, 들, 바다가 한 접시 위에서 완벽한 통일을 이루는 예술 작품이다. 장흥의 드넓은 청정 들판에서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자란 최고의 한우, 깊은 소나무 숲 속에서 이슬과 햇살을 먹고 자란 향긋한 표고버섯, 그리고 득량만의 깨끗한 갯벌과 바다가 키워낸 싱싱한 키조개 관자. 이 세 가지가 불판 위에서 아우러져 입안으로 들어올 때, 그 부드러움과 쫄깃함, 그리고 깊은 풍미의 조화는 가히 천하일미라 할 만하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장흥의 자연 전체를 한입에 음미하는 것과 같다.


​어디 그뿐이랴.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 득량만 바다에서 건져 올린 초록빛 매생이의 부드러움은 어머니의 사랑처럼 따뜻하고, 갯벌에서 잡아 올린 낙지의 쫄깃함은 기운을 돋우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장흥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장흥의 깨끗한 생명력을 몸속에 채우는 일이며, 그렇기에 장흥 사람들은 유독 건강하고 정이 많으며 삶의 에너지가 넘쳐난다. 고향을 떠나 멀리 있어도, 문득 장흥삼합의 향긋한 표고 냄새가 그리워지는 날이면 내 마음은 이미 고향의 정겨운 식탁 앞으로 달려가 있곤 한다.

(평화 다원)


​세월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 내 인생의 계절도 어느덧 깊은 수확의 계절에 가닿았다. 뒤돌아보면 참으로 치열하고 바쁜 나날들이었다. 공직자로서의 바카라임감, 가장으로서의 무게, 그리고 은퇴 후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던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험난한 세상의 파도 속에서도 내가 중심을 잃지 않고 올곧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장흥 장동면 상방이 마을’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고향 장흥은 나에게 단순한 태생지를 넘어, 삶의 철학이자 영혼의 고결한 등대였다. 문림의향의 자부심은 나로 하여금 언제나 바카라을 가까이하고 아름다운 글을 쓰게 만들었고, 석대들의 기개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직한 삶을 살게 했으며, 탐진강의 맑은 물과 천관산의 억새는 거친 세상에서 다친 마음을 언제나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비록 지금은 몸이 멀리 떠나와 있을지라도, 나의 영혼은 언제나 장동면의 새벽안갯속을 거닐고 있으며, 탐진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내 고향 장흥, 장동 그리고 나의 뿌리 상방이 마을

그 아름답고 위대한 시골 산촌 골짜기의 고장을 향한 나의 사랑과 자부심은 내 숨결이 멎는 그날까지 영원히 지지 않는 철쭉꽃처럼 찬란하게 피어있을 것이다.

나의 고향 장흥이여,

이름 그대로 영원히, 그리고 길게 흥할것이다

(상방이 마을과 장흥읍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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