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그리움
일찍 눈을 뜨는 새벽은 언제나 고요함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바다와 같다.
창밖의 어둠이 채 걷히기 전, 방 안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적막 속에서 나는 홀로 깨어 앉아 지나온 시간들을 가만히 짚어보곤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새벽과 친해지는 일이고, 새벽과 친해진다는 것은 결국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둘씩 수면 위로 길어 올리는 일과 같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할수록 기억의 소리는 선명해지고, 그 적막의 틈새를 타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의 얼굴은 유난히도 먹먹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삶이 있기에 만남이 있고, 만남이 있기에 우리는 인생의 가장 눈부신 기쁨과 사랑을 배운다.
그러나 그 눈부신 축제의 끝에는 필연적으로 이별이라는 무겁고도 거스를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죽음이라는 이별은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이별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삶과 이별, 그리고 죽음이라는 이 세 가지 단어는 결코 제각각 떨어진 섬이 아니다. 그것들은 마치 하나의 굵은 실로 단단하게 엮인 매듭과 같아서, 어느 하나를 떼어놓고서는 인간의 인생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이라는 시간을 낭비하거나 집착하며 살아가지만, 역설적이게도 삶이 그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진짜 이유는 바로 '끝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저 흐르는 강물처럼 끝없이 무한하다면, 오늘 지인과 나누는 따뜻한 눈빛이나 사랑하는 가족에게 건네는 고백은 지금처럼 간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등불의 빛이 선명해지듯, 우리의 삶은 죽음이라는 어둡고 든든한 배경이 뒤를 받치고 있기에 비로소 하루하루의 일상이 선명하게 빛나는 한 폭의 그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이 곁에 있음을 인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밀도를 배우게 된다.
꼭 누군가의 영원한 떠남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는 매 순간 끊임없는 이별을 연습하며 살아간다. 돌아보면 내 안에서도 수많은 이별이 지나갔다. 골목길을 뛰어놀던 어린 시절의 나 고유의 순수함과의 이별, 뜨거웠던 청춘의 계절과의 헤어짐,
그리고 삼십여 년 넘게 정들었던 공직의 공간과 동료들과의 이별까지. 세월의 한 자락이 넘어갈 때마다 우리는 원치 않아도 무언가를 등 뒤로 남겨두어야만 했다.
이별은 당장 우리 마음을 갈가리 찢어지게 아프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 대상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고 소중히 여겼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아픈 증거이기도 하다.
아프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 아픔의 크기가 바로 내가 베푼 정과 사랑의 깊이였음을 이제는 안다.
죽음은 결코 삶의 단절이나 반대말이 아니다.
그것은 밤이 와야 비로소 하루가 온전하게 마무리되듯,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남긴 서사를 가만히 완성하는 숭고한 마침표와 같다. 먼저 떠난 이들이 이 세상에 남겨진 우리에게 몸소 보여준 가장 큰 유산은, 역설적이게도 "그러니 너는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눈부시게 살아라"라는 침묵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이별의 슬픔을 통해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의 깊이를 복기한다. 그렇게 인생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단단한 매듭을 지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내 나이 어느덧 칠순을 헤아리는 길목에 서고 보니, 이 매듭의 무게가 유난히 무겁고 두텁게 다가온다.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든 편하게 수화기를 들고 사소한 일상을 나누던 동료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속내를 꿰뚫어 보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이제는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 고인이 되었다.
손에 꼽을 만큼 가까웠고, 내 삶의 가장 찬란하고 치열했던 페이지들을 함께 채워주었던 이들이다.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역설적으로 내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그리움의 밀도는 더 짙고 묵직해진다. 이제는 살아 있는 이들의 명부보다 먼저 떠난 이들의 이름을 가만히 손꼽아 헤아려 보아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고 야속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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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의 아침 2026.6월)
가장 먼저 마음의 한구석을 아리게 만드는 이들은 학창 시절의 친구들인 운석이와 남일이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향한 두려움과 설렘을 함께 나누었던 친구들, 가깝게 지내면서 수시로 대화하고 작은 일에도 소리 내어 함께 웃었던 그 시절의 동무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철없던 청춘의 나날에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들은 유치했으나 순수했고, 아무런 계산 없이 서로를 대했던 유일한 인연들이었다. 오랜만에 고향 소식을 듣거나 옛 교정을 떠올릴 때면 으레 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곤 한다. 어깨를 툭 치며 "어이, 친구" 하고 불러줄 것만 같은데, 이제는 그 이름을 불러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새벽의 적막뿐이다. 먼저 가 버린 친구들의 빈자리는 내 청춘의 일부가 통째로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커다란 상실감을 남겼다.
그뿐인가. 이십 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 동안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며 치열한 삶의 현장을 함께 지켰던 온라인 게임 동료들의 부재 역시 가슴 아프다.
청춘의 정점을 지나 장년에 이르기까지, 거친 세상의 파도를 함께 맞으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영등포의 왕경호, 주차과 김희상, 이남기,
신길4동 정웅덕 지부장ㆍ운전원이었던 정성진,
단속원 정을준 박병호 님, 건설부서 옆 팀이었던 이술현 팀장, 주택부서 동료 손영문, 배재두 선배ㆍ자치행정 부서의 김종갑ㆍ한상용 팀장ㆍ전민기 님ㆍ등 ㆍ등 이름들도 잘 생각나지 않은 수많은 지인들이 이미 고인이 되어 이승의 짐을 내려놓았다.
한 부서에서 밤을 새워가며 업무를 처리하고, 일이 끝난 후 포장마차에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하던 그 시절의 동지들이다. 눈빛만 보아도 저 사람이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던 이들이었다.
은퇴를 하고 나면 더 자주 만나 늙어가는 처지를 서로 달래자고 약속했건만,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너무나 일찍 저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그들과 함께 만들었던 수많은 서류와 추억들만이 내 빛바랜 기억의 서랍 속에 덩어리 남아 있을 뿐이다.
떠나간 이들만 그리운 것이 아니다.
살아 있으되 더 이상 만나지 못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인연의 단절은 어쩌면 죽음보다 더 잔인한 이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교통 관련부서에서 근무할 당시, 우리는 단순한 온라인 게임 동료를 넘어 형과 아우처럼, 혹은 가장 든든한 친구처럼 지냈었다.
은퇴한 이후에도 그 끈끈한 정을 잊지 못해 자주 만나며 인연을 이어왔던, 지금은 경기 광주에 살고 있는 동조 님이 그렇다. 늘 호탕하게 웃으며 주위 사람들을 챙기던 따뜻한 사람이었는데, 얼마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려 이제는 가깝게 지내던 주변 지인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살아 숨 쉬고 있고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만,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수십 년의 추억을 기억의 저편으로 잃어버린 사람. 그와의 만남 역시 이제는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이 되어버렸다. 그를 찾아가 손을 잡고 이름을 불러본들, 낯선 이를 바라보는 듯한 그 먹먹한 눈빛을 마주할 용기가 내게는 아직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아주 멀리 떠나버렸다면 마음 편히 그리워나 하련만, 기억의 끈을 놓아버린 옛 동료의 소식은 가슴을 후벼 파는 또 다른 형태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함께 나누었던 그 수많은 대화와 정겨웠던 시간들은 이제 오롯이 나 혼자만의 기억 속에 갇혀 섬처럼 떠돌고 있다.
하기야 우리 나이가 이제 칠순이 되어가고 있으니, 주변의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병들어 그리워해도 만날 수가 없는 것이 엄연한 자연의 이치요 현실일 것이다.
조용히 혼자서 인생의 길목에 서서 뒤를 돌아보니, 내 삶을 가득 채웠던 화려한 인연의 숲은 어느새 낙엽이 지듯 성성해져 가고 있다.
채워지는 것보다 비워지는 것이 더 많은 나이, 그리운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일보다 그들과의 추억을 반추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나이가 바로 지금의 나이인 모양이다.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고, 거스르려 해도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흐름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새벽의 먹먹한 그리움 속에서 절망이나 허무만을 길러 올리지는 않으려 한다. 비록 지금은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거나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잔 나눌 수는 없지만, 이른 아침 내 가슴속에서 번지는 이 짙은 그리움이야말로 나와 그들이 나누었던 우정과 사랑이 얼마나 깊고 진실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서로를 아끼고 정을 나누지 않았다면, 오늘날 내 새벽이 이토록 먹먹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그들이 머물다 간 내 가슴속 빈자리는 차가운 허공이 아니라, 그들이 남겨둔 따뜻한 기억의 온기로 채워져 있음을 깨닫는다.
(수련원이 있는 설악에서)
먼저 떠난 옛 온라인 게임 동료들과 학교 동창들,
그리고 기억을 잃어가는 동조 님까지. 그분들 역시 그들이 머물다 간 내 마음자리에 남겨진 따뜻한 추억 속에서 여전히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심장이 멈출 때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기억 속에서 잊힐 때라고 했다. 그렇다면 내 기억이 온전하고 내 가슴이 그들을 향해 뛰고 있는 한, 그들은 결코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조각조각들이 모여 그들의 삶을 내 안에서 연장해주고 있는 셈이다.
남아있는 자의 숙명은 명확하다.
그것은 먼저 떠난 이들이 남겨준 추억과 정을 소중한 등불로 삼아, 오늘이라는 하루를 묵묵히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내는 것이다.
아프지 않고, 주어진 삶의 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 매일 아침 눈을 뜰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게 허락된 걸음걸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먼저 떠난 이들이 살아남은 나에게 간절히 바라는 유일한 염원이자 고마운 배려일 것이다. 그들이 미처 다 걷지 못한 삶의 지평을, 나는 그들의 몫까지 품어 안고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깊이 있게 걸어가야 마땅하다.
어느덧 방 안을 채우던 어둠이 조금씩 물러가고, 창밖으로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번져오기 시작한다. 매일 찾아오는 이 아침은 어쩌면 먼저 떠나간 인연들이 내게 선물해 준 소중한 또 하나의 '오늘'일지도 모른다. 눈을 감으면 마음속 그리운 이들과 함께했던 눈부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먹먹했던 가슴을 이내 따스하게 데워온다.
원수 같은 사람들도 삶이 있어 만났고, 이별이 있어 사랑을 증명했으며, 죽음이 있어 오늘이 눈부시다. 나는 오늘 하루도 내게 남겨진 소중한 인연들과의 정을 생각하며, 나를 기억해 주는 이들과 내가 기억하는 이들을 위해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내 남은 인생의 서사가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는 그날까지 ㆍㆍ
먼저 간 이들의 부끄럽지 않은 동무로 살아가기 위하여
오늘도 변함없이 노력하련다
(주차문화 관련 30년 지기 온라인 게임 동료들)
업무 기능상 종합청사와 분리된 주차문화 관련부서에서 함께했던 지난날들의 옛 동료들이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가니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게
부서장인 송 과장님과 함께 근무하면서 잊을 수 없는 즐겁고 정든 추억을 많이 만들어 놓아 은퇴 이후에도 지울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