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에서의 숙박

고향

by자봉

⁷일요일 아침, 용산역에서 순천역으로 향하는 전라선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요즘은 차를 몰고 나가면 국도든 고속도로든 막히기 일쑤라,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창밖 풍경을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는 기차 여행이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주말이면 무궁화호 열차는 할인을 받아 마음 가벼운 여정이었다.

열차는 전주, 임실, 곡성, 구례구 등 정겨운 역들을 거쳐 순천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경전선으로 환승하여 불교의 보물 같은 송광사, 선암사를 지척에 두고 벌교, 조성, 득량,

예당역을 지나 마침내 목적지인 녹차의 수도 보성역에 닿았다.

보성역에서 1700원을 내고 버스표를 티켓 하여 도착한 나의 고향 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빈 집이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지만 내가 태어난 고향집은

나를 반겼다


돌싱으로 혼자되어버린 남동생은 현장 숙소에서

숙식을 한다고 하여 두세 가구가 떨어져서 사는 외로

운집에서 혼자 자야 했다

하지만 오늘 밤을 나 혼자 오지 산골 고향집 보낸다고 생각하니, 두렵기도 했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이어서 그런지 금방 마음이 뻐근할 정도로 벅차올랐다.

(폐교된 초등학교 인근 제암산 전경)



마당에 서서 고향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우뚝 솟은 제암산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발길을 옮겨 옛 기억이 서린 밭으로 가보았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일소를

몰고 산으로 가서 풀을 양껏

뜯어먹도록 방목을 하고.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나와 함께 무와 채소, 감자를 심고 물을 주며 가꾸던 그 밭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가슴이 에이듯 아련해졌다.

이래서 다들 고향이 좋다고 하는 모양이다.

저녁에는 마당으로 나가 멍하니 밤하늘을 내다보았다.

쏟아질 듯 빛나는 별빛을 보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할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던 그 방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홀로 그 방에 누우니, 아스라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방학만 되면 고향 집에 내려와 할아버지와 함께 사랑방에서 이불을 덮고 자던 그 방에서 오늘 밤 조용히 혼자서 잠을 자 본다


어느덧 내 나이도 이제 일흔(70)이 다 되었다.

나 홀로 고향을 찾아 이 방에 누워있으니 옛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잤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가끔씩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잤던 방이다

힘들어하면서 타향살이를 하던 내가 고향에 내려올 때면 늘 부모님이 쓰시던 이 방에서 묵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님도, 할아버지도 모두 떠나시고 없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종종 고향을 찾아 나 홀로 이 방을 쓰고 있자니 마음이 첩첩하고 쓸쓸해진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집이라서 그럴까.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

고향 집에서 돌아가는 시곗바늘을 본다. 삶과 죽음, 그리고 흐르는 세월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법이라더니, 내 인생도 벌써 80%가량 지나왔나 보다. 세월이 흐르긴 정말 흘렀다. 내 어린 시절 우리 할아버지의 나이가 예순, 일흔이셨는데,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되어 할아버지가 누우시던 자리에 누워있다.

잠시 눈을 감고 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할아버지가 주무셨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무셨던 이 방. 그리고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함께 화롯불을 켜놓고 온기를 느끼면서

잠들었던 이 방.

타향에서 고향을 찾아와 부모님의 온기가 남은 이 방에 누워있으니, 세상 그 어디보다 포근하다.

고향이 좋은 진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너무나 편안하고, 따뜻하다.


폐교된 초등학교 모교인 제암산(帝岩山)의 정기가 홀로 고향을 찾은 나를 따뜻하게 품어준다

밤하늘의 별도 총총 빛나고

개구리울음소리와 새들의

딱딱 소리도 정겹다


오늘만큼은 딱 다시 5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고향집의 이 모습 저 모습)


그리운 고향과 고향집을 두고 내일 20일 삼성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췌장 검사를 6개월 간격으로 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올라가야 된다


가고 싶은 고향!

항상 오고 싶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건만

이웃집 친척들과 나를 예뻐해 주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그리운 고향에 내려오면 항상 어머님과 장흥읍에

사셨던 고모님이 계신 것 같다


누나와 남동생 금채와 병희가 지금까지 살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떠나간 님들을 그리워하면서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은 즐겁지는 않다

그래도 내일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놓고 생활주거지인 서울로 올라가야 되니

마음 한편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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