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행복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by쫄보 원더우먼


행복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쉰넷. 정년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아직 남아 있다’는 생각이, 어쩌면 가장 위험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 시작하면서,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은 분들이 궁금해졌다. 정년퇴직을 하신 선배님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내실까. 어떤 길을 거쳐 자기만의 하루를 찾아가셨을까. 그래서 한 분 한 분 여쭤보기 시작했다.


오래 일하신 분들이라 그런지, 퇴직 후에도 주중 스케줄을 짜서 규칙적으로 사시는 분이 많았다. 월·수 오전엔 수영, 오후엔 주민자치센터 미술 강좌, 화·목엔 피아노, 그리고 틈틈이 자원봉사. 어떤 분은 박물관 강의를 들으셨고, 또 어떤 분은 자격증 공부를 하고 계셨다. 젊은 시절 하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취미를, 이제야 꺼내 드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한 선배님이 고백하듯 건넨 말씀이 오래 남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열심히 뭔가를 하고는 있는데 말이야. 가끔은 그냥 시간을 때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네. 허허.”


웃으며 하신 말씀이었지만, 나는 쉽게 웃지 못했다.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었다. 퇴직하면 하려고 미뤄둔 일들이 있었는데, 정작 그때가 되자 건강이 발목을 잡더라는 분들이었다. 손 관절염으로 그토록 배우고 싶던 피아노를 접으신 분. 배우자와 함께 순례길을 걷기로 했지만, 무릎 시술을 받고는 이제 꿈도 못 꾼다며 쓸쓸히 웃으신 분.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시도하며 보낸 1년쯤이 지나서야 비로소 가닥이 잡히더라는 말씀도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긴 휴가가 생겼을 때를 떠올려 보면 안다. 평소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두지 않으면, 막상 시간이 주어져도 무얼 할지 몰라 집에서 빈둥거리다 금쪽같은 하루를 흘려보내고 만다. 은퇴 후의 시간도, 어쩌면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정년을 기다릴 게 아니라, 중년인 지금부터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기로.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했던가. 무엇을 그토록 하고 싶었던가.


곰곰이 더듬어 보다가, 문득 한 장면이 떠올랐다. 출장을 갈 때마다 짬을 내 꼭 들르던 갤러리들. 낯선 도시에서도 그림 앞에 서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아, 그렇지. 나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은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했지.


그러면 이제, 어디서 그림을 보면 좋을까. 좋아하는 것 목록에 한 줄이 또 적혔다. 행복을 미루지 않기로 한 사람의, 가볍고도 설레는 숙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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