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삶

가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면서

by자봉

돌멩이 사이에 알을 낳은 연어는 죽어서도 아름다운 퇴행을 한다.

제 몸을 찢고 부서뜨리며 끝내 강으로 돌아와 생명을 남긴다.

그리고 그 몸은 다시 숲의 거름이 되고 나무가 되어 강으로 쓰러진다.

그 나무는 어린 연어들의 쉼터가 되고 바다로 나아가는 정거장이 된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린다.

내 어머니 역시 연어처럼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시부모님과 7남매가 함께 사는 종갓집의 종부로 시집오셨다.

지금 세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삶이었다.

새벽별이 뜨기도 전에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소죽을 쑤고, 논밭으로 나가 하루 종일 농삿일을 해야 했다.


그 시절 농촌의 삶은 가난 그 자체였고, 종갓집 맏며느리의 삶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버텨야 하는 세월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위해 살아본 적이 거의 없었다.

늘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했다.

시부모님을 모셔야 했고, 시동생들을 가르쳐야 했으며, 자식들까지 바카라임져야 했다.

몸이 아파도 쉬지 못했고, 마음이 무너져도 울 수 없었다.

종갓집 맏며느리라는 자리는 눈물조차 허락되지 않는 자리였는지도 모른다.

시동생들은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시켰다.

당시에는 집안의 장래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당신의 큰딸은 초등학교만 겨우 마쳤고, 작은딸은 중학교만 졸업할 수 있었다.

먹고사는 일이 급했고,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늘 미안해하셨다.

딸들에게 공부를 더 시키지 못한 것을 마음속 깊이 아파하셨다.

하지만 누구보다 괴로웠던 사람은 어머니 자신이었을 것이다.

당신의 딸들이 학교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그럼에도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싶어 하셨다.

“자식 만큼은 배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 말 속에는 어머니 자신의 한과 눈물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너무 어려웠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등록금과 교복값, 교과서 값은 우리 집에 너무 큰 부담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부터 돈의 무게를 알았다.

새벽이면 신문배달을 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골목을 시내버스를 타고 걷고 달리며 신문을 돌렸다.

혹시라도 신문을 빠뜨릴까 봐 단독주택 대문 앞에 하얀 분필로 당구장 표시를 했다.


백 부, 이백 부씩 되는 신문을 배달하고 나면 손끝이

저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겨울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손은 곱아 있었고 발은 얼어붙었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했고

하루에 밥 두끼라도 먹어야했다

졸음을 참고 수업을 들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반드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가난은 늘 사람을 움츠러들게 했다.

친구들이 새 교복을 입고 새 운동화를 신고 다닐 때 나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학교를 다녔다.

자취생이라 도시락 반찬이 변변치 않아 점심시간이 부끄럽던 날도 많았다.

하지만 어머니 얼굴을 떠올리면 포기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늘 논밭에서 일하고 계셨다.


검게 탄 얼굴, 갈라진 손등, 굽은 허리.

그 모습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풍경이었다.

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음식점에서도 일했고 행사장 경비도 섰다.

남들이 쉬는 시간에도 나는 생계를 위해 움직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바카라을 놓지 않았다.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대답이었다.

주경야독 끝에 나는 공직자가 되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그 눈물 속에는 얼마나 많은 세월이 담겨 있었을까.

억울함도 있었을 것이고, 서러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이 있었을 것이다.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공부를 계속했다.

방송통신교육과 평생교육을 통해 대학 공부를 했고, 대학원 수업까지 이어갔다.

퇴근 후 학교에 가는 길은 늘 피곤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버틸 수 있었다.

배움은 내게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시작에는 늘 어머니가 있었다.

어머니는 평생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아보지 못하셨다.

좋은 옷 한 벌 제대로 입지 못했고,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자식들부터 챙기셨다.

당신은 늘 마지막이었다.

어머니는 연어처럼 사셨다.

몸이 부서지도록 가족을 위해 살아오셨다.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태우고, 젊음을 태우고, 삶을 태우셨다.

나는 이제 정년퇴직을 했다.

40년 공직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오랫동안 달려왔던 인생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살아오면서 힘든 일도 많았고 서러운 일도 많았지만, 결국 가장 사무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삶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어머니 품이 더욱 그리워진다.


어머니는 내 인생의 나무였다.

비바람을 막아주고, 그늘이 되어주고, 쓰러지지 않게 붙들어준 나무였다.

나는 그 나무 아래에서 자랐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는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힘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어머니의 희생과 눈물, 기다림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삶이었다는 것을.

연어는 죽어서도 새 생명을 키운다.

어머니 역시 그러하셨다.

당신은 떠나셨지만 아직도 내 삶 속에 살아 계신다.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고,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주신다.

보이지 않아도 늘 곁에 계신다.

나는 이제 늙어가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를 생각하면 여전히 어린 아들이다.

세상 누구보다 강인했고,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던 사람.

그 이름이 바로 어머니다.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부른다.

“어머니,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되뇐다.

어머니는 연어처럼 아름다운 삶을 사셨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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