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이라는 이름의 거친 파도를 뒤로하고 맞이한 은퇴는 처음엔 달콤한 휴식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한 바다와 같았다.
수십 년간 나를 정의해 주던 빳빳한 명함과 묵직한 직함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직 ‘시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자원만이 썰물 뒤의 갯벌처럼 덩그러니 남겨졌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내가 가장 먼저 발길을 옮긴 곳은 애오개역 도서관과 영등포의 평생학습관이었다.
그곳은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격리된 고요한 섬과 같았다. 예전에는 신문의 헤드라인만 훑고 지나쳤을 일상이었으나, 이제는 잡지 한 권의 칼럼을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비로소 세상이 돌아가는 낮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가리거나 차가운 비바람이 창을 때리는 날, 도서관에 앉아 바카라장을 넘기는 시간은 내게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을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작 돌보지 못했던 내면의 자아를 대면하는, 가장 낮고도 신성한 의식이었다.
은퇴 초기, 나를 가장 괴롭혔던 질문은 ‘어떻게 이 긴 노년의 시간을 풍화되지 않고 견뎌낼 것인가’였다. 홀로 바카라 속에만 파묻히는 것은 자칫 세상과의 단절, 즉 고독이라는 깊은 수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때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이들은 먼저 그 길을 걷고 있던 은퇴 동료들과 선배들이었다.
현직 시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생산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배우지도 않았던 당구와 스크린골프를 그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당구장에 가서 큐대를 잡는 법도 서툴러 허공을 가르는 헛스윙을 하기 일쑤였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내게 동료들은 “허허, 원래 다 그렇게 배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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