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간의 불화
1, 등 굽은 장남의 눈물, 가시가 된 혈육들
나는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으나, 평생을 짊어져야 할 숙명이었다.
아버지는 종손이었고, 나는 그 종가의 대를 이어야 할 장손이었다.
시골 고향 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며 흙을 일구던 부모님 곁에서, 나는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 자랐다.
아버지와 큰 작은아버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둥 마는 둥 많이 배우지는 않았어도 한문은 통독하신 것
같다
두 분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셨고,
머리 좋고 영특했던 둘째 작은아버지는 스물아홉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셋째와 넷째 작은아버지는 내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면서 고등학교라도 대도시에서 보냈지만 당신들의 자녀인 큰딸은 초등학교 작은딸은 중학교만 졸업시키면서
남동생 둘을 위해 뒷바라지하다시피 하여 고등학교를 졸업시켰다.
한 분은 시골 농협으로, 한 명은 공무원으로 당신들 앞가림을 하고 지금은 부자로 잘 살고 계신다
그래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내 부모님과 나를 향해 작은아버지들이 "내 부모님께 부모나 다름없는 형님과 형수님께 잘해야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것이 가족의 도리인 줄로만 알았다.
2. 할머니의 부재와 변해버린 얼굴들
비극은 어른들이 세상을 떠나시며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만 해도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던 아버지 형제들의 얼굴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차갑게 변했다.
막내 작은아버지는 어느 날부턴가. 큰 형님인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나를 대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느냐"는 것이었다
1931년생인 내 아버지,
1946년생인 셋째 작은 아버지
1949년생인 막내 작은 아버지이니 나이차이도
15세 18세가 차이 난다
모두가 어럽고 궁핍했던 그 시절, 시골에서 동생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낸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이었는지
작은 아버지들은 망각한 듯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6,25 참전으로 총상을 당해 5년 동안 전쟁을 하다가 전역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우연챦게 내가 24세가 된 나이에 아버지가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셨다
작은아버지는 고향 근처 보성에서 교통사고로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난 바로 내 아래 남동생의 보험금 5천만 원까지 가로챘다
이 돈은 남동생 2명이 30세가 되지 않은 나이에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해
1억여 원의 사망보험금을
1997년에 우체국과 삼성생명보험회사에서 수령하여 아버지 명의 통장에 입금해 드렸다
그러나 시골 농협에서 전무로 근무했던 숙부님이
이 돈에 대해 욕심이 났는지 시골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를 꼬드겨 5천만 원을 찾아 숙부님이 근무하는 시골농협에 내 아내와 내 막냇동생 명의로 공제에 가입하여 내 막내 남동생이 사망하니 당시 농협에 근무한 작은아버지가 2001년도에 고의적으로 내 남동생들 사망보험금을 찾아가 버렸다
사람의 도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것이다
돈 앞에서 혈육은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남동생인 금채 보험금 1억 원 중 5천만 원은 살아있는 작은아들 응삼이에게 주고,
작은아버지가 가져가서 농협에 공제금으로 예치한
5천만 원은 우리 집의 장남이고 증조부모님과 조부모님 제사를 서울에서 모시고 있는 장손 겸 종손인 나에게 주라고 어머님께서 작은아버지께 신신당부했는데 작은아버지가 조카 사망 보험금을 착복해 버린 것이다
3. "아들도 못 낳는 놈"이라는 비수가 꽂히다
가장 깊은 상처는 아버지로부터 왔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두 남동생들 장례식과 아버지의 회갑잔치.
그리고 남동생과 누나가 사망하자 2001년에 어머님의
칠순잔치와 2016년 어머님 장례식까지 장남으로
다 치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배척했다.
내 눈을 피해 모든 재산과 논과 임야와 선산을 팔아 남동생 부부와 네 살짜리 조카 찬혁에게 몰래 증여해 버렸다.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장흥읍에서 남동생부부가 집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어린 손주 찬혁이를 안아 올리며 나를 향해 소리치셨다.
"아들도 못 낳은 칠거지악 같은 놈, "
아들도 못 낳았으니 낫으로 목을 베어버리겠다 고 ᆢ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하던 날에는 아들도 못 낳았으니
술잔도 올리지 못하게 하고 아들 낳은 남동생한테
술잔을 올리도록 했다 ㆍ 그래도 꾹 참았다
장남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평생을 바쳐온 내 인생이 그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옆에 있던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일어섰다. "다시는 아버지를 뵙지 않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그때 오겠다는 아내의 절규가 집안을 울렸다.
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그 '아들'과 '재산'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
재산을 다 받아 챙긴 제수씨는 이혼 소송을 내고 모든 재산을 팔아 현금으로 챙겨 떠나버렸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던 선산과 논ㆍ임야들은 친권자로 지정된 남동생 부인이
팔아 버려 남의 손에 넘어갔다.
4. 억울한 누명과 고독한 승리
작은아버지와 남동생은 현직에 있던 나를 끌어내리고 돈을 뜯어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내가 근무하는 감사실과 상급기관에 허위 사실을 진정하고, 밤마다 내게 전화를 걸어 협박을 일삼았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돈을 뜯기 위해 허위로
검찰청, 경찰서에 허위진정을 냈다
나는 허위라는 사실을 판명하기 위해 뒤통수를 당해 관련자료들을 수합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수없이 찾아가 숙부님과 남동생이 저지른 범죄사실들을 찾아내 검찰청 여자 검사와 양천경찰서 수사과에 불러가 증명자료를 제출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사실들을 조사를 받아야만 했던 수십 년의 세월. 나는 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수십 년 치의 거래 내역을 출력하고 증거를 모았다.
결국 '무혐의'라는 결과를 받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는 흉터로 남았다.
내가 그토록 용돈을 주고 아꼈던 동생들이,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 목을 치려 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이를 악물게 한다. 은퇴를 하고 나니 이제야 괴롭힘이 멈췄다.
내가 법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하니 그제야 무서운 줄 아는 모양이다.
5. 이제야 마주하는 나의 인생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니 "내가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장남과 종손으로 아버지나 나나 동생들 결혼시키고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똑같은 배 속에서 나왔어도 돈과 욕심 앞에서는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비싼 값을 치르고 배웠다.
지금 나는 그들과 인연을 끊고 산다.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소식조차 궁금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비정하다 하겠지만, 이것은 내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장남과 종손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이제야 나는 오롯이 나로서 숨을 쉰다.
비록 운명이 나에게 가시 돋친 혈육들을 주었지만, 이제는 그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 한다.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준 아내와 자식들, 그 진짜 '내 편'들과 함께 남은 생을 평온하게 채워가려 한다. 그것이 모진 풍파를 견뎌온 이 시대의 못난 장남과 종손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기 때문이다.
잘되는 집안에서는
종손이 나이가 작아도
작은아버지들이나 집안에서
종손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 작은 아버지의 끝없는 욕심
작은 아버지는 지방 금융기관에서 장기간 재직하시면서 국가유공자인 아버지와 공동명의로
승용차를 등록하여 각종 세금 혜택을 받더니, 어느 순간부터 돈에 대한 욕심이 선을 넘어 버렸다.
교통사고로 29세의 꽃다운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난 바로 내 아래 남동생의 보험금 5천만 원까지 가로챘다
이 돈은 남동생 2명이 30세가 되지 않은 나이에 교통사고 등으로 사망해 1억여 원의 사망보험금을
1997년에 우체국과 삼성생명보험회사에서 수령하여 아버지 명의 통장에 입금해 드렸다
그러나 지방 금융기관에서 결재권자로 근무했던 숙부님이 이 돈에 대해 욕심이 났는지
시골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아버지를 꼬드겨 5천만 원을 찾아 숙부님이 근무하는 금웅기관에 내 아내와 내 막냇동생 명의로 공제에 가입하여 내 막내 남동생이 27세에 사망하니 당시 금융기관에 근무한 작은아버지가 2001년도에 고의적으로 내 남동생들 사망보험금을 찾아가 버린 걸로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출하여
공문으로 답신을 받고 부정행위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도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었던 것이다
돈 앞에서 혈육은 남보다 못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남동생 보험금 1억 원 중 5천만 원은 살아있는 작은아들 00 이에게 주고,
작은아버지가 가져가서 공제금으로 예치한 5천만 원은 우리 집의 장남이고 증조부모님과 조부모님 제사를
서울에서 모시고 있는 장손 겸 종손인 나에게 주라고 어머님께서 작은아버지께 신신당부했는데
작은아버지는 나의 친동생들인 조카들의 사망 보험금을 착복해 버린 것이었다
그렇고는 허위로 내 온라인 게임 감사실에 허위투서를 하면서, 어른으로서, 작은 아버지로서 해야 될 일들을
망각한 체 너무 많은 선들을 넘어 버렸는데 돈이 무섭고 좋긴 좋은가 본다.
- "아들도 못 낳는 놈""칠거지악"이라는 말씀에 비수가 꽂히다
가장 깊은 상처는 아버지로부터 왔다. 나는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배척했다. 내 눈을 피해 모든 재산과 논과 임야와 선산을 팔아 남동생 부부와 네 살짜리 조카 찬혁에게 몰래 증여해 버렸다.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는 장흥읍에서 남동생부부가 집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어린 손주 찬혁이를 안아 올리며 나를 향해 소리치셨다.
"아들도 못 낳은 칠거지악 같은 놈, "
장남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평생을 바쳐온 내 인생이 그 한마디에 무너져 내렸다. 옆에 있던 아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일어섰다. "다시는 아버지를 뵙지 않겠다"는 아내의 절규가 집안을 울렸다.
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그 '아들'과 '재산'은 결국 어떻게 되었나. 재산을 다 받아 챙긴 제수씨는 이혼 소송을 내고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나버렸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아버지가 그토록 아끼던 선산과 가업은 남의 손에 넘어갔다.
-. 억울한 누명과 고독한 승리
작은아버지와 남동생은 현직에 있던 나를 끌어내리고 돈을 뜯어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내가 근무하는 감사실과 상급기관에 허위 사실을 제보하고, 밤마다 전화를 걸어 협박을 일삼았다.
그것도 부족했던지 돈을 뜯기 위해 허위로 검찰청, 경찰서에 허위진정을 냈다
나는 허위라는 사실을 판명하기 위해 뒤통수를 당해 관련자료들을 수합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수없이 찾아가 숙부님과 남동생이 저지른 범죄사실들을 찾아내 검찰청 여자 검사와 양천경찰서 수사과에 불러가 증명자료를 제출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무고한 사실들을 조사를 받아야만 했던 수십 년의 세월. 나는 내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수십 년 치의 거래 내역을 출력하고 증거를 모았다.
결국 '무혐의'라는 결과를 받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는 흉터로 남았다.
내가 그토록 용돈을 주고 아꼈던 동생들이,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 목을 치려 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이를 악물게 한다. 은퇴를 하고 나니 이제야 괴롭힘이 멈췄다.
내가 법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하니 그제야 무서운 줄 아는 모양이다.
-. 이제야 마주하는 나의 인생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니 "내가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나"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장남과 종손으로 아버지나 나나 동생들 결혼시키고 뒷바라지하느라 정작 내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똑같은 배 속에서 나왔어도 돈과 욕심 앞에서는 남보다 못한 원수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 비싼 값을 치르고 배웠다.
지금 나는 그들과 인연을 끊고 산다.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소식조차 궁금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비정하다 하겠지만, 이것은 내가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었다. 장남과 종손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이제야 나는 오롯이 나로서 숨을 쉰다.
비록 운명이 나에게 가시 돋친 혈육들을 주었지만, 이제는 그 가시에 찔리지 않으려 한다.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준 아내와 자식들, 그 진짜 '내 편'들과 함께 남은 생을 평온하게 채워가려 한다. 그것이 모진 풍파를 견뎌온 이 시대의 못난 장남과 종손이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기 때문이다.
잘되는 집안에서는
종손이 나이가 작아도
작은아버지들이나 집안에서
종손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 집은 왜 이리 작은아버지나 동생들이나
종손이고 장손인 나를 괴롭히는지?
그렇다고 재산인지 유산인지도 받지 않고
그토록 신문배달과 경비원
공장생활을 하면서 공부해
자수성가하여 집 두 가구 장만했더니 배 아파하고
돈 뜯으려고 하는지!
오죽했으면 감사실과 경찰에서 작은아버지와
남동생을 무고죄로 고발해 버려라고 하는데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얼굴을 보지 않고
만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가 너무 보수적이고 유교사상에 빠져있어
폐쇄적이다 보니 하루아침에 논 20마지기와
선산이 모셔져 있는 7만 평방미터의 선산이 한순간에
아들을 낳은 아버지의 작은 며느리가 아버지의 듬뿍 담긴 사랑을 받아 없애버리고 이혼을 하고
수십 년 이어온 재산이 없어져 버렸다
백세가 다 되어간 아버지가 시대의 흐름과 개화적이고 보수적이지 않았다면 유교사상에 푹 빠지지 않았다면 이런 불상사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바카라임은 무바카라임한 아버지 때문에 선산도 재산도 형제들 간에 우애도 깨지고 도륙된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잘해야 자식들이 본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