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 건강증진센터 방문기
통보 한 장에서 시작된 하루
교통사고 이후 혈압약을 복용하게 된 나에게 어느 날 안내가 왔다.
“건강검진 사후관리 대상자에 해당됩니다.”
보통은 그냥 지나쳤을 문장인데,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20여 년 전, 내가 만들고 분석하고 설득했던 바로 그 사업의 이름이 거기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를 나와 두 번째 온라인 게임이었던 건강보험 정바카라연구원.
부연구위원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내가 했던 일은 건강증진팀 사업의 효과분석, 건강검진 사후관리 사후분석, 전국 노인운동사업의 효과분석 같은 것들이었다.
체력 데이터와 설문을 붙들고 밤을 새우고, 노인운동 프로그램을 만들어 CD로 제작해 각 지역본부를 돌며 강사들을 교육하고, 세 곳뿐이던 건강증진센터를 열 곳으로 늘리자고 회의실마다 들어가 설득하던 시절.
큰아이를 낳고,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걸어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그 사업이 20년의 시간을 건너와, 이번에는 “피험자”의 얼굴로 내게 도착한 것이다.
연구자로서도 궁금했고, 학생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로도 탐이 났다. 바로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건강검진 사후관리 사업이란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국가 건강검진 결과 심뇌혈관질환의 위험을 안고 있는 분들 —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대사증후군 유질환자 — 를 대상으로
질환별 교육자료를 발송해 주고
스스로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혈압측정기, 혈당측정기를 대여해 주고
원하는 경우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무료로 상담해 주는
사업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건강보험공단이 직접 운영하는 <건강증진센터> 가 전국에 스물여덟 곳가량 있다고 한다.(정확한 개소 수와 지역별 위치는 공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길 권한다. 지사마다 운영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32도,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
방문한 날은 하필 32도,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물과 선글라스와 양산과 노트북까지, 바리바리 챙겨 들고 나섰다.
강남역 바로 앞 건물 7층. 강남서부지사의 건강증진센터.
문을 열자마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어르신들이 각자 자전거로 유산소 운동을 하시고, 이어 그룹운동으로 넘어가시는 중이었다.
한쪽에는 체력측정실, 또 한쪽에는 운동처방실과 영양상담실.
그래. 이거였지.
20여 년 전 도면 위에 그렸던 동선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반나절 동안 받은 것들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촘촘했다.
1) 설문 — 15분
생활습관 평가, 의학적 평가, 영양·식생활 습관 평가. 기왕력과 가족력까지 꼼꼼히 적었다.
2) 체력측정
체성분, 악력, 근지구력, 평형성(정적·동적), 좌전굴, 최대산소섭취량 추정, 게이트 측정판 위에서의 보행 분석까지.
3) 결과 해석과 운동처방
담당 선생님이 내 몸의 현재 상태를 숫자로 하나하나 짚어 주셨다.
4) 영양 상담
마침 검진 결과지를 챙겨 갔더니, 경계 구간에 걸쳐 있는 지표들을 개선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영양사 선생님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궁금해서 꼬치꼬치 물었는데도 하나하나 다 답해 주셨다.
5) 그리고 프로그램 참여
센터의 기기를 활용해 유산소·근력·근지구력 운동을 주 3회 할 수 있고, 월 12회 이상 참여하면 6개월까지 연장해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참여 조건과 연장 기준은 지사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예약 시 확인하시길.)
돌아오는 길에는 수건과 가방, 여행용 칫솔 세트까지 선물 꾸러미를 한아름 안고 나왔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린 것
어르신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코로나 전에는 발 디딜 틈도 없었어요.”
코로나를 지나며 인원이 크게 줄었다고들 하셨다.
담당 선생님께서도 센터 운영이 예전 같지는 않다는 말씀을 조심스럽게 하셨다.
솔직히 말하면, 20년 전 도면 그대로라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복잡했다.
KIMES 전시장에서 해마다 새 얼굴로 바뀌는 디지털 헬스 기기들을 보아 온 눈에는, 아쉬운 대목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센터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오는 내내, 그 아쉬움보다 훨씬 크게 남은 생각은 따로 있었다.
“이렇게 좋은 제도를, 사람들이 모른다.”
그래서, 글로 남기기로 했다
반나절 동안 내가 받은 것을 다시 세어 본다.
내 몸의 근력과 균형과 지구력을 숫자로 확인했고,
내 식탁의 빈 곳을 전문가에게 들었고,
경계 수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방향을 얻었고,
원한다면 6개월간 운동을 이어 갈 자리까지 안내받았다.
민간에서 이만한 구성을 받으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그런데 이건 이미 내가 낸 보험료로 만들어진, 내 몫의 서비스다.
기기가 조금 낡았다는 것, 예전만큼 붐비지 않는다는 것 —
그건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충분히 쓰지 않아서 생긴 여백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공사업은 결국 이용하는 사람의 수만큼 자란다. 20년 전 세 곳을 열 곳으로 늘리자고 설득할 때, 내가 들고 갔던 근거도 결국 “이만큼의 사람이 이만큼 좋아졌다”는 숫자였다.
그러니 부탁드리고 싶다.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대사증후군을 가지고 계시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 보시라.
가까운 건강증진센터가 어디인지 물어보시고, 예약하고, 한 번 다녀와 보시라.
혈압계나 혈당계 대여가 가능한지도 함께 여쭤보시면 좋겠다.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반나절 끝에, 분명히 자극받으실 것이다.
“나를 지키는 법” 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20년 전 도면 위에 앉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잘 만들어 둔 것을 잘 쓰는 일도, 결국 누군가는 먼저 가 보고 말해 주어야 시작된다는 것을.
오늘은 내가 먼저 다녀왔으니, 이제 당신 차례다.
여러분의 이번 검진 결과지는, 지금 어디에 놓여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