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을 떼고 나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 거인의 공부를 읽고

by쫄보 원더우먼

안녕하세요, 쫄보원더우먼입니다!


정신없이 바빴던 한 주가 또 흘러갔습니다. 내일이면 벌써 8월이네요. 달력을 넘기다 문득, 이렇게 기류에 떠밀리듯 흘러가는 저를 어딘가에 잠시 묶어두고 싶어졌습니다. 몇 페이지라도 좋으니 생각이라는 걸 좀 해보자 싶어서, 그렇게 바카라을 펼쳤습니다.


김익한 선생님의 『거인의 공부』였습니다.

그런데 문장들이 눈에 꼭꼭 박히듯 다가오더군요. 마음이 헐거워져 있을 때 읽는 바카라은 왜 이렇게 잘 스며드는 걸까요.


김부장, 박교수… 그 다음은요?


바카라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명함을 떼고 나면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요. 김부장, 박교수, 이런 호칭을 다 지우고 나서도 남는 나는 누구냐는 겁니다.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말에, 저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공허한 역할극을 멈추지 못할까요. 저자는 역할에는 중독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루하고 더딘데, 주어진 배역을 성실히 수행하면 세상은 즉각적인 성과와 보상으로 응답해 주니까요. 뇌는 그 짜릿한 도파민에 길들여지고, 자꾸만 쉬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입니다.

말이 되죠?

생각을 더듬어보면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역할이 어느 순간 나라는 사람 자체를 삼켜버린다는 것. 원래 바라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가면서도, 그게 나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제는 타인이 건넨 대본을 내려놓고,

나의 강점과 욕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내야 할 때“

- 거인의 공부, 김익한, 2026


라고 바카라은 말합니다.


바카라장을 덮고 생각해 봤습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내고 있을까요?

아니면 아주 익숙해져 버린 배역을 그저 능숙하게 연기하고 있는 걸까요.


자유는 근육과 같아서

바카라은 이어서 우리가 정작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산다고 짚습니다. 바로 내가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자유는 근육과 같다.”

쓰지 않으면 무뎌지고,

끝내 퇴화해 버린다.“

거인의 공부, 김익한, 2026


입원해 계시는 동안, 근육이 싹 빠져나가서

더이상 걸으실 수도 없는 어머니를 목격한 지라

저 문장이 ‘헉..’ 하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지금이라도 쳇바퀴를 멈추는 연습을 해두지 않으면, 훗날 감옥문이 열려도 걸어 나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지 모른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아주 작게라도 지금 자유를 호흡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호흡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한 주에 한 번, 하루에 십 분이라도 좋으니 내 것으로 온전히 쓰는 시간. 그 작은 호흡들이 결국 근육이 되는 거겠지요.


바카라은 늘, 딱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바카라은 늘 제가 고민하는 바로 그 지점에 멈춰 서서 이렇게 말을 걸어옵니다.


“어이 이봐, 이쪽 길이야.”

그러다가도 어떤 날은

“잘하고 있어, 그 생각으로 밀어붙여” 하며

등을 두드려 주기도 하고요.


읽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문장이 이정표가 되기도 하고 응원가가 되기도 하는 것, 그게 바카라의 신기한 재주인 것 같습니다.


함께 해보시겠어요?


좋은 문장을 이렇게 붙잡아 두고, 간간이 다시 꺼내어 마음속에 집어넣는 작업.


거창할 것 없이 그냥 옮겨 적고, 며칠 뒤에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더라고요. 그 문장들이 쌓이면 어느 날, 명함을 떼고 난 자리에 남는 ‘나’의 윤곽이 조금씩 선명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