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역
1. 제복을 입던 날의 설렘
인생의 시곗바늘을 뒤로 마냥 돌리다 보면, 유독 특정 계절의 햇살 아래에서 멈춰 설 때가 있다.
내게는 1987년의 유난히 뜨거웠던 8월이 그렇다. 그해 8월 12일, 서른을 고작 한두 해 앞둔 스물여덟의 나이에 나는 서울지방철도청 산하의 작은 간이역인 ‘국수역’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행정 업무와 승차권 판매를 담당하는 역무직 공무원으로서의 첫출발이었다.
남들에 비해 다소 늦깎이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기에, 첫 발령통지서를 손에 쥐었을 때의 그 묵직한 안도감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출근 첫날, 국가에서 지급해 준 빳빳한 철도청 제복인 감색 양복과 넥타이 명찰
흰색바탕의 하복을 받아 들었다.
흰색 와이셔츠의 깃을 세우고, 곤색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어 올린 뒤, 왼쪽 가슴 위에 내 이름 석 자가 또박또박 박힌 아크릴 명찰을 핀으로 고정했다. 거울 앞에 서서 모자의 각을 만지는데,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자부심과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샘솟았다.
관복과 모자를 쓴 제복을 입고 온라인 게임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에서 무상으로 대어주니, 이 철부지 늦깎이 청년은 그저 나라에 감사하고 대견한 마음뿐이었다.
제복이 주는 묘한 바카라임감 덕분이었을까.
가슴을 당당히 펴고 넥타이를 매만지며 국수역의 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날의 아침 공기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내 허파 끝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내가 환영을 받으며 부임한 국수역은 역장을 포함하여 총 10명의 직원이 전부인 아담하고 호젓한 간이역이었다.
우리는 5명씩 두 조로 반반씩 나뉘어 교대 근무를 했다.
역장님이 근무하는 날 다섯 명, 부역장님이 근무하는 날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 역의 하루를 바카라임졌다.
당시 국수역은 하루에 완행열차만 딱 다섯 번 정차하는 곳이었다. 열차가 들어오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합실은 늘 정적에 잠겨 있었고, 기차 소리 대신 산새 소리와 바람 소리가 역사를 채우곤 했다. 그리 바쁘거나 숨이 가쁜 일이 없는, 참으로 평화롭고 고즈넉한 일터였다.
2. 24시간의 교대 근무와 대합실의 낭만
간이역의 일상은 독특한 리듬으로 흘러갔다.
하루를 꼬박 근무하고 다음 날을 온전히 쉬는 ‘비번’ 제도로 운영되었기에, 아침에 출근하면 다음 날 아침에 퇴근하는 분위기였다. 24시간 동안 역에 묶여 있어야 했지만, 일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우리에게는 늘 여백 같은 시간들이 주어졌다.
시간이 많다 보니 틈틈이 대합실 구석에 앉아 개인적인 글을 적기도 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수첩에 꾹꾹 눌러 적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정오를 가리켰다.
업무가 뜸한 오후가 되면 장갑을 끼고 역 마당과 철길 언저리에 삐져나온 잡풀들을 뽑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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